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이 되고 싶지 않았어
그게 내 인생 자세였던 것 같다.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는 해도.
내 꿈과 목표는 원대하지 않았다. 세상은 내 탄생부터 나를 반기지 않았다. 아들바라기 집안에서 태어난 1990년생의 다섯째 딸.. 초상집 분위기에 걸맞게 나는 모두를 대신해 울음을 터뜨렸을 테지.
이웃집 모두로부터 칭찬받는, 똑똑하고 착한 딸들이 줄줄이 있는 집. 아빠는 밖에서는 자신이 희생하고 자식을 위해 투자하는 척 했지만, 그 머리 좋은 딸들을 줄줄이 낳고도 사교육은 커녕 문제집 살 돈 한 번 주지 않는, 용돈 한 번 주지 않는 가장이었다.
그런 집에서 나는 7살부터는 설거지를, 9살부터는 식칼을 잡고 야채라도 썰어야 밥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나의 노력은 별 가치가 없었다. 나는 비교적 똑똑했지만, 그것 역시 별 가치는 없었다. 이미 언니들이 충분히 똑똑해서 시골마을 전교 1등이야 언니들이 이미 보여줬던 전력이다. 심지어 글짓기 상장 같은 것도.
비단 내 부모 뿐 아니라, 시골 마을에 오래 머무른 선생님들한테도 그랬다. 언니가 똑똑했으니 뭐. 저 집안 머리가 영 못쓰지야 않겠지.. 내가 아무리 잘해도 그 기댓값들의 역치를 넘기긴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전략을 달리했다. 기댓값의 최하방선을 사수하는 걸로. 최선을 다해 최고가 되기 보다는, 간신히 상대를 실망시키지 않을 정도를 유지하는 것.
그게 내 삶의 태도고 자세였다. 어쩌면 이미 삶에 밴 그 자세가 내 삶을 박탈당하게 만든 걸까. 내 인생의 기회를 빼앗은 건 나 자신일까.
심연을 향하는 심리와 고민, 움직이지 않는 몸뚱이.. 한땐 꾸준함과 독기가 내 장점이었는데.. 내 그나마 쓸만했던 구석조차 찾아보기가 힘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