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면 돈이 따라올 줄 알았다

그 사이에 있던 간격을 뒤늦게 알게 됐다

by 규현

어릴 때는 완벽하면 당연히 보상이 따라오는 줄 알았다. 조금의 오차도 없이, 누가 봐도 흠잡을 데 없는 결과를 만들면 그에 걸맞은 대가를 받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믿었다. 그래서 뭐든지 시작하면 오래 붙잡고 있었다. 한 번 더 다듬고, 한 번 더 수정하고, 굳이 티 나지 않을 디테일까지 신경 쓰면서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그 과정이 힘들다고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당연한 절차처럼 여겼다. 그렇게 해야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했고, 그래야 결국 돈으로 이어진다고 믿었으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믿음은 꽤 단순했다. 노력하면 결과가 따라오고, 잘하면 인정받는다는 공식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의심해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배워왔고, 실제로 작은 성공들은 그 공식을 증명해 주는 것처럼 보였다. 시험을 잘 보면 점수가 나오고, 과제를 열심히 하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니 완벽하게 하는 것이 결국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믿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니 집착하게 된다


그래서 점점 더 ‘잘하는 것’보다 ‘완벽하게 하는 것’에 집착하게 됐다. 누군가 보기엔 충분히 괜찮은 결과라도, 내 기준에서 부족하면 다시 손을 봤다. 이미 전달해도 되는 상태에서도 괜히 한 번 더 열어보고, 어색한 부분을 찾으려고 애썼다. 그렇게 시간을 들이면 들일수록 결과는 더 나아진다고 생각했고, 그만큼의 보상은 언젠가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공들인 결과들이 항상 좋은 보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조금은 허술해 보이던 작업이 더 빠르게 선택되기도 했고, 내가 몇 번이나 고쳐가며 만든 결과물은 별다른 반응 없이 지나가는 경우도 많았다. 비슷한 시간에 시작했는데도 누군가는 이미 다음 단계로 넘어가 있었고, 나는 여전히 하나를 붙잡고 있는 상황도 반복됐다.


처음에는 운이 없다고 생각했다. 타이밍이 안 맞았다고 넘겼고, 조금만 더 완벽했으면 달라졌을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래서 더 집요해졌다. 더 오래 붙잡고, 더 촘촘하게 다듬고, 실수할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려고 했다. 실수하지 않으면 최소한 손해는 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방향을 더 강하게 밀어붙일수록, 오히려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때부터 조금씩 생각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완벽하게 만드는 것과 돈으로 이어지는 것 사이에 생각보다 큰 간격이 있다는 걸 느끼게 됐다. 가만히 돌아보면, 세상은 완벽한 결과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누군가는 완벽하지 않은 상태로 먼저 내놓고, 그 과정에서 반응을 보고, 다시 수정하고, 또 내놓는다. 그 사이에서 기회를 잡는 사람도 있고, 속도를 바탕으로 더 많은 선택지를 만들어내는 사람도 있다. 반대로 나는, 하나를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시간을 쓰는 동안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보여주는 것’을 미루고 있었다.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로 밖으로 꺼내는 걸 망설였고, 그 사이에서 기회는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고 있었다. 결과는 결국 타인의 선택으로 결정되는데, 나는 그 선택의 기회조차 만들지 않고 있었던 셈이다.


이해하지 못했던 나의 과거


완벽은 나의 기준이었고, 돈은 타인의 선택이라는 사실을 그때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아무리 만족스러워도 그 결과가 누군가에게 선택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때부터는 완벽이라는 단어를 조금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여전히 잘 만들고 싶은 마음은 남아 있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걸 인정하게 됐다.


조금 덜 완벽하더라도 일단 밖으로 내보내고, 그다음에 수정하는 쪽이 오히려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예전에는 준비가 끝났다고 느껴질 때까지 기다렸다면, 지금은 어느 정도 형태가 잡히면 일단 한 번 꺼내보려고 한다. 그게 틀릴 수도 있고, 부족할 수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얻는 반응과 경험이 다음 선택을 더 정확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한 번에 맞추려는 시도보다, 여러 번의 시도를 통해 방향을 맞추는 쪽이 더 현실적이라는 것도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


그래서 요즘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바꿔서 던진다. “이게 완벽한가?”가 아니라, “이걸 지금 내보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그 질문 하나만 바꿨을 뿐인데, 작업을 대하는 태도도 많이 달라졌다. 멈춰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그만큼 더 많은 경험이 쌓이기 시작했다.


완벽한 현실 세계를 생각하지 말자


여기까지가 내가 겪은 변화라면, 이제는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께 한 가지를 조심스럽게 전하고 싶다. 혹시 지금 무언가를 계속 붙잡고 있으면서도 쉽게 꺼내지 못하고 있다면, 그 이유가 ‘아직 완벽하지 않아서’는 아닌지 한 번쯤 돌아봤으면 좋겠다.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로 미루고 있는 사이에, 생각보다 많은 기회가 그냥 지나가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완벽을 추구하는 태도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덕분에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도 분명하다. 다만 그 기준이 너무 높아져서, 아무것도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면 그건 조금 다른 문제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잘 만든 결과도 보이지 않으면 선택받을 수 없고, 선택받지 못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완벽하게 준비된 하나보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계속 나오는 여러 개가 더 큰 변화를 만든다는 걸 나 역시 뒤늦게 알게 됐다. 처음부터 잘하려고 하기보다, 여러 번 해보면서 나아지는 쪽이 훨씬 현실적이라는 것도 함께 말해주고 싶다.




완벽이 의미 없는 건 아니다. 다만 그것이 곧바로 돈으로 이어진다고 믿는 순간, 오히려 더 많은 기회를 놓치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무언가를 망설이고 있다면,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한 번쯤은 꺼내보는 쪽을 선택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그 이후에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하니까.


수요일 연재
이전 14화돌은 깨지고 모래는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