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s Chef라는 직함으로 쉐라톤의 문을 처음 열던 아침, 셰프복을 여미는 내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수많은 주방을 거쳤지만, 오늘은 달랐다.
익숙한 하얀 셰프 재킷이 유난히 낯설게 느껴진 건, 어쩌면 단순한 유니폼이 아니라 내 책임과 기대, 그리고 앞으로 감당해야 할 무게가 고스란히 스며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호텔 로비를 가로질러 스텝 전용 엘리베이터에 오르자, 고요한 공간이 심장 박동처럼 뛰었다.
문이 열리는 찰나, 뜨거운 스톡 향과 금속이 부딪히는 미세한 울림이 동시에 밀려왔다.
순간 깨달았다.
"여기는 베르사체가 아니다."
공기부터 달랐다.
셰프들의 발걸음, 칼과 도마가 만드는 리듬, 스팀이 퍼지는 속도, 심지어 냄비가 뿜어내는 열기마저 쉐라톤만의 박자를 품고 있었다.
이곳엔 네 개의 레스토랑이 있다.
고급 다이닝, 이탈리안, 시푸드 뷔페, 그리고 프라이빗 다이닝.
나는 그 모든 주방을 오가며 연결을 담당하는, 거대한 시스템을 움직이는 윤활유가 될 예정이었다.
이 주방은 단순히 요리를 하는 곳이 아니었다.
마치 거대한 시계처럼 수많은 톱니바퀴가 정밀하게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고, 그 안에서 나는 흘러야 할 오일이었다.
첫 주는 칼을 잡는 시간보다 관찰하는 시간이 길었다.
레스토랑마다 분위기는 놀라울 만큼 달랐다.
네 명이 전부인 작은 키친은 섬세한 현악 4중주 같았고, 스무 명이 넘게 움직이는 뷔페 주방은 힘 있는 관현악단 같았다.
나는 각 주방을 돌며 셰프들의 이름을 하나씩 외우고, 그들이 맡은 파트와 숨겨진 리듬을 기록하듯 마음에 새겼다.
누군가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고,
누군가는 ‘새로 온 놈이군’ 하는 눈빛으로 고요히 나를 훑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내 실력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악기와 음색을 하나의 곡으로 엮는 지휘자 같은 것이었으니까.
점심 피크가 시작되기 전, Executive Chef가 조용히 다가와 말했다.
"Minho, 오늘과 내일은 그냥 흐름을 느껴봐.
여긴 칼질만 잘하는 셰프보다
주방의 공기와 박자를 읽고 연결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해."
그 한마디가 깊게 꽂혔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가 단순히 실력을 증명하기 위한 전투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을 채우고, 주방 전체의 리듬을 조율하는 것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날 하루, 나는 불꽃처럼 튀는 팬의 열기와 셰프들의 짧은 숨결 속에서 흐름을 읽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았다.
스테이션마다 미묘하게 다른 긴장과 온도, 셰프들의 눈빛과 칼끝의 움직임이 마치 악보의 음표처럼 보였다.
그리고 마음속에 다짐했다.
'이곳에서 나의 임무는 나를 빛내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함께 빛날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진짜 Sous Chef의 자리다.'
별빛이 번져 오는 시각, 주방은 하루의 뜨거운 숨을 내려놓았다.
나는 스테인리스 테이블에 손을 올려, 아직 남아 있는 열기를 느꼈다.
주방이라는 심장부가 오늘도 쉼 없이 뛰었음을, 그리고 그 박동 속에 이제 나 역시 한 박자의 일부가 되었음을 실감하며 새로운 하루의 서막을 향해, 깊게 숨을 들이켰다.
*처음 제 에세이를 접하시는 분들께*
3권에 담긴 모든 이야기는 "웰던인생, 미디엄레어 꿈" 1권에서부터 이어지는 흐름 속에 놓여 있습니다.
아직 1권과 2권을 읽지 않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어주시면 더욱 깊이 있고 생생하게 다가올 거라 생각합니다.
정주행을 추천드립니다.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hoju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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