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속에서.
올 1월에 온라인 문학 강좌를 세 개 신청했었다.
홀로서기의 밑 작업으로 어수선한 시간을 보내던 작년,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이번에는 꼭 실천해보겠노라고 벼르고 별렀던 일이다. 그 중 하나인 블로그 강좌는 좀 망설였지만, 혼자서 하다보면 또 흐지부지될 것 같아 신청을 했다.
드디어 시작했다는 마음에 기뻤고, 중순 경 갑자기 시작된 누수공사와 씽크대 공사로 정신없는 1주일을 보내기 전까지, 2주 정도 실로 오랜만에 나긋나긋하고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2월부터 시작 예정이었던 블로그 강좌가 신청 인원 미달로 3월로 미뤄졌는데, 2월 초 다발성 림프종이라는 초코의 병명이 확실시되었고, 그 때까지만 해도 초코는 아프지 않았는데,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슬픈 현실 앞에서 오로지 초코만 바라보고 싶었던 나는 오히려 잘됐다 생각했었다.
3월 2일에 초코와 작별을 하고 당장 블로그 강좌가 시작되었지만 도저히 합류를 할 수가 없어 선생님께 양해를 구했다. 조금 괜찮아지면 시작하겠다고. 괜찮아질 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바쁘게 살면 차츰 잊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킁킁거리는 것만 빼고는 여전히 초에너자이저 백미터 달리기 선수였던 초코가 어느 날 밤 갑자기 헉헉거리기 시작하더니, 약을 거부하고, 옆으로 눕지 못해 엎드려만 있고, 통증으로 밤새 괴로워하고, 밥을 안 먹고.. 이 모든 것이 열흘 안에 순식간에 일어난 일들이라, 무지하고 멍청한 나는 우리 초코 어떡해 어떡해 울기만 했었다. 건강한 아이들일수록 전이와 진행 속도가 빠르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레 보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렇게 어영부영 황망하게 초코를 보낸 내가 무슨 정신으로 글을 쓴담. 하지만 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후회와 자책의 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쥐어뜯고만 있기에는 가슴이 터져나갈 것 같았다.
차마 초코의 영상을 볼 자신은 없고, 왜 그랬는지 지금은 모르겠지만 한동안은 강아지 영상만 죽어라 찾아봤다. 어느 순간 그 귀여운 강아지들을 보는 것조차 힘들어지고, 간간이 강좌 동기들의 블로그도 들어가 보며, 찔끔찔끔 톡방에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면 선생님은 힘들 때는 글을 쓰는 게 많은 도움이 된다고 격려를 해주셨다.
써볼까. 당장 쓰고 싶은 건 초코에 관한 것뿐이니, 지난 겨울부터 3월까지의 우리의 시간에 대해 써보자. 힘들었지만 꾸역꾸역 썼다. 쓰고 나니 이번에는 어줍잖게도 누군가의 위로와 공감을 무척이나 받고 싶었다.
그 즈음 내 앞에는,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로 가득한 인간세상이 있었고, 내 마음 속 초코와 나, 둘만의 세상에서조차 후회와 죄책감으로 괴로워했고, 눈앞에는 내가 살아가야 할 현실의 세상이 있었다.
아직 이삿짐 정리가 덜 끝난 딸의 자취방에 다녀오고, 미루고 미뤘던 산부인과 검진을 받고, 자격증 강좌를 신청하고, 작년 한 해 보기 싫게 널부러져 있던 뒷산 나무 정리를 의뢰하고, 2층 데크 오일스테인 작업을 하고, 초코와 나의 이니셜을 내 손글씨로 써넣은 목걸이 펜던트를 맞추고, 지하수 관정작업이 시작되고, 일은 기사님들이 하는데 내가 괜히 바쁜 척 왔다갔다 하고, 괜히 씩씩한 척 밥을 먹고 웃었다. 그렇게 3월을 보냈다.
4월이 되어 브런치를 시작하고, 3월에 써두었던 글을 올리고, 이별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분들의 글을 열심히 찾아 읽었다. 슬픔에 취해 되는대로 쏟아낸 나의 징징거림에도 말없이 토닥거려주는 듯한 따뜻한 하트에 감사했고, 이별의 아픔으로 힘들어하는 글을 읽으며 한껏 공감의 눈물을 흘렸다.
먼저 간 영혼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의식들이 실은 남겨진 자들을 위한 위로라는 것을 알았다. 초코의 영혼이 새로운 여행을 떠나는 날을 기리며 소박한 의식을 치르는 것으로, 내 마음이 아주 조금은 편안해졌다. 초코는 이제 행복한 곳에서 건강하게 지낼 것이고, 나는 초코를 위해 온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그 때가지 쓴 글을 묶어 서둘러 브런치북을 만들었다. 이 아픔은 오로지 홀로 감당해내야 하는 것이며, 이제는 초코를 내 가슴에 편안히 묻어주자 했다. 그렇게 4월이 또 갔다.
어느 순간 툭, 무장 해제되었다.
아마도 천 번은 넘었을 다짐. 아무 소용이 없었나보다.
홀로 감당해 내야할 아픔에 잠식당하는 것이 두려워서 손톱만큼의 빈틈조차 허용치 않겠다는 듯, 혼자 있는 시간이면 집요하게 글을 찾아 헤맸다.
후회와 죄책감은 나만 느끼는 게 아니야, 반드시 면죄부를 받아내야만 직성이 풀릴 기세로. 아니, 어쩌면 너무 외로워서. 아픔을 머금은 따스한 언어는 곧 내 마음이어서. 아픔을 공유해준 분들이 너무 고맙고, 슬프고도 따뜻한 위로는 시공간너머 나의 마음에까지 와 닿는 것이었다. 공감과 감사의 마음을 남기고 싶은 욕망은 들끓어 넘쳤으나 차마 하지 못했다. ‘많이 그리우시죠. 저도요. 힘들었고 여전히 아플 그 마음 나누어 주셔서 감사해요’
꼭 전하고 싶었는데, 왜인지 끝내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다.
그런 날이 있었다가.
어느 날은 나는 저만큼 하지 못했어. 내가 초코를 너무 일찍 보냈어. 그 때는 결심 이딴 거가 문제가 아니고, 보내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지만, 정말 최선이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자학.
아침에 눈을 뜨면 어느새 먼저 일어나 침대 맡에서 꼬리를 살랑거리던 초코의 부재를 불현듯 확인하는 순간을 시작으로, 짧은 산책을 하고 와서 밥을 챙겨주던 아침의 루틴이 사라져 도대체 뭐부터 해야할지 몰라 어영부영 흘러가버리는 아침 시간. 그리고 하루 종일. 씩씩한 척 괜찮아지고 있는 줄 알았던 내 마음 속에 갇혀있던 눈물이 더는 못참겠다며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 나오는 것인지 틈만 나면 쏟아져 내린다. 나는 또다시 3월 2일의 밤으로 돌아가 있었다.
며칠을 그렇게 보내면서 하나의 문장이 떠올랐다. ‘아직은 아니다.’
아직은 나눌 때가 아니었는데.
아픔이 영글어야만 빛날 수 있는 따스함이었구나.
그 누구에게도 가닿지 못할, 그래도 나에게는 소중했던 나의 첫 브런치북을, 뭐에 홀린 듯 서둘러 묶을 때만큼이나 허겁지겁 삭제를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눈물 젖은 일기장부터 채울 일이다.
아직은 동굴에서 홀로 견뎌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