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해보려던 마음이 오히려 나를 멈춰 세웠다

시작을 붙잡던 마음을 끝까지 가는 힘으로 바꾸기까지

by 규현

뭔가를 시작하려고 할 때마다 늘 비슷한 순서를 밟았다. 먼저 자료를 찾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했는지 살펴보고 더 나은 방법이 없는지 한 번 더 고민했다. 그다음엔 계획을 세웠다. 최대한 효율적으로, 최대한 실수 없이 갈 수 있는 방향으로.


이 정도면 이제 시작해도 될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 손이 잘 가지 않았다. 분명 준비는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시작하려고 하면 어딘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조금만 더 보완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조금만 더 준비하면 훨씬 깔끔하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늘 같은 생각으로 마무리됐다. 조금만 더 준비하고 시작해야지. 그 말은 이상하게도 항상 다음으로 미뤄졌다.


그 조금만은 생각보다 길었다.


시간은 꽤 썼는데 남는 건 없었다. 분명 나는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꽤 열심히 준비했다. 자료를 모으고, 비교하고, 더 나은 방향을 찾으려고 애썼다. 그런데 결과는 늘 비슷했다. 시작하지 못한 상태. 이상했다. 대충 시작한 사람들은 이미 하나씩 만들어가고 있었고, 나는 더 많은 시간을 들였는데도 여전히 제자리였다. 준비는 충분했는데, 결과는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준비를 했는데도 아무것도 남지 않는 걸까.


어느 날은 어쩔 수 없이 그냥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준비가 덜 된 상태였고, 스스로 보기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대로 내놓기에는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그래도 마감은 다가왔고,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손을 움직였다. 기대는 별로 없었다. 잘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일단 끝내야겠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런데 이상하게 일이 진행됐다.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하나의 형태가 만들어졌다. 처음엔 어색했고, 중간중간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많았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갔다. 손을 멈추지 않으니까 생각도 같이 움직였고, 생각이 움직이니까 결과도 조금씩 나아졌다. 그렇게 계속 이어가다 보니 결국 끝까지 갔다.


돌아보니까 처음부터 잘하려고 했을 때보다 훨씬 빠르게 끝났고, 무엇보다 결과가 남아 있었다. 부족한 점은 분명 있었지만, 그래도 고칠 수 있는 상태였다. 처음으로 ‘없던 것’이 ‘있는 것’이 되는 경험을 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완벽하지 않아도 시작하면 일은 굴러간다는 걸. 생각해 보면 나는 늘 잘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더 많이 준비했고, 더 많이 고민했다. 그 마음 자체는 나쁜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 덕분에 더 나은 방향을 찾으려고 했고, 더 좋은 결과를 만들고 싶어 했다. 문제는 그 마음을 쓰는 타이밍이었다. 나는 그 마음을 시작하기도 전에 다 써버리고 있었다.


이미 시작하기 전에 지쳐 있었고, 이미 시작하기 전에 기준이 너무 높아져 있었다. 그래서 막상 시작하려고 하면 부담부터 느껴졌고, 그 부담 때문에 다시 준비로 돌아갔다. 그렇게 계속 돌아가다 보니 결국 한 발도 나가지 못한 채 시간이 쌓였다. 잘하고 싶었던 마음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다. 문제는 방향이었다. 나는 그 마음을 시작하기 전에 쓰고 있었다. 그래서 시작이 무거웠고, 그래서 시작이 늦어졌다. 시작을 가볍게 만들지 못하면 아무것도 이어갈 수 없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그 이후로 방식을 조금 바꿨다.


시작은 가볍게 마지막은 완벽하게


시작할 때는 최대한 가볍게 하기로 했다. 잘하려고 하지 않고, 그냥 일단 만들어보는 쪽으로. 결과의 완성도는 잠시 내려놓고, 일단 형태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대신 끝낼 때는 조금 더 집요해졌다. 이미 만들어진 걸 다듬고, 고치고, 다시 보는 데에는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처음은 대충, 대신 마지막은 제대로. 이 단순한 방식 하나가 생각보다 많은 걸 바꿨다.


이렇게 하니까 이상하게 결과물이 쌓이기 시작했다. 예전보다 훨씬 많이 만들게 됐고, 그 안에서 점점 나아지는 것도 느껴졌다. 한 번에 잘하려고 했을 때보다, 여러 번 만들어보는 쪽이 훨씬 빠르게 성장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완벽하게 시작하려고 했을 때보다 결과의 완성도도 더 좋아졌다. 이제는 안다. 완벽함은 시작에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과정 속에서 다듬어지는 거라는 걸.


여전히 잘하고 싶은 마음은 남아 있다. 아마 이건 쉽게 없어지지 않을 거다. 그래서 이제는 없애려고 하지 않는다. 그 마음은 여전히 필요하고, 여전히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대신 어디에 쓸지를 조금 더 신경 쓴다. 시작할 때 나를 붙잡던 그 마음을 이제는 끝까지 밀고 가는 데에 쓰기로 했다. 중간에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힘으로, 마지막까지 다듬게 만드는 힘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완벽해지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그걸 굳이 버리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이미 가지고 있는 거라면 없애는 것보다 다루는 게 더 현실적이다. 없애려고 할수록 더 강하게 남는 경우도 많다.


다만 한 가지만 바꾸면 된다. 처음부터 잘하려고 하지 않는 것. 대신 끝까지 가는 데에 그 마음을 쓰는 것. 처음을 가볍게 만들면 시작할 수 있고, 시작하면 이어갈 수 있고, 이어가다 보면 결국 끝까지 닿게 된다. 그리고 그 끝에서 비로소 다듬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그 차이 하나로, 멈춰 있던 것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수요일 연재
이전 15화완벽하면 돈이 따라올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