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였더라.
중고딩 적 친구네 자취방에 놀러갔다. 친구랑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우정에 금 갈만한 주제로 대화가 흘렀다. 친구가 날 시험에 들게하는 질문을 했다.
"만약 내 애인을 소개 시켜줬는데, 내 애인이 네 꿈에 그리던 이상형이야. 근데 내 애인이 너에게 이성적인 호감 이상이 있다는 게 느껴져. 그럼 어떻게 할 거야?"
나는 당당히 대답했다.
"고민해보겠지. 눈 높은 내 눈에 차는 남자가 있는데, 심지어 그 상대가 내게 관심 있다? 그럴 확률은 애초에 불가능에 가까워. 근데 그 불가능한 확률이 일어났는데, 내가 그 사람을 포기할 수 있을까? 난 어지간하면 의리를 지키는 사람이겠지만, 그렇다고 인생에 한 번 올 기회를 스쳐보낼 사람이 아니야. 너한테는 미안하겠지만, 그래도 난 그 남자를 뺏어볼 거야. 그러니까 정말 내가 시험에 들 것 같으면, 네 남친을 함부로 내 앞에 들이밀진 마."
그래도 10여년 우정이 있는데 의리 없는 년이라고 욕 먹을 줄 알았는데, 친구는 싱긋 웃으며 한 마디 했다.
"그럼 내가 어지간한 남자보다 포기하기 아까운 인생에 한 번 올까말까 한 친구가 돼야겠다."
그 마음이 참이든 거짓이든, 나의 싹퉁머리 없는 답변에 어떻게 그런 다정하고 아름다운 답변이 고민 없이 흘러나올 수 있는 걸까?
나도 말과 마음이 예뻤으면 좋겠다. 끊임 없이 뇌에 힘주고 상대에게 어떻게 들릴까 의식을 감독하지 않아도. 나의 표정과 혀 끝과 행동에 맺힌 날카로움은 언제부터 시작된 거고 언제쯤에야 끝날런지.
사람은 고쳐쓰는 거 아니라는데, 그게 스스로다보니 좀 고쳐쓰고 싶다. 내가 다정을 사랑하는 건, 내가 다정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탐욕하게 마련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