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 뮤익편
* 본 이미지는 론 뮤익의 마스크를 오마주한 그림입니다.
얼마 전, 조용히 생일을 맞았다.
축하받을 일보다는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 말해주고 싶은 날이었다.
그렇다고 대단한 위로나 자극적인 변화가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나에게만 조용히 스며드는 시간을 선물하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도 흐려지지 않는 감정의 단면을 하나, 조용히 꺼내어 곁에 두고 싶었다.
그렇게 전시회를 찾아보다
익숙한 이름이 스크롤 사이로 미끄러지듯 나타났다.
[론 뮤익]
이름만으로도 내 마음 어딘가가 아주 천천히 반응했다.
그의 작업은, 내가 잊고 지내던 감각을 끄집어내곤 했다.
무언가를 보여주기보다는, 내 안을 조용히 꿰뚫어보는 듯한 정적.
그런 조각들 속에 잠시 기대고 싶었다.
예약은 망설임 없이 마쳤지만, 가는 길은 잠시 고민스러웠다.
서울.
기차를 탈까, 차를 가져갈까.
기차라면 조금 더 빨리 닿을 수 있었겠지만, 나는 오늘만큼은 천천히, 아주 느리게 도착하고 싶었다.
마음을 따라 도착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차를 탔다.
단조로운 음악이 흘렀고, 차창 밖으로는 도시와 시골이 겹치듯 스쳐갔다.
가끔은 아무도 타지 않은 정류장이 마치 멈추지 못한 내 마음 같기도 했다.
혼자만의 생각으로 가득 찬 차 안에서 나는 그 전시가 나에게 어떤 울림을 줄지, 사실은 조금 설레였다.
감정을 마주하는 건 생각보다 더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니까.
도착한 전시장은 의외로 한산했고, 그게 오히려 나를 환대해주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이 조용히 걷는 소리,
천장에서 떨어지는 얇은 빛,
그리고 아주 먼 곳에서 들리는 듯한 발자국 소리까지
모든 것이 말 대신 마음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 방에 들어섰을 때, 나는 잠시 멈춰 섰다.
커다란 흰 받침 위에 누워 있는 거대한 얼굴.
숨을 쉬고 있지 않았지만, 어딘가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고요 속에 낯선 울림이 있었다.
론 뮤익의 조각이었다.
피부 위를 따라 흐르는 미세한 주름,
볼 안쪽의 미묘한 붉은 톤,
눈꺼풀 아래 감긴 속눈썹 하나까지.
너무도 정교하고, 지나치게 진짜여서 오히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았다.
나는 한참을 멍하니 그 앞에 서 있었다.
마치 나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사람처럼, 그 조각은 아무 말도 없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고요한 얼굴, 고단한 숨결, 그리고 그 안에 감춰진 무언가.
‘이 표정은 무엇일까?’
‘지친 건가, 외로운 건가... 아니면 그냥, 무감각?’
그러다 문득, 그 얼굴이 낯설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로가 녹아든 눈가,
힘없이 벌어진 입술,
그늘 진 이마의 주름.
그건 낯선 인물이 아니라,
내가 미처 들여다보지 못한 나의 얼굴이었다.
그 순간, 나는 조각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조각에게 들켜버린 기분이 들었다.
론 뮤익의 작품은 어떤 설명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보여준다.
그 인물이 겪었을 법한 무언가를.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감정까지도.
어쩌면 그건 예술의 가장 근본적인 작동 방식일지도 모른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말을 가능하게 하는 것.
나는 그 앞에서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건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그 작품에 대한 예의이자
나 자신에게도 건네는 조용한 존중이었다.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그림이나 조각을 보면 어떤 감정이 드세요?"
나는 대답 대신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아무것도 느끼지 않았다고 말하는 그 순간조차, 우리는 이미 무언가를 느끼고 있는 걸지도 몰라요.”
감정은 말이 아니라, 그저 ‘존재하는 어떤 상태’이기도 하니까.
전시장을 나서기 전, 나는 또 하나의 조각 앞에 발걸음을 멈췄다.
작고 앉은 형상의 인물.
무표정한 얼굴.
어디를 보는지 알 수 없는, 먼 곳을 향한 시선.
나는 그 시선을 따라 허공을 바라보다
문득, 내 안에 떠오르는 감정 하나를 붙잡았다.
희미하지만 분명히 살아 있는 감정.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촉들.
그 조각은 그대로였지만, 그걸 보는 나의 마음은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오늘, 나는 조각을 보고 나왔다.
움직이지 않는 형상 안에서, 내 안에 가장 깊은 결이 건드려졌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앞에서 가장 많은 말을 떠올렸다.
말보다 앞서는 감정이 있다는 것.
그건, 오늘 그 조용한 전시 공간에서 내가 배운 가장 섬세한 깨달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