꽃을 좋아하는 사람들
루마니아사람들은 꽃을 참 좋아한다. 특별한 날이나 마음을 전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는 늘 손에 꽃이 들려져 있다.
학기가 끝날 때나 행사 후에 학생들에게 받는 꽃은 두 팔로 다 감싸기도 어려울 만큼이다. 너무 많아서 집에 가져가기도 힘들어 늘 다른 분들과 나누게 된다.
학생들에게는 비밀이지만, 사실 나는 꽃 알레르기가 있다. 방에 꽃이 있으면 자꾸 재채기가 난다. 그래서 농담처럼 말한다. '내가 꽃이라서 다른 꽃들을 보면 두드러기가 나는 거야.' 그리고는 꽃을 나누어준다.
어쨌든 루마니아사람들은 꽃에 진심이다.
그래서 그런 걸까? 이들은 유독 부채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계속 졸라대는 동아리멤버들을 위해 결국 꽃(부채춤)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무용선생님을 섭외하고 워크숍시간을 결정했다.
지난 두 달간은 숨 가쁘게 바쁜 날들이었다. 맴버들은 꽃(부채춤)을 만들기 위해 두 달을 보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한국무용 동아리 연화는 그동안 소고춤과 한삼춤을 배웠다. 드디어 이번 여름방학에는 그동안의 바람대로 야심차게 부채춤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무용이나 사물놀이는 놀이라기보다는 사실 훈련에 가깝다. 편하게 만나서 재미있게 놀다 가는 다른 취미들도 많지만 무용은 몇 시간씩 뛰어다녀야 한다. 체력이 없이는 견뎌내지 못한다. 우리 동아리 모임은 학생들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오는 수강생들도 등록할 수 있다. 그런데 유독 40-50대 아줌마들이 많다. 열정만큼이나 몸집이 크신 분들이 많아 한국무용을 잘할 수 있을까 내심 걱정이 되었다.
관절이나 허리가 괜찮을까?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지? 그런데 생각보다 날렵하게 몸을 움직이는 것을 보니 열정이 체력을 이긴 것 같았다.
올여름에는 에어컨이 없는 학교 체육관을 사용할 수 없어서 연습실을 찾아 이곳저곳을 배회하며 연습을 해야 했다. 에어컨에 거울 딸린 연습실 구하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더군다나 40도에 육박하는 폭염 속에서 2-3시간 뛰어다녀야 하니, 그 고생은 말도 못 했다. 그런데도 내 걱정과는 달리 동아리 멤버들은 점점 꽃처럼 밝고 즐거운 얼굴이다.
사실 문제는 연습실이 아니었다. 선생님 없이 연습하는 날이면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이야기하는 시간이 연습시간보다 길어지기도 하고, 무대에 서는 자리 때문에 서로 예민해지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꽃을 만들어가는 연습과정 속에서 점점 하나가 되어가고 꽃에 취한 듯 붉그스름한 예쁜 얼굴을 하고 나비처럼 날아다닌다.
발표행사를 준비하는 나는 헬리콥터처럼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맴버들을 챙겨야 하니 정신이 없다. 그래서 행사를 준비하면서 늘 속으로 투덜거린다.
'왜 이걸 시작해서 내가 이 고생이지? 이번 행사만 끝나면 이제 더 이상 동아리 모임이나 수업은 안 할 거야'
이렇게 다짐을 해 보지만, 공연이 끝나고 나면 맴버들의 뜨거운 열정과 감동에 투덜거리던 말들은 온데간데 사라진다. 그다음 공연은 언제 할 거냐는 신이 난 맴버들의 질문들에 그만하자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느새 다음 계획을 함께 이야기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만다.
지난주 토요일, 드디어 동아리 한국전통음악축제를 가졌다. 동아리 모임 활성화를 위해서 여름동안 사물놀이, 해금, 그리고 한국무용 멤버들이 워크숍도 열고, 주말마다 나와서 연습을 했다. 그 결과물을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루마니아사람들이 준비한 공연, 연습시간은 고작 2달, 일주일에 한번씩 아홉번이었다. 괜히 창피만 당하는 거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공연장도 없어 여기저기 수소문한 결과 학생회관에 있는 300석짜리 공연장을 임대할 수 있었다. 어렵게 준비한 공연에 어디에서 소문을 들으셨는지 대사님까지 오신다니 어쩌나 싶었다. 창피나 당하지 않기를 바랬다.
그런데 기대이상으로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이들이 만든 꽃은 그동안의 아름다운 노력의 결과였다. 한국사람인 내가 생각해도 너무나도 아름답고 감동적인 무대였다. 초청한 250여 명의 관객들이 환호를 보냈다. 무대에 서는 모습을 보기까지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결과물을 보니 우리 동아리멤버들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무언가를 이렇게 열심히 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마음이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이런 열정을 잊고 살았다. 내 나이가 되면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나와 나이가 비슷한 루마니아사람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만들기 위해 뛰어다닌다. 그 모습이 참으로 존경스럽다. 나이는 들었어도 절대 시들지 않을 꽃을 만드는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들이 만든 꽃에는 절대 알레르기같은 것은 없을 것 같다.
루마니아에서 활짝 핀 꽃, 연화팀의 꽃같이 아름다운 노력이 앞으로도 계속되길 바란다.
주말 행사로 인해 정신이 없어서 발행 날짜를 지키지 못했습니다.죄송합니다. 늦게나마 연재글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먼저 올린 사진은 초상권에 침해될 수 있어서 그림으로 바꿨습니다.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