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비 오는 날의 두루치기

by Liar

13장.비 오는 날의 두루치기


오늘 여기는, 봄비가 내렸다.

이른 6tl 출근으로 정신없이 하루를 시작했지만 오후 세 시, 벌써 퇴근이라는 뜻밖의 자유가 주어졌다.

이게 바로 자율근무제의 행복이지 않을까?

기분이 좋았다고 말하기엔 뭔가 덜 찼고, 그렇다고 나쁘다고 하기엔 왠지 미안한 날씨였다.

회색빛 구름 아래, 잔잔한 빗방울이 거리를 조용히 덮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생일 선물에 받은 그 ‘무료 음료 쿠폰’을 떠올렸다.

그렇게 나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S카페 2층 창가로 향했다.

비가와서 그런지 사람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좋았다.

이어폰을 끼고 윤하의 ‘우산’을 듣고 있자니 마음이 울적했다,

그리고 김이 살짝 빠진 따뜻한 아메리카노.

노트북을 열었다.

뭔가 써야지, 쓰고 싶다, 생각하며...

자판을 바라보았는데 생각보다 더 오래 창밖의 비만 바라보게 되었다.

차창 너머로 지나가는 우산들,

빗물에 비친 자동차들,

툭툭 떨어지다 미끄러지듯 사라지는 물방울.

그 속에서 나는 묘하게 멍해졌고, 가만히 앉아있는 내 모습이 어쩐지 조금 쓸쓸해 보였다.

‘아, 글이 안 써진다.’

그보다 더 솔직한 마음은 ‘글보다 비가 더 흥미롭다’였다.

그렇게 한참 동안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갑자기 마음속을 치고 들어온 문장 하나.

“오늘 저녁 뭐 먹지....?”

이 얼마나 현실적이고 예술적인 감성을 산산조각 내는 질문인지.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는 인간.

생각은 곧장 진지해졌다.

‘이런 날은 역시 파전인가.’

‘근데 집에 부침가루 있던가...?’

잠시 침묵.

그리고 자판 위에 얹은 손끝이 조용히 방향을 틀었다.

“아니다. 김치 두루치기다.”

매콤한 고추기름 냄새,

반쯤 익은 양파의 단맛,

그리고 뜨거운 밥 한 공기.

비 오는 날의 쓸쓸함을 잠시 잊게 해줄 지극히 생활적인 위로.

글은 쓰지 못했지만,

마음은 오래 머물렀다.

쓸쓸한 비는 아직 창밖을 적시고 있었고,

나는 그 안에서 오늘 하루의 감정을 조용히 데우는 중이었다.

아무 말 없이 혼자 앉아 한참을 생각하다가 마침내 웃으며 노트북을 덮었다.

오늘도 잘 살았다,

김치 두루치기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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