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라는 핑계를 버리고 처음 춤을 추던 날
취미 하나를 시작하려고 할 때도 늘 비슷한 순서를 밟았다. 춤을 배워보기로 결심했을 때가 딱 그랬다. 먼저 유명한 댄서들의 영상을 찾아봤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기본기부터 시작하는지 살펴보고, 더 나은 연습 방법이 없는지 한 번 더 고민했다. 그다음엔 나만의 계획을 세웠다. 최대한 효율적이고, 남들 보기에 엉성하지 않은 방향으로 치밀하게 일정을 짰다.
이 정도면 이제 거울 앞에 서도 될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 몸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머릿속으로는 분명 안무를 완벽하게 외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음악을 틀면 어딘가 마음에 걸렸다. 스텝을 조금만 더 분석하면 더 잘 출 수 있을 것 같았고, 손끝의 각도를 조금만 더 연습하면 훨씬 깔끔할 것 같았다. 그래서 늘 같은 생각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오늘 말고, 조금만 더 영상을 보고 내일 진짜로 춰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말은 이상하게도 항상 다음으로 미뤄졌다.
그 조금만은 생각보다 길었다.
시간은 꽤 썼는데 정작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분명 나는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꽤 열심히 춤을 준비했다. 영상을 0.5배속으로 돌려보고, 동작을 쪼개서 비교하고, 더 나은 각도를 찾으려고 애썼다. 그런데 결과는 늘 비슷했다. 음악에 맞춰 제대로 춤 한 번 춰보지 못한 상태가 지속됐다.
이상했다. 대충 막춤부터 추기 시작한 사람들은 이미 박자를 타며 즐기고 있었고, 나는 더 많은 시간을 들여 분석했는데도 여전히 제자리였다. 준비는 충분했는데, 내 몸은 굳어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취미를 준비했는데도 아무것도 남지 않는 걸까. 즐거우려고 시작한 춤인데, 거울 속의 나는 잔뜩 굳어 있었다.
엉망이라도 일단 움직여보는 것
어느 날은 그냥 홧김에 음악을 틀었다.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태였고,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 있었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스스로 보기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대로 춤이라고 부르기엔 한참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일단 몸을 움직였다. 잘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이 답답함을 끝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런데 이상하게 춤이 춰졌다. 완벽한 스텝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박자에 맞춰 몸이 흔들렸다. 처음엔 어색했고, 중간중간 삐걱거리는 부분도 많았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갔다. 몸을 멈추지 않으니까 리듬감이 조금씩 살아났고, 계속 움직이니까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 그렇게 한 곡이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고 춤을 췄다.
돌아보니까 처음부터 완벽하게 추려고 각을 잡았을 때보다 훨씬 기분이 좋았고, 무엇보다 땀방울이라는 진짜 결과가 남아 있었다. 부족한 동작은 분명 있었지만, 그래도 내일 다시 고쳐가며 추면 될 일이었다. 처음으로 거울 앞에서 ‘얼어붙은 나’가 ‘춤추는 나’가 되는 경험을 했다.
그때 처음으로 완벽하지 않아도 일단 시작하면 어떻게든 굴러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각해 보면 나는 늘 취미마저 잘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더 많이 영상을 보고, 더 많이 분석했다. 그 마음 자체는 나쁜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 덕분에 더 좋은 동작을 만들고 싶어 했다. 문제는 그 마음을 쓰는 타이밍이었다. 나는 그 마음을 거울 앞에 서기도 전에 다 써버리고 있었다.
시작은 가볍게, 다듬는 것은 제대로
이미 춤을 추기 전에 분석하느라 지쳐 있었고, 시작하기도 전에 눈높이만 전문가 수준으로 높아져 있었다. 그래서 막상 몸을 움직이려고 하면 부담부터 느껴졌고, 그 부담 때문에 다시 영상을 보는 준비 과정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계속 돌아가다 보니 결국 스텝 한 번 밟지 못한 채 시간만 쌓였다. 시작을 가볍게 만들지 못하면, 취미의 즐거움도 이어갈 수 없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그 이후로 방식을 조금 바꿨다. 시작할 때는 최대한 가볍게 춤추기로 했다. 잘하려고 폼을 잡지 않고, 그냥 일단 음악에 맞춰 막춤이라도 춰보기로 마음먹었다. 동작의 완성도는 잠시 내려놓고, 일단 몸에 땀을 내는 데 집중했다. 대신 춤을 다듬을 때는 조금 더 집요해졌다. 이미 움직여본 동작 중에서 어색한 부분을 고치고, 다시 거울을 보는 데에는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처음은 엉성하게 시작하되, 마지막은 제대로 완성하기로 했다. 이 단순한 방식 하나가 생각보다 많은 걸 바꿨다.
이렇게 하니까 이상하게 취미 생활이 굴러가기 시작했다. 예전보다 훨씬 자주 거울 앞에 서게 됐고, 그 안에서 박자 감각이 점점 나아지는 것도 느껴졌다. 한 번에 완벽한 안무를 소화하려고 했을 때보다, 엉망으로 여러 번 춰보는 쪽이 훨씬 빠르게 실력이 든다는 것도 알게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완벽하게 준비만 했을 때보다 결과적으로 춤의 완성도도 더 좋아졌다. 이제는 완벽함이 시작하기 전 머릿속에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움직이는 과정 속에서 다듬어진다는 사실을 안다.
완벽해지고 싶은 마음의 방향
여전히 무언가를 잘하고 싶은 마음은 남아 있다. 취미를 하더라도 기왕이면 멋지게 해내고 싶은 욕심은 쉽게 없어지지 않을 거다. 그래서 이제는 그 완벽주의를 억지로 없애려고 하지 않는다. 그 마음은 여전히 필요하고, 내 취미를 조금 더 깊이 있게 만들어주는 힘이기 때문이다. 대신 어디에 쓸지를 조금 더 신경 쓴다. 시작할 때 내 발목을 붙잡던 그 마음을, 이제는 춤을 끝까지 다듬고 이어가는 데에 쓰기로 했다. 중간에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힘으로, 마지막까지 땀 흘리게 만드는 동력으로 삼기로 했다. 완벽해지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그걸 굳이 버리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이미 가지고 있는 거라면 없애는 것보다 다루는 게 더 현실적이다. 없애려고 할수록 더 강한 압박으로 남는 경우도 많다.
다만 한 가지만 바꾸면 된다. 처음부터 잘하려고 하지 않는 것, 대신 끝까지 가는 데에 그 마음을 쓰는 것이다. 처음 스텝을 가볍고 엉성하게 밟으면 시작할 수 있고, 시작하면 박자를 탈 수 있고, 박자를 타다 보면 결국 음악의 끝에 닿게 된다. 그리고 그 끝에서 비로소 동작을 멋지게 다듬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취미가 성과가 되는 순간은 멀리 있지 않다. 멈춰 있던 몸을 비로소 즐겁게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어깨에 잔뜩 들어간 힘을 풀고 그저 엉성한 첫 스텝을 허락해 보는 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