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앞에서야 알게 되는 것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애쓰던 사람이 결국 지켜야 했던 건 몸이었다

by 규현

얼마 전 무릎 수술로 입원을 하게 됐다. 수술이라는 단어를 내 일처럼 받아들이는 것도 처음이었고, 며칠 동안 마음대로 걷지 못한다는 사실도 생각보다 크게 다가왔다. 아프다는 건 단순히 통증이 있다는 뜻만은 아니었다. 하고 싶은 걸 못 하고, 평소처럼 움직일 수 없고, 익숙했던 일상이 한순간에 멈춰버리는 일이었다. 나는 그 시간을 지나며 이상하게도 내 완벽주의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늘 더 잘해야 한다고 믿었던 기준들,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고 붙들고 있던 마음들, 실수하지 않으려 긴장하던 태도들이 떠올랐다. 그런데 정작 몸이 아프고 나니 그 모든 기준이 한 번에 뒤로 밀렸다. 그때 처음 알았다. 정말 완벽해야 할 것이 있다면, 어쩌면 그것은 성과도 관계도 이미지도 아니라 건강일 수 있겠다고.


우리는 건강을 자주 가장 나중에 둔다. 일이 바쁘면 잠을 줄이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끼니를 대충 넘기고, 피곤해도 그냥 하루쯤은 괜찮다고 넘긴다. 젊을 때는 더 그렇다. 지금 당장 큰 문제가 없으니 괜찮다고 생각하고,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들은 예민함이나 일시적인 피로 정도로 치부한다. 나 역시 그랬다. 해야 할 일이 많을수록 몸보다는 일정이 우선이었다. 쉬는 시간에도 마음은 쉬지 못했고, 피곤하다는 감각보다 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앞섰다. 완벽주의는 늘 결과와 성과 쪽으로 향해 있었다. 더 잘 해내고 싶었고, 더 빈틈없어 보이고 싶었고,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고 싶었다. 그런데 수술과 입원이라는 경험은 그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아주 현실적으로 배우게 됐기 때문이다.


멈춰보니 보이는 것들


병원에 누워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많은 걸 보게 만든다. 평소에는 당연해서 의식하지 못했던 것들, 예를 들면 혼자 일어나 걷는 일, 편하게 씻는 일, 원하는 때에 잠깐 밖에 나가는 일 같은 것들이 사실은 건강 위에 세워진 일상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몸이 불편해지는 순간 우리는 자유를 조금씩 잃는다. 그리고 그 자유는 돈이나 능력이나 의지로 단번에 해결되지 않는다. 그 앞에서는 누구나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나는 그 사실이 조금 충격적이었다. 늘 내 삶을 내가 관리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몸이 버텨주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이 너무 많았다.


그때부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동안 완벽하려고 애썼던 것들은 과연 어디를 향하고 있었을까. 일에서 실수하지 않으려는 마음, 관계에서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는 마음, 무언가를 시작할 때부터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 물론 그런 태도들이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부분도 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에너지를 바깥으로만 쏟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었다. 정작 가장 오래 함께 가야 할 내 몸에는 그만큼의 관심을 주지 못하면서, 다른 영역에서만 완벽을 추구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어쩌면 나는 중요한 순서를 잘못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완벽의 방향


여기서 말하는 건강에 대한 완벽주의는 몸무게 숫자에 집착하거나 식단을 단 한 끼도 흐트러뜨리지 않는 강박 같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몸을 소모시키지 않겠다는 다짐, 아프기 전에 돌보겠다는 태도, 작은 이상 신호를 무시하지 않겠다는 책임감에 가깝다. 예전의 나는 아파도 참는 쪽이 강했고, 피곤해도 버티는 쪽이 익숙했다. 조금 무리해도 괜찮다고 생각했고, 회복은 늘 나중 문제였다. 그런데 이제는 안다. 참는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버틴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건강은 내가 놓쳐도 알아서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의식적으로 지켜야 겨우 유지되는 것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몸은 참 솔직하다. 괜찮지 않으면 괜찮지 않다고 말하고, 무리하면 그대로 반응한다. 마음은 속일 수 있어도 몸은 속이기 어렵다. 그래서 건강 앞에서는 오히려 정직해질 수밖에 없다. 잘 지내는 척할 수도 없고, 괜찮은 척 버틸 수도 없다. 결국 내가 나를 얼마나 함부로 다뤘는지가 몸을 통해 드러난다. 그 사실이 무섭기도 했지만, 동시에 고맙기도 했다. 늦기 전에 알아차릴 기회를 준 것 같아서다.


이제는 다른 완벽보다


나는 여전히 완벽주의적인 면이 있다. 뭔가를 하면 제대로 하고 싶고, 가능하면 후회 없이 해내고 싶다. 하지만 이제 그 마음이 향하는 자리를 조금 바꾸고 싶다. 예전에는 결과를 더 좋게 만들기 위해 나를 몰아붙였다면, 이제는 오래가기 위해 나를 챙기고 싶다. 잘하는 삶보다 버틸 수 있는 삶이 중요하다는 걸, 빛나는 순간보다 무너지지 않는 매일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건강은 잃고 나서야 크게 보인다는 말이 왜 그렇게 흔한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우리는 늘 가장 소중한 것을 너무 늦게 깨닫는다. 아프고 나서야 몸의 고마움을 알고, 쉬지 못한 시간을 지나서야 휴식의 필요를 인정한다. 그래서 나는 이번 일을 통해 적어도 하나는 분명히 배우고 싶었다. 완벽해야 할 것이 있다면, 남에게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나를 지탱하는 기반이어야 한다는 것. 몸이 버텨줘야 마음도, 일도, 관계도 함께 갈 수 있다는 것.


아마 앞으로도 나는 또 바빠질 것이고, 다시 무리하고 싶은 순간들이 생길 것이다. 익숙한 방식대로 나를 뒤로 미루고 싶은 날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제는 예전처럼 쉽게 지나치지는 못할 것 같다. 한 번 몸의 한계를 겪고 나면, 이전과 같은 무심함으로 돌아가기는 어렵다. 그래서 나는 다짐해 본다. 다른 데서 조금 덜 완벽해도 괜찮으니, 건강만큼은 더 예민하게 살피자고. 조금 느려져도 괜찮으니, 무너지기 전에 멈출 줄 알자고. 오래가기 위한 완벽은 어쩌면 바로 그런 데서 시작된다고 믿으면서.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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