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과 고급 승용차 사이...
최근 온라인 토론과 다양한 기술 컨퍼런스에서 영지식(Zero-Knowledge, ZK) 기술의 미래를 놓고 흥미로운 질문들이 반복적으로 제기되고 있어서 관련 내용 참고하여 작성해보았습니다.(영지식증명 관련 배경지식 필요...)
"우리는 맞춤형 회로(Circuit)를 만들어야 할까요, 아니면 범용 가상머신(zkVM)을 구축해야 할까요?"
"zkVM을 만든다면, RISC-V와 같은 대중적인 CPU 명령어를 사용해야 할까요?"
이러한 논쟁은 종종 충분한 데이터나 각 선택지의 장단점을 면밀히 따져보지 않은 채, 흑백논리로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문제처럼 비춰지곤 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최적화, 엔지니어링의 제약, 그리고 보안 문제들이 얽혀 그림을 훨씬 더 복잡하게 만듭니다.
이 글에서는 단순히 이론적인 속도만을 쫓는 것이 정답이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기술 발전의 병목 현상이 어디에 있는지, 개발팀이 얼마나 빠르게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구축될 생태계가 얼마나 회복탄력성을 갖게 되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회로와 zkVM의 논쟁부터 시작하여, 영지식 증명에 특화된 맞춤형 설계와 범용 RISC-V 설계 중 zkVM 아키텍처의 미래는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한 심도 있는 탐구를 시작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던져지는 질문은 항상 '서킷(Circuit)이냐, 가상머신(VM)이냐'입니다. 표면적으로 "서킷이 더 빠를 수 있다"는 말은 사실이지만, 이는 이야기의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서킷과 zkVM의 관계는 마치 고도로 숙련된 기술자가 수작업으로 조립하는 F1 레이싱카와, 높은 수준의 양산 기술로 만들어지는 고급 승용차의 관계와 같습니다. 특정 트랙에서 최고의 성능을 내기 위해 모든 부품을 맞춤 제작하는 F1 머신(서킷)은 압도적인 속도를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엄청난 시간과 비용, 그리고 최고 수준의 전문가들을 필요로 하며, 다른 종류의 트랙에서는 그 성능을 보장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고급 승용차(zkVM)는 처음부터 F1 머신만큼 빠르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표준화된 부품과 검증된 설계도를 바탕으로 더 빠르고 안정적으로 제작할 수 있으며, 지속적인 부품 교체와 튜닝을 통해 성능을 꾸준히 개선해 나갈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많은 개발팀이 초기의 맞춤형 회로 방식에서 보다 단순하고 범용적인 zkVM 아키텍처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는 사실은, 현재 시장이 이러한 장단점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속도라는 한 가지 이점을 위해 복잡성, 개발 기간, 유지보수의 어려움을 감수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지에 대한 고민의 결과인 셈입니다.
엔지니어링의 세계에서 '전부 아니면 전무'식의 선택은 거의 없습니다. 앞선 비유처럼, 고급 승용차에 F1 기술에서 영감을 받은 터보차저나 브레이크 시스템을 장착하여 성능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zkVM에서도 핵심적인 연산을 처리하는 맞춤형 회로를 추가하여 전반적인 효율을 높이는 하이브리드 방식이 사용됩니다.
이러한 접근법이 왜 효과적인지는 1967년 진 암달(Gene Amdahl)이 제시한 컴퓨터 시스템의 경험 법칙인 '암달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 법칙의 핵심은 "시스템의 특정 부분을 최적화해서 얻는 전체적인 성능 향상은, 해당 부분이 전체 작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전체 작업 시간의 80%가 한 곳에서 소요된다면, 그곳을 최적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반면, 5%밖에 차지하지 않는 부분은 아무리 개선해도 전체 성능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합니다.
zkVM에 이 법칙을 적용해 봅시다. 가령, 특정 zkVM이 맞춤형 회로보다 증명 생성 속도가 10배 느리고, 전체 증명 시간의 80%가 특정 연산(예: keccak 해시 계산)에서 소요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개발팀은 이 병목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해당 연산만을 위한 최적화된 회로를 제작하여 zkVM에 내장합니다. 이 변화만으로도 전체 속도는 10배가 아닌 약 3배 느린 수준까지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이후 또 다른 병목 구간을 찾아 최적화된 회로를 추가하는 과정을 반복하면, zkVM의 전체적인 성능은 점차 맞춤형 회로에 근접하게 됩니다. 결국, 몇 년이 걸릴 프로젝트를 1년 안에 시장에 선보일 수 있다면, 이는 엄청난 경쟁력으로 작용합니다.
그렇다면 zkVM을 만들 때, 영지식 증명에 특별히 최적화된 맞춤형 명령어 세트를 가진 가상 머신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요? 이는 범용 CPU 설계인 RISC-V를 사용하는 것과 비교하여 또 다른 장단점을 제시합니다.
맞춤형 명령어 세트는 RISC-V보다 더 단순하고 빠를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개발자들이 해당 VM에서 애플리케이션을 구축할 수 있도록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나 컴파일러를 만들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며, 생태계 확장에 큰 장벽이 될 수 있습니다.
반면, RISC-V와 같은 표준 명령어 세트를 사용하면 기존의 풍부한 개발 도구와 언어(예: Rust)를 활용할 수 있어 개발 속도와 편의성이 크게 향상됩니다. 일부 추산에 따르면 맞춤형 VM이 RISC-V 기반 VM보다 3배에서 6배 더 빠를 수 있다고 하지만, 이러한 잠재적 성능 이득이 생태계 구축의 복잡성과 어려움을 상쇄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중요한 고려사항입니다.
지금까지는 엔지니어링의 복잡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논의를 진행했지만, 이 기술들이 실제 자산을 보호하는 데 사용될 때 우리는 '보안'이라는 매우 중요한 가치를 고려해야 합니다.
시스템이 단순할수록 문제를 발견하고 수정하기가 더 쉽습니다. 반대로 구성 요소가 많고 복잡할수록 공격에 노출될 수 있는 표면적은 넓어집니다. 코드는 결국 사람이 검증할 수 있을 만큼 이해하기 쉬워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그는 언제나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다양성이 핵심적인 이유입니다. 설령 이론적으로 가장 빠른 단 하나의 설계가 존재한다고 해도, 이더리움과 더 넓은 금융 생태계는 단일 실패 지점(Single Point of Failure)이 없을 때 더 안전해집니다. 컴파일러나 공유 라이브러리의 버그 하나가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미래를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양한 선택지를 확보해야 합니다.
커뮤니티로서 우리는 여러 팀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영지식 증명 기술을 구축하도록 장려해야 합니다. 아키텍처, 프로그래밍 언어, 그리고 구현 방식의 다양성은 시스템 전체를 회복탄력적으로 만드는 핵심 요소입니다. 여러 경쟁력 있는 옵션이 존재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보안이 확보될 수 있으며, 이것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한 현명한 대응전략일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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