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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질과 영화

by 사파이어

재작년 딸이 재수를 하던 , 영화와 드라마와 책과 뜨개질은 나의 좋은 친구였다.


새로 취득한 자격증으로 그리 어렵지않게 취직을 했지만 적응하기는 힘들었던 직장을 씩씩하게 그만두고, 고3 때 제대로 하지 못했던 수험생 엄마 노릇을 이번에는 잘 해봐야겠다고 마음 먹었고, 시간은 넘치도록 많았다.


뜨개질이라 해봐야 바닥 부분만 좀 머리를 써야하고 이후는 똑같은 패턴으로 계속 뜨기만 하면 되는 작은 가방이었는데, 뜨다보니 귀가 허전해서 영화와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 것인지,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 뭔가 손이 허전해서 뜨개질을 시작한 것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예 보지않고 손의 감각만으로 뜰 수 있는 실력은 아니었기 때문에 귀로만 들어도 장면이 대충 그려지는 영화와 드라마여야했다. 물론 궁금한 장면에는 잠깐잠깐 눈길이 갔고, 어 이거 맘에 드는데 하는 작품은 혼자 밥을 먹으면서 혹은 잠자리에 들어 처음부터 제대로 봤지만, 스타트는 항상 뜨개질과 함께였다. 일단 영어는 패스~ 한국어와 일본어로 된 영화와 드라마만 줄기차게 골랐다.


한창 시청중이라 이어질 내용이 막 궁금하고, 이건 좀 제대로 봐줘야겠네 싶은 작품이라면, 밥 시간과 잘 시간을 기다리는 시간마저도 뭔가 설렘 비슷한 마음에 들떠 있었다. 그 영화와 드라마 마지막이 한참 남아있으면 왠지 모르게 내 마음도 두둑하니 여유롭고, 다 봐갈 쯤이면 초조해지고, 끝나면 너무나 허전했다. 다시 새로운 작품을 골라 거기에 안착할 때까지 헤매고 다닐 때는 굉장히 신경질적이기까지 했다. 독립영화도 처음 보기 시작했는데, 왓챠에 그 새로운 세계가 있었다.




내짝꿍 초코가 떠난 이후 밤이 너무 무섭다. 둘이 살 때는 몰랐는데, 시골집 밤은 너무 적막하다. 때로는 밖에서 바스락거리는 정체 모를 소리도 들려온다. 2층 데크에서 발소리 쿵쿵 울리며 뛰어노는 고양이들의 밤마실이 그나마 위안이 되고 고맙기까지 하다.


자려고 눈만 감으면 초코의 아파하던 모습이 떠올라 잠자리에 드는 것이 두려웠다. 그렇게 요즘 또다시 영화와 드라마를 귀로 보고 있다. 대부분 일본 영화나 드라마다. 예전 나의 찜리스트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던 개와 고양이에 대한 일본 영화가 생각보다 많다. 특히 고양이 영화가 참 많다.

소소한 울림이 슬그머니 다가오는 그 감성이 좋다. 너무나 소소해서, 소소한걸로 치면 절대 꿀리지 않는 한심한 나여도 괜찮다고 다독거려주는 듯한 거창하지 않은 위로가 따뜻하다. 그렇게 매일밤 잠결에 문득문득 들려오는 소리들을 자장가 삼아 잠드는 요즘이다. 비까지 내려 소소함을 찾아 헤매는 나의 눈과 손가락이 유난히 바쁠 것 같은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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