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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의 글빵 연구소" 졸업작품 발표회

by 호주아재

가을비가 고요히 내리던 서울, 안국역 근처 '서울 그라피티'.
창문 밖으로 번지는 빗방울 사이로 창덕궁의 단풍이 젖어 있었다.
유리창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마치 누군가의 심장박동처럼 느껴지던 그날,
미야의 글빵연구소 졸업작품 발표회가 문을 열었다.

비가 내렸지만 사람들은 모두 환하게 웃으며 모여들었다. 글을 사랑하는 이들의 발걸음엔 설렘이 묻어 있었다.
글빵의 주인이자 선생님 이신 미야 작가님을 중심으로, 블라썸 도윤 작가님, 정윤 작가님, 이디뜨 작가님, 유연 작가님, 명랑처자 작가님, 눈물과 미소 작가님, 빛나는 작가님, 조선여인 작가님, 선약을 미루고서 참석하신 보니또 글밥상 작가님, 아이의 병원일로 2시간이나 지각한 고요한 동산 작가님, 시어머니께 부랴부랴 아이들 맡기고 늦게 도착한 회색토끼 작가님등 이렇게 오랜 시간 글빵을 함께 일군 작가님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채워갔다.

"어머, 직접 보니 더 반가워요!"
"댓글로만 뵙던 이름이 이렇게 앞에 있으니 신기하네요."
익숙한 이름과 낯선 얼굴이 어우러지며
'글로 맺은 인연의 축제'가 시작됐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꽃미남 살림꾼 욱이 작가님.
직접 구워온 알밤과 고구마를 내놓으며
"동치미도 담갔는데, 그건 두고 왔어요. 다음에!"
하는 한마디에 모두 배꼽을 잡았다.
(사실 그날 밤, 동치미가 제일 그리웠다는 후문이...)




비는 여전히 유리창을 두드렸고,
분위기가 무르익기도 전에 자연스레 '합평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누군가는 메모지에 밑줄을 긋고,
누군가는 조용히 "이 문장 좋다..."를 중얼거렸다.
빗소리와 펜 소리,
그 두 가지 리듬만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오늘의 하이라이트.
욱이 작가님의 특강 시간.
서울예대 극작과, 한예종 희곡공모전 당선,
JTBC 드라마 작가 출신이라는 화려한 이력보다
그의 '말'이 더 빛났다.

그의 문학 강의는 빗방울처럼 리듬감 있게 떨어졌고, 순식간에 모두의 마음을 적셨다.
"이분, 대사 쓰는 게 아니라 대사로 사는 분이네."
누군가의 속삭임에 다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흐르고, 비는 여전히 창문을 적시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졸업작품 시상식의 순간이 찾아왔다.

조명은 그대로인데 기분에 살짝 낮아진 톤의 느낌과 함께, 작가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였다.
누군가는 손을 모아 숨을 고르고,
누군가는 괜히 종이를 만지작거렸다.
방 안의 공기마저 긴장으로 눅눅하게 젖어 있었다.

"자, 이제 시상을 시작하겠습니다."

미야 작가님의 목소리가 빗속의 종소리처럼 울렸다.
"먼저, 이 글빵을 끝까지 지켜주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 말에 공기가 달라졌다.
창문을 두드리던 빗소리조차 잠시 멈춘 듯했다.

"우선 공로상,...... 블라썸 도윤 작가님!"
따뜻한 박수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누군가는 '역시 도윤 반장님이야' 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도윤 작가님은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그의 손에는 언제나 '팀워크'라는 이름의 무거운 펜이 쥐어져 있었다.

이어서...
"한 분이 더 있죠? 또 공로상,...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진 못하셨지만, 오즈의 마법사 작가님!"
두 이름이 불렸을 때
방 안의 온도가 조금씩 따뜻해졌다.
그건 단순한 상이 아니라,
함께 걸어온 길에 대한 존중의 박수였다.

그리고 이어진 졸업작품상 시상식.
이때부터 공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누군가는 손을 모았고, 누군가는 눈을 감았다.
창밖의 빗소리가 이제는 긴장한 심장의 리듬처럼 들렸다.

"자, 이제 작품상 수상자를 발표하겠습니다."

3등 상, 고요한 동산 작가님!
작은 환호와 함께 박수가 번졌다.
곧, 다시 정적.
모두가 다음 이름을 기다렸다.

2등 상, 유연 작가님!
짧은 탄성, 그리고 또다시 숨죽임.
이제 남은 건 단 한 자리.

창밖의 비는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유리창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이
누군가의 심장을 대신 뛰는 듯했다.

그리고..... "자, 대망의 1등 상은…"
그 짧은 쉼표 하나가
한 편의 서사보다 길게 느껴졌다.

"호주아재 작가님!"

순간, 정적.
누군가 놀란 듯 "어?! 호주아재??"하고 외쳤고,
이내 폭소와 박수가 뒤섞여 터졌다.

그렇다.
도치법에 미쳐 산다는 소문난,
문장력보다는 '뒤집기 실력' 하나로 버텨온
그 작가가 1등을 타버린 것이다.

비는 여전히 세차게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온몸이 전율로 떨렸을 테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을 것이다.
수상 소감을 말해야 했겠지만
얼떨떨하고 갑작스러운 수상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
.
.
.
.
.
나는 그 자리에 없었으니까....

그렇다.
나는 호주에서,
비행기표 한 장 예약하지 못한 채
창덕궁이 아니라 골드코스트의 어느 호텔 주방에서 주말 저녁 손님들의 식사를 만들고 있었다.

그러니 오늘의 상은,
내가 쓴 글보다
내 대신 그 자리를 빛내준 글벗들에게 주고 싶다.

그래도 한 줄만은 남기고 싶다.

"그날의 웃음소리, 그 따뜻한 밤공기.
저는 비록 그 자리에 없었지만,
마음은 누구보다 먼저 도착해 있어서 작가님들의 온기를 그대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창덕궁의 단풍빛과
골드코스트의 파도 소리가
어딘가에서 조용히 맞닿는 순간,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나의 마음은 같은 리듬으로 뛰고 있었다.

우리가 함께 글빵연구소에서 써 내려간 여정은
누가 먼저 도착하느냐의 이야기가 아니라,
끝까지 같은 하늘을 바라보는 마음의 기록이었다.

그리고, 그날의 비는 지금도 내 마음속에서
여전히 따뜻하게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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