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날에도 마음이 바쁜 사람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왜 더 지친 것 같을까

by 규현

주말이었다. 오랜만에 알람도 끄고 침대에 누워서 늦잠을 잤다. 평일 같았으면 눈을 뜨자마자 씻고 준비하고 지하철 안에서 오늘 해야 할 일을 머릿속으로 정리했겠지만 그날만큼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해야 하는 일도 없었고 당장 나를 찾는 사람도 없었다. 분명히 바라던 날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분명 쉬고 있는데 쉬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눈을 뜨고 휴대폰을 보다가 다시 눕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또 멍하니 있었다. 누가 보면 편안한 하루를 보내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저녁쯤 되니 묘한 찝찝함이 올라왔다. 오늘 하루를 잘 보낸 것이 아니라 그냥 흘려보낸 느낌이 들었다. 달력을 바라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나 아무것도 안 했네


그 말 한마디가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하루 종일 쉬었는데 쉬었다는 생각보다 아무것도 안 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몸은 분명 덜 피곤해졌을 텐데 마음은 오히려 더 무거워졌다. 쉬기 위해서 기다렸던 하루였는데 왜 나는 쉰 다음에 죄책감부터 느끼고 있었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일을 할 때만 나를 몰아붙인 것이 아니었다. 쉬는 순간에도 나에게 기준을 들이밀고 있었다. 쉬려면 제대로 쉬어야 하고, 쉬는 시간도 의미가 있어야 하고, 쉬고 나면 무언가 충전된 기분이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쉬는 날에도 완벽한 하루를 보내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아침에는 늦잠을 자더라도 낮에는 책을 읽고 저녁에는 운동이라도 하고 하루를 마무리할 때는 그래도 잘 쉬었다고 말할 수 있어야 만족했다.


그런데 쉬는 날이 꼭 그렇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침대에서 보내게 되고 어떤 날은 아무 이유 없이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원래 쉼이라는 것이 계획처럼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것인데 나는 쉼마저도 결과가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잘 쉬었는지조차 평가하고 있었으니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개운함보다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맛있는 것을 먹고 영화를 봐도 마음 한편에서는 이 시간에 책을 읽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었다. 아무 일정 없이 하루를 보내면 하루가 비어 보였고 비어 있는 하루를 보면 마치 내가 비어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쉬는 것이 아니라 멈춰 있는 것 같았고 멈춰 있는 나는 어딘가 뒤처지고 있는 것 같았다.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보통 부지런하다는 말을 듣는다. 열심히 살고 책임감 있고 대충 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열심히 사는 것이 좋아서라기보다 멈춰 있는 자신을 견디지 못해서 계속 움직이는 경우도 많다. 나 역시 그랬다. 무언가를 하고 있으면 안심이 됐다. 작업을 하고 있거나 공부를 하거나 계획을 세우고 있으면 그래도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었다. 반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내가 갑자기 무가치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생각해 보면 내가 불안했던 이유는 쉼 자체가 싫어서가 아니었다. 쉬고 있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소파에 누워 있는 나, 별다른 생산성 없이 시간을 보내는 나, 누군가에게 보여주기에는 조금 나태해 보이는 내 모습이 싫었다. 그래서 쉬면서도 완전히 쉬지 못했다. 몸은 멈춰 있어도 마음은 계속 나를 감시하고 있었다.


이렇게 있어도 되는 건가?


이 질문은 생각보다 무섭다. 왜냐하면 이 질문 안에는 나는 계속 무언가를 해야만 괜찮은 사람이라는 전제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나를 결과로 확인하고 있었던 셈이다. 오늘 무엇을 했는지, 얼마나 해냈는지, 얼마나 성실했는지로만 나를 판단하니 아무것도 안 한 하루는 실패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계속 돌아가기만 하면 언젠가는 열이 나고 멈춘다. 머리로는 너무 잘 아는 이야기인데 이상하게 내 삶에 적용하는 것은 참 어려웠다. 쉬어야 오래간다는 말도 알고 있었고, 충전이 필요하다는 말도 지겹도록 들었다. 그런데도 막상 내가 쉬는 순간에는 그 평범한 진리를 믿지 못했다. 혹시 내가 이대로 느슨해지면 어쩌나, 한 번 쉬기 시작하면 다시 돌아가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더 컸다.


하지만 돌아보면 오히려 반대였다. 쉬지 못했을 때 나는 더 쉽게 지쳤고 더 예민해졌고 더 작은 실수에도 크게 흔들렸다. 몸이 지쳐 있을 때는 사소한 말에도 마음이 무너졌고 집중력도 오래가지 못했다. 완벽하게 해내고 싶어서 달려왔는데 정작 쉬지 못해서 완벽은커녕 기본적인 균형도 잃어버리는 날이 많았다. 그렇게 보면 쉼은 생산성의 반대가 아니라 지속하기 위한 조건에 더 가깝다. 오래 잘하고 싶은 사람일수록 쉬는 시간을 가볍게 보면 안 되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조금씩 생각을 바꾸려고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하루를 무조건 낭비라고 부르지 않기로 했다. 누워서 멍하니 있었던 시간도, 괜히 창밖만 바라보던 순간도, 특별한 성과 없이 지나간 하루도 내 삶에서는 필요할 수 있다고 인정해 보려 한다. 쉬는 날까지 증명하려고 애쓰면 삶은 너무 숨이 막힌다. 하루쯤은 설명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도 괜찮고, 기록할 만한 결과가 없어도 괜찮고, 남에게 보여줄 만한 하루가 아니어도 괜찮다.


어쩌면 완벽주의자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더 열심히 사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는 일, 멈춰 있는 나를 실패라고 부르지 않는 일, 쉬고 있는 나를 조금은 너그럽게 바라보는 일이 더 어려울 수 있다. 나도 아직 그 연습이 서툴다. 쉬는 날 저녁이 되면 여전히 마음이 조금 불안해질 때가 있다. 그래도 이제는 예전처럼 그 하루를 통째로 부정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아무것도 안 한 하루가 정말 아무 의미도 없는 하루였을까. 어쩌면 그날은 내가 나를 몰아세우지 않고 버틴 하루였을지도 모른다. 계속 달려가는 것만이 성실함은 아니다. 가끔은 멈춰 서는 용기도 성실함의 일부다. 그러니 오늘 당신이 쉬었다면, 그리고 그 쉼이 조금 서툴렀다면, 그것마저 너무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쉬는 날에도 완벽할 필요는 없으니깐.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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