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서는 왜 자꾸 실수하지 않으려 할까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일은 원래 편안해지는 과정인 줄 알았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해도 시간이 지나면 말이 쉬워지고, 표정을 읽느라 애쓰지 않아도 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아지는 쪽으로 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렇지 않았다.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더 조심스러워졌다.
메시지 하나를 보내고도 다시 읽어보는 날이 많았다. 너무 가벼웠나, 너무 무심했나, 괜히 선을 넘은 건 아니었나. 이미 보낸 문장인데도 자꾸 대화창을 열어보게 됐다. 상대는 별 뜻 없이 답했을 수도 있는데, 나는 그 짧은 말투 안에서 여러 가지 기분을 짐작했다. 답장이 조금 늦으면 내가 뭘 잘못 말했나 싶었고, 평소보다 짧은 문장이 오면 괜히 마음이 쓰였다.
생각해 보면 나는 관계를 편하게 맺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잘하고 싶어서 더 긴장하는 쪽에 가까웠다. 좋은 친구가 되고 싶었고, 좋은 연인이 되고 싶었고, 좋은 가족이 되고 싶었다. 문제는 그 마음이 어느 순간부터 좋은 사람이 아니면 관계가 흔들릴 것 같다는 불안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보이고 싶지만 보이고 싶지 않은 내 모습
그래서 나는 자꾸 나를 점검했다. 이 정도는 이해해줘야 하지 않나, 이런 말은 하지 말았어야 하나, 지금 서운하다고 말하면 예민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까. 내 감정보다 관계를 먼저 생각한다고 믿었지만, 가만히 보면 그 안에는 관계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크게 들어 있었다. 정확히는 실수한 나를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 가까웠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그랬다. 친구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어도 바로 말하지 못했다. 괜히 분위기를 망칠까 봐, 내가 너무 작은 일에 예민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한 번 꺼낸 말이 관계를 어색하게 만들까 봐 조심했다. 가족에게 짜증을 내고 난 날에는 하루 종일 마음이 불편했다. 그 순간에는 피곤해서 그랬을 뿐인데도, 나는 금세 내가 나쁜 사람이 된 것처럼 느꼈다. 한 번의 표정, 한 번의 말투, 한 번의 실수로 관계 전체가 나빠질 수 있다고 믿고 있었던 것 같다.
사과를 할 때도 비슷했다. 미안한 마음은 분명한데도 그 말을 바로 꺼내지 못할 때가 있었다. 그냥 미안하다고 하면 될 일을, 자꾸 더 적절한 표현을 찾느라 늦어졌다. 너무 짧으면 진심 없어 보일 것 같고, 너무 길면 변명처럼 들릴 것 같았다. 마음은 이미 가 있는데 말은 자꾸 뒤에 남았다. 생각할수록 이상했다. 사과도 결국 마음보다 완벽한 형태를 먼저 만들고 싶어 했던 것이다.
그때 조금 알게 됐다. 나는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는 줄만 알았는데, 어쩌면 버려지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걸.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보다 앞서 있던 건 실수한 나를 상대가 어떻게 볼지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러니 관계가 편할 리 없었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따뜻한 일이면서도 동시에 시험처럼 느껴졌던 이유도 아마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늘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마음은 생각보다 피곤하다. 나는 괜찮은 말만 해야 하고, 적당한 반응을 보여야 하고, 서운함도 너무 크지 않게 표현해야 하고, 사과는 단정하고 정확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관계 안에 있는 나는 점점 자연스러운 사람이 아니라 관리되는 사람이 된다. 실수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너무 커지면 진심도 조심스러워진다. 좋아한다는 말도, 서운하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자꾸 늦어진다.
하지만 관계는 그렇게 유지되는 게 아니었던 것 같다. 한 번도 실수하지 않아서 오래가는 관계는 없다. 오히려 오래가는 관계는 실수가 없었던 관계가 아니라, 실수한 뒤에도 다시 말을 꺼낼 수 있었던 관계에 가까웠다. 서운했다고 말할 수 있고, 미안했다고 전할 수 있고, 서로의 부족한 순간을 한 번의 판정으로 끝내지 않는 마음이 있어야 비로소 오래 남는다.
나의 부족한 부분도 내 모습이다
나는 그걸 조금 늦게 배웠다.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동안, 정작 솔직한 사람이 되는 연습은 잘하지 못했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말했고, 미안한데도 더 나은 문장을 찾느라 침묵했고, 서운한데도 이해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냥 넘겼다. 그렇게 넘긴 마음들이 쌓이면 관계가 편해지는 게 아니라 내가 점점 지쳐갔다.
그래서 이제는 생각을 조금 바꿔보려 한다. 관계에서 중요한 건 흠 없는 태도가 아니라, 어색하더라도 다시 다가가는 마음일 수 있다고. 말이 조금 서툴러도 괜찮고, 사과가 아주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서운함을 꺼내는 목소리가 조금 떨려도 괜찮다고. 중요한 건 단정한 문장이 아니라 숨기지 않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어렵다.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다시 읽어볼 때도 있고, 별일 아닌 말 하나를 오래 붙잡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예전처럼 또 잘해야 한다는 쪽으로 가려는 마음이 올라온다. 그래도 이제는 안다. 관계를 오래 가게 하는 건 완벽한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실수한 뒤에도 도망가지 않는 사람이 더 오래 남는다는 걸.
어쩌면 관계 속 완벽주의는 사랑이 많아서 생기는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실수한 나로는 사랑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서 생기는 마음일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 더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려 하고, 더 부드럽게 말하려 하고, 더 실수 없는 태도를 만들려고 한다. 하지만 사람 사이를 붙잡아 주는 건 그렇게 매끄러운 모습만은 아니다. 조금 부족해도 괜찮다. 조금 서툴러도 괜찮다. 관계는 완벽해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채로도 다시 손을 내미는 마음 때문에 이어진다.
이제는 관계 안에서까지 나를 시험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 번의 실수로 끝나는 관계라면, 어쩌면 그 관계는 애초에 완벽함 위에만 겨우 서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 누군가와의 사이에서 괜히 마음이 복잡했고, 잘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더 불안했다면, 그 마음을 너무 미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잘 해내지 못해도 괜찮다. 관계에서는 좋은 사람이 되는 일보다, 진심으로 남아 있는 일이 더 중요할 때가 많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