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면 외우든가.
당신의 자녀는 똑똑하지 않다.
당신의 자녀는 착하지도 않다.
당신들이랑 똑같다.
적게 낳아 귀하게 기르겠다는 부모의 사랑이 아이를 망치고 사회를 망치고 있다. 노키즈존을 시작으로, 소아과 폐지, 유초등교사의 탈주와 자살까지 이 모든 원인은 자식 사랑이 유별난 그들 때문이다. 한 가지 확실히 하자. 인성은 9할이 가정교육이다. 그런데 요새 애들은 외동들이 많아서 그런가, 두 가지 양상이 매우 흔히 보인다.
아이를 모시는 유형. 하나부터 열 까지, 모든 것을 맞춰주고 해달라는 건 다 해준다. 아이의 모든 욕망과 욕구에 전폭적인 지지를 해준다. 아이의 감정을 읽어주고, 아이의 속상함은 나의 재난이 된다. 애가 친구랑 싸웠으면 그 집에 쫓아가야 하고, 학교에서 속상한 일이 있었으면 교장과 통화를 해서라도 바로 잡겠다 생각한다. 내 아이는 황제, 혹은 신이다. 세상이 함께 받들어 모셔야 할 존재. 그런 아이는 폭군이 된다. 모두가 나에게 맞춰야 하니 타인은 지워지고 내 감정만 있다. 타협, 양보, 사과, 인내, 포기, 절제 따위는 모르는 아이로 자라난다.
아이의 일정과 관계 하나하나 통제하고 억압하는 유형. 다니는 학원, 아이가 할 활동, 사귀는 친구, 매년 바뀌는 담임의 성향까지도 내가 원하는 식으로 맞춰야 한다. 아이는 먼저 산 내가 자녀를 위해 설계한 대로 따라만 오면 된다. 아이 인생인데 아이의 의사는 없다. 착한 아이라면 반항 없이 부모를 따르니, 부모는 뿌듯하다. 내 사랑이 아이를 바르게 키우고 있어! 아뇨, 그 아이는 독립성과 자율성이 거세당한 채로 망가진 줄도 모르고 자라고 있는데요?겉보기는 멀쩡하니 더 문제다. 그 누구도 눈치채고 도와주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애들이 지식은 많아지고 때깔은 고와졌는지 몰라도 오히려 실속은 줄고 문제는 늘어간다. 문제가 생겼다고? 애들이 자율적으로는 해결이 안 나네. 이때다, 내 자녀를 지키기 위해 부모 총 출동! 요즘 시대에는 "애들이 싸우면서 크는 거죠~."는 없다. 당장 학교폭력 걸고, 이 사태를 방치한 담임은 아동학대죄로 고소하자. 무고라고? 괜찮다. 아동학대에는 무고죄가 적용되지 않으니 밑져야 본전이다. 어차피 담임교사란 것도 1년 뒤면 헤어져 안 볼 인간이다. 내 아이를 괴롭게 한 연대 책임을 져야 한다. 오버라고? 한국의 오버 한 점 얹지 않은 현 상황이다. 기괴하다. 이게 웬 촌극인가 싶다.
생명을 품고 기른 위대한 어머니가 어느 새 맘충으로 전락했다. 책임감 무겁고 어렵던 아버지는 어느 새 애비충이 됐다. 속상하고 억울할 것이다. 그런데 정말, 억울하기만 한가?
우악스럽고 뒤틀린 애정으로 아이를 기르는 부모들은 애 없는 사람 입장에서 바라보면 벌레를 넘어서 괴물이다. 벌레는 그나마 약을 뿌리고 신발로라도 밟아 퇴치할 수라도 있지, 그 괴물은 자신들이 너무도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랑을 베푸는 것이라는 설득할 수 없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다. 소름이 끼친다. 부모란 존재는 그냥 상종 못할 괴물 같고, 그들의 자랑인 그 자녀들은 그냥 생각 없는 괴수가 배설한 배설물 같다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다. 작고 어리고 귀여운데도 어쩐지 두 팔 벌려 안아주고 볼을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반갑고 사랑스럽지가 않다.
뉴스는 말한다. "사회적으로 만연한 아동 혐오!"
자녀에게 육체적 언어적 폭력을 휘두르거나 죽인 게 아닌 이상, 늘 그렇듯 부모는 잘못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