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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an Choi Dec 28. 2024

어느 날 저녁, 친구와의 대화

나는 과연 어떤 친구인가.

(친구 A)

"맨날 약속 시간에 늦는 친구 때문에 짜증나. 내 소중한 인생의 시간을 그 친구 때문에 낭비하는 것 같아서 화고 말이지. 특히 친구들 여럿이서 모임 하자고 하면, "너네끼리 먼저 만나고 있어, 나중에 갈게." 이렇게 말하며 늦게 와. 마치 배려하듯이 말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나와 둘이 만날 때는 시간 약속을 잘 지키냐, 그것도 아니지. 그냥 그 친구의 안 좋은 습관 같아. 이런 일이 반복되니 화가 나."


(친구 B)

"와, 그런데도 그 모임이 유지된다고? 내 생각에는 그 모임이 그래도 유지되는 이유는 그 친구를 이해하는 배려심 많은 다른 친구들이 있기 때문일 거야. 그리고 사실 너도 나도 완벽한 인간은 아니잖니? 아마 다른 친구들이 봤을 때는 너도 분명 부족한 점이 있을 텐데, 아마도 그 친구들이 너를 그동안 좋게 봐왔기 때문에 이해해 주는 것들도 있을 거야. 그 친구만 그런 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다들 이해하는 거지."


(친구 A)

"그럴 수도 있겠다. 20대 때는 여러 명이서 함께 어울리는 것이 참 좋았었는데, 나이 들수록 마음 맞는 친구 몇 명만 있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어디서 봤는데, 20대 때 친구가 많은 건 마음이 불안하고 연약해서래. 혼자 설 수 없으니 같이 있고 싶고, 그러면서 두려움을 없애는 거래. 그럼 40대부터는 왜 혼자이고 싶을까? 그때쯤 되면 이미 스스로 강해서, 주변 사람이 번잡스럽게 느껴진대."


(친구 B)

"오, 그 말 좀 설득력 있네. 나도 요즘 비슷한 생각을 한다니까. 아무 때나 불러도 나올 수 있는, 내 속 이야기도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그런 친구 몇 명만 있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 결혼하고 애도 키우다 보니 20대 때부터 만났던 친구들과는 연락도 뜸해지는 것 같아. 특히 살아온 배경이나 생활방식이 다르다 보면 공감대도 많이 없어지는 것 같고. 인간관계에도 유효기간이 있는 것 아닐까."


(친구 A)

"맞아. 나도 비슷한 생각이야. 근데 그런 생각해 본 적 있어? 아무 때나 내가 원할 때 만날 수 있는 그런 친한 친구가 필요하다는 말의 의미 말이야. 난 오히려 되묻고 싶어. 그럼 넌 그런 친구일 수 있냐고. 내가 상대방에게 그렇게 할 수 있어야 나도 그런 친구를 가질 자격이 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어떤 친구가 나를 찾았을 때 만사를 제쳐두고 나가서 그 친구를 만날 만큼의 애정이 있는 그런 친구가 있어?"


(친구 B)

"아... 생각해 보니,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네. 그동안 내가 '받기'만을 바란 것 같기도 하다. 근데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요즘처럼 바쁠 때는 친구들이 연락하면 '지금 너무 바빠, 나중에 보자.' 이러면서, 정작 내가 힘들 때는 친구들이 달려와 주길 바라고. 나도 그런 친구가 되어 줄 수 있어야 그런 친구를 바랄 수 있을 텐데. 결국 사람은 잘 어울려 살아가야 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가족 외에도 진정한 친구가 필요한 듯."


(친구 A)

"그러게... 나도 마찬가지야. 아까 시간 약속 잘 안 지키는 친구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결국 우리 모두가 완벽하지 않다는 걸 새삼 깨닫네. 어쩌면 우리도 다른 친구들한테 못마땅한 부분이 있을 텐데, 그래도 여전히 연락하고, 보고 싶어 하고, 그게 진짜 우정 아닐까? 서로의 부족한 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도, 필요할 때 기꺼이 달려가 주는 그런 관계. 맨날 실없는 이야기만 했었는데 오늘은 너무 진지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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