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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셰프를 무너뜨린 도시락 (최종 퇴고본)

미야 작가에게 배우는, 단어가 반죽되고 문장이 구워지는 글빵 연구소

by 호주아재

불과 칼이 쉼 없이 부딪히던 주방 한가운데, 잠시 숨이 멎는 듯한 정적이 흘렀다.
은빛 칼날이 불빛을 받아 번쩍였고, 달궈진 팬 위로 향신료 냄새가 날카롭게 퍼져나갔다.
요리를 업으로 삼는다는 건 결국 기술보다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일이었다.
그 단순한 진실을 깨닫기까지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쉐라톤 호텔의 점심 서비스가 끝난 오후.
아직 열기가 식지 않은 주방은 땀 냄새와 버터 향으로 가득했다.
그 혼잡한 틈새에서, 지금도 잊히지 않는 한 장면이 내 기억에 남아 있다.

인도 출신의 주방 보조, 모헤샤가 조심스레 다가왔다.
손에는 오래된 플라스틱 통 하나가 들려 있었다.

"셰프… 이거 좀 데워서 먹어도 될까요? 아내가 싸준 거라서요."

개인 음식을 데우는 건 규정 위반이었지만, 그 순간 내 마음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그저 허기를 달래려 했을 뿐인데, 고요한 눈빛에는 하루의 피로가 묻어 있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전자레인지 문을 열었다.
버터의 고소함과 허브의 향이 얽힌 공기 속으로, 마치 다른 나라의 점심이 잠시 주방을 찾아온 것처럼 낯선 카레 냄새가 천천히 스며들었다.

"셰프도… 드셔 보시겠습니까?"

한 숟가락 떠 넣자, 부드럽고 알싸한 맛이 혀끝을 감쌌다.
"와… 네 아내 정말 요리를 잘하시네. 혹시 셰프였어?"
그는 잠시 웃더니 고개를 떨구었다.

"예전에 셰프로 일했었죠. 하지만 지금은… 갑상선암으로 투병 중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귀에선 주방의 소리가 잠시 멎었다.
기름이 튀는 소리도, 환풍기의 굉음도 멀어졌다.
그 고요 속에서 오직 그의 목소리만이 또렷하게 남았다.

"밤에도 자주 깨지만, 제가 새벽에 일찍 나가는 걸 알면 꼭 부엌으로 나옵니다.
힘겹게 숨을 몰아쉬면서도 도시락을 만들어요.
본인도 거의 먹지 못하면서… 저한테만 따뜻한 밥을 챙겨주죠."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 도시락 속엔 밥보다 더 뜨거운 것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바로 누군가의 하루를 지탱하는 사랑의 온기였다.

"인도로 돌아가 수술을 받고 오면 어떨까?"
조심스레 묻자,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제 마을엔 병원도, 의사도 없습니다.
그리고 출국하면 비자가 취소돼요.
지금은 학생비자에서 전환된 워킹비자라서 개인 보험은 있지만…
그 보험으로는 엄청난 수술비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허공을 바라보다가 낮게 덧붙였다.
"그래서 영주권이 꼭 필요합니다.
그걸 얻어야만 국립병원에서 무료로 수술과 치료를 받을 수 있거든요."

아내를 살리고 싶어도, 갈 수도, 남아 있을 수도 없는 막다른 현실.
그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그 안엔 절망보다 더 깊은 체념이 묻어 있었다.

우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식은 밥을 천천히 씹었다.
숟가락을 쥔 손끝이 약하게 떨렸다.
그 작은 동작 하나하나가 삶을 버티는 힘처럼 보였다.

같은 날,
저녁 서비스가 시작되기 전, 나는 반죽을 꺼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밀고, 소스를 바르고, 치즈를 올렸다.
갓 구워낸 피자를 그의 앞에 조용히 놓으며 말했다.
"오늘 저녁은 내가 네 아내 대신 도시락을 만들어봤어."

그는 살짝 고개를 숙이더니, 눈가에 옅은 주름이 생기도록 씩 웃었다.
그 미소엔 수많은 말보다 깊은 온기가 담겨 있었다. 그날 내가 모헤샤에게 건넨 피자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한 사람의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 닿는, 조용한 기도의 형태였다.

그날 이후, 나는 불 앞에 설 때마다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리게 되었다.
내 요리를 먹을 사람의 표정, 그 하루의 고단함, 말없이 삼킨 마음의 무게까지.
'요리는 결국 사람을 향한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
그 단순한 진실이 그날, 내 안에 깊게 자리 잡았다.

지금은 안타깝게도 그와 연락이 닿지 않아 그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가끔 그날의 도시락이 떠오른다.
버터 향 속에 스며 있던 따뜻한 숨결,
한 사람을 살리고 또 한 사람을 깨운 그 한 끼의 기적이.

그날의 냄새는 아직도 내 마음 한편에 남아, 시간이 흘러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이제 나는 나의 요리가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게 데울 수 있기를 바란다'





이 글의 퇴고 과정을 함께하며 세심한 교정과 따뜻한 지도를 아끼지 않으신 미야 작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 손끝의 조언 하나하나가 글의 결을 바로 세워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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