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차박을 했다. 도전이라기보다는 내 집을 떠나 잘 수 있는 곳을 재고 또 재다가, 어제의 내 기분과 어쩌다 맞아떨어져 얼떨결에 하게 된 차박이었다.
개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엄마아빠집이다 보니, 부모님 집 손님이 내 손님이 되곤 한다.
동네분들이야 앞으로 쭉 보고 지낼 이웃이니 그러려니 하는데, 친척은 좀 힘들다. 이혼해서 여기 내려와 살고 있다고 말하면 그걸로 그만인데, 또 굳이 말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다. 길어지니까.
하루 주무시고 간다니 그럼 이참에 나도 멀리까지 여행 한 번 다녀올까. 남해나 통영에 가고 싶기도 하고. 생각은 그렇게 해보면서도 뭔가 진심으로 내키지는 않는다. 숙소 찾아 예약하는 게 일이다.
그럼 예약 안 해도 되는 플랜을 짜볼까. 서울 가서 친구 만나고 밤에는 찜질방에서 자는 코스. 찜질방에서 자는 거 해보고 싶기도 하고. 친구 누구 만나지. 약속 잡는 것도 일이네.
아침이 되어서도 정하지 못하고 일단 어느 쪽이든 염두에 두고 대충 챙겨 나와 도서관으로 갔다. 여기에 있다가 점심때쯤 정하자.
전날 밤 잠이 부족했는지 책을 읽는데 자꾸만 눈이 스르르 감겼다. 못 가겠다 서울. 못 가 못 가 남해.
5시쯤 도서관에서 나왔는데 일단 계곡을 따라 쭉 돌았다.
배는 고프지 않아 커피랑 물만 사서 강가 공원으로 갔다. 일요일 저녁인데도 캠핑카와 텐트를 친 차들이 꽤 있었다. 여기 괜찮은데? 별로 안무서울 거 같고, 화장실도 있고. 차박 좋다!
말이 차박이지, 그냥 차 안에 앉아 있었다. 아직 해가 남았을 때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 좀 읽다가, 잠깐 걷다가, 슬슬 어둑어둑해져 오니 차들이 다 떠나고 혼자 남을까 봐 불안해하다가, 핸드폰 만지작거리다가..
다행히 대부분의 차가 떠나지 않고 밤까지 그대로 있었다. 캠핑카나 차박용 장비를 갖춘 차 말고도 나처럼 딸랑 차 한 대로 와있는 사람들도 꽤 있었는데, 나도 그중 하나면서 저 사람들은 일요일밤에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 참 궁금했다.
괜찮네 이러고 있는 것도~
다만 자리가 좀 불편했다. 옆으로 돌아 앉았다가, 양반다리를 해봤다가, 시트를 눕혀도 봤다가, 뒷좌석으로 넘어가 봤다가 별짓을 다해봐도 불편한 건 마찬가지였다. 결국엔, 불편한 게 당연하지. 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복병이 하나 더 있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지더니 밤새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자다 깨다 했다. 입고 있던 울점퍼 안으로 팔을 집어넣어 최대한 웅크려 보아도, 하반신이 또 무방비 상태라 챙겨 왔던 잠옷 바지로 다리를 둘둘 감쌌는데 하필 7부 바지를 챙겨 왔었다. 그러고 나니 또 코가 시려 점퍼 안에 잘 넣어두었던 팔을 수고스럽게 다시 꺼내 손바닥으로 얼굴을 한참 문질러주고.. 시동을 잠깐 걸었다 껐다가..
차박은 최후의 보루였던 터라 이불은 생각도 못했는데, 이불 생각이 너무 간절해서 집에 다녀올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갑자기 심장 부근이 조여오는 듯 하더니 오른 쪽 어금니 부근에 뻐근한 통증이 느껴졌다. 이러다가 심장마비라도 오는건 아닌가 일순 두려워졌으나, 호흡을 가다듬으며 잠시 있자니 그 느낌이 사라졌다.
그 와중에도 잠깐씩 잠은 들고, 추워서 깨고 하다 보니 어느새 날이 슬그머니 밝아오고, 주변 차들의 윤곽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깊은 안도감이 스르르 밀려왔고, 기뻐할 겨를도 없이 쨍한 아침해가 떠올라 있었다.
그리고 지금 아직도 차 안에 앉아 있다. 편의점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를 사가지고 와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고상하게 아침식사를 했다.
어르신들은 오늘 점심 드시고 가시려나. 오후에 가야지.
이게 이럴 일인가 싶어 웃음이 피식 나왔다가도, 내 마음이 그러고 싶다는데 어쩌겠어. 몸이 따라가 줘야지.
할까 말까 망설이는 일이 닥쳤을 때, 하지 않아서 마음이 불편한 일들이라면 그냥 해버리는 쪽을 늘 택했던 것 같다. 몸은 피곤할지언정.
남들을 위한 일도 그럴진대 하물며 내 마음이 편하고 싶다는데, 못 들어줄 일이 뭐 있을까. 괜히 마구잡이로 의미 부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