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격차와 갈등, 그리고 새로운 가치 질서

by 동쟌


[ 소중한 시간을 아껴친절한 요약 ]

기술과 플랫폼은 편의와 효율을 앞세워 빠르게 확산되며, 시장과 노동의 구조를 바꾸고 있다.

수익과 결정권은 플랫폼에 집중되고, 비용과 책임은 플랫폼 종사자에게 전가되고 있다.

기술이 만든 이익과 책임의 구조는 균형을 잃고 있으며, 그 조정 방안을 고민할 시점에 와 있다.




[ 본문 ]


사람들은 배달앱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차량 공유 앱으로 출장을 다니며, 숙박 공유 플랫폼을 통해 여행을 떠난다. 편리함은 습관이 되었고, 그 습관은 특정 기업의 시장 지배력을 더욱 단단히 만든다.

하지만 플랫폼이 편해질수록, 그 뒤에 쌓이는 불균형도 함께 커져간다. 손님이 늘어났다고 해서 자영업자의 수익이 그대로 오르지는 않는다. 배달앱에 내는 수수료로 인해, 많이 팔수록 오히려 더 빠듯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배달기사 역시 마찬가지다. 하루 종일 앱을 켜고 있어야 하고, 콜을 놓치지 않으려면 식사도 제때 못 하고, 비 오는 날이나 눈 오는 날에도 무리해서 움직여야 같은 돈을 벌 수 있다. 앱 속에서는 모두가 '자유롭게 일하는 파트너'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앱이 정한 조건 안에서 끊임없이 달려야 하는 구조다. 플랫폼이 제시하는 수수료, 프로모션, 알고리즘은 언제든 바뀌지만, 그 결정을 바꿀 수 있는 권한은 오직 플랫폼에만 있다. 자영업자도, 배달기사도, 소비자도 이 구조에서 선택권을 갖지 못한 채 따라야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구조는 단순한 노동 조건의 문제가 아니다. 플랫폼은 기술을 매개로 사람들의 행동을 조직하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데이터와 거래 흐름을 독점한다. 시장의 흐름이 ‘수요와 공급’이 아닌 ‘알고리즘의 설계’에 따라 좌우되기 시작하면서, 경제적 자율성과 공정성은 점점 더 줄어든다. 기술이 중개자를 없앤다는 기대와 달리, 플랫폼은 스스로 새로운 중개자가 되어 더 큰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갈등은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터져 나온다. 노동자는 정규직도 아니고 완전한 자영업자도 아닌 경계 위에 놓여 있고, 소비자는 저렴한 가격과 빠른 서비스를 원하지만 그 비용이 누구에게 전가되는지는 잘 모른다. 정부와 지자체는 공공 앱을 만들거나 수수료 상한제를 검토하지만, 글로벌 플랫폼의 자본력과 마케팅 앞에서 쉽게 밀린다.

이 장은 그런 현실 속에서 기술이 만들어낸 새로운 불균형과 구조적 긴장을 다룬다. 플랫폼의 성장 이면에 가려진 이윤 구조, 노동의 단절, 책임 회피, 규제의 공백. 그 하나하나가 기술의 문제를 넘어, 새로운 시대의 가치 질서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5.1) 플랫폼 독점과 사회 갈등


플랫폼 산업의 급성장과 이윤 편중

최근 몇 년간 배달·공유경제 플랫폼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배달 앱이나 차량 공유 서비스를 통해 소비자는 편리함을 얻고, 소규모 업주나 자영업자는 고객을 더 쉽게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문제는 이 편의의 대가로 플랫폼 기업이 과도한 이윤을 챙긴다는 지적이 크다는 점이다. 예컨대 음식 배달 앱은 주문량이 늘어날수록 중개 수수료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결국 영세 식당은 매출 상당 부분을 앱 수수료로 넘겨줘야 한다.

이처럼 소수 대형 플랫폼이 산업 생태계를 장악하는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확인된다. 해당 기업들은 거래 데이터와 결제 시스템을 독점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소비자와 사업자를 사실상 종속시키는 지위에 올라선다. 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기보다, 플랫폼이 모든 참여자에게 ‘수수료’나 ‘규칙’을 일방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노동 착취와 불안정 고용 문제

배달기사나 차량공유 드라이버, 숙박공유 호스트 등은 플랫폼과의 ‘파트너십’을 맺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윤 대부분을 플랫폼이 가져가고 노동자들은 위험과 비용을 떠안는 사례가 많다. 주문량이나 호출을 확보하려면 플랫폼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므로, 계약서상으론 자영업자나 프리랜서처럼 취급받지만 사실상 회사 지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조건에 놓이게 된다.

또한 플랫폼 기업들이 임의로 수수료율을 인상하거나 프로모션 정책을 바꿔버리면, 배달기사나 호스트는 그 결정에 대응하기 쉽지 않다. “일을 하지 않으면 수입이 없어지고, 앱을 떠나면 대체할 수단이 별로 없다”는 점을 악용할 경우, 플랫폼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조건을 조정할 수 있다. 일부 배달기사와 차량공유 드라이버들은 노동조합 결성을 시도하지만, 법적으로 정규직이 아닌 상태라 보호받기 쉽지 않고, 플랫폼 측도 노동조합을 상대할 명시적 의무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렇게 플랫폼 모델이 확산하면서, 노동시장이 더 유연해진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는 동시에, 불안정 고용·노동 착취라는 부정적 면도 심화된다는 비판이 커지는 것이다.


‘승자 독식’ 구조의 심화

플랫폼은 한 번 시장을 선점하면, 네트워크 효과로 인해 시장 점유율을 더욱 공고히 한다. 배달 앱 사용자 수가 늘어나면 식당들은 그 앱을 쓰지 않을 수 없고, 식당이 몰리면 소비자도 더 몰리는 식이다. 이런 양면 시장 특성 때문에, 선두 업체가 독점적 지위를 굳히면서 2위 이하 경쟁자를 압도하는 ‘승자 독식’이 빈번해진다. 배달 시장에 진입한 후발 업체들은 일정 수준 이상 성과를 내기 어렵고, 결국 1위 플랫폼에 인수·합병되거나 사업을 접는 경향이 짙다.

이렇게 시장이 통합될수록 소비자에게는 ‘앱 여러 개를 깔 필요가 없어 편하다’라는 장점이 생길 수 있지만, 독점이 심화되면 수수료 인상, 소비자 혜택 축소, 사업자들에게 불리한 약관을 강제하는 현상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 실제로 대형 배달앱이 수수료 체계를 고치거나 프로모션 정책을 변경할 때마다 소상공인 단체가 거세게 반발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기술 플랫폼이 기존 중개자를 없애 경쟁을 촉진한다는 낙관적 기대가 있었지만, 현실은 소수 거대 기업이 시장 대부분을 장악해 또 다른 중간 착취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 갈등과 책임 소재

플랫폼 독점이 초래하는 문제는 노동계·소비자·소상공인·정부 등 여러 이해관계자 사이 갈등으로 이어진다. 노동자는 “플랫폼이 공정한 보상을 줘야 한다”고 요구하지만, 플랫폼은 스스로를 ‘중개 서비스’ 제공자일 뿐이라 주장하며 직접 고용 책임이나 안전 관리 책임을 부인할 수 있다. 소비자들은 빠른 배달·저렴한 요금을 원하지만, 그 비용이 노동자와 소상공인에게 전가된다는 사실까지 고려하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독점 플랫폼을 더 강하게 키우게 되는 셈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소상공인을 보호한다며 자체 배달앱을 만들기도 하지만, 대형 플랫폼의 편의성·마케팅 파워를 이기긴 쉽지 않아 경쟁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결국 갈등이 커지고 플랫폼 책임 논의가 불가피해지면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공정거래법이나 ‘플랫폼 노동 보호법’ 등을 제정해 최소한의 규제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배달기사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거나, ‘수수료를 일정 한도 이상 넘지 못하게 제한한다’는 식의 제안을 놓고 논쟁이 치열하다.




(5.2) 데이터 빈부 격차 : 개인·중소기업 vs. 대기업


클라우드·서버 접근성의 불균형

대기업은 전용 데이터 센터나 대규모 클라우드 인프라를 활용해 방대한 정보를 손쉽게 수집·분석할 수 있다. 반면 개인이나 중소기업은 그럴만한 자본이나 전문 인력이 부족해, 비슷한 데이터 환경을 구축하기 어렵다. 예컨대 대형 이커머스 업체는 자체 서버와 마이닝 툴(데이터에서 의미 있는 정보를 추출하는 분석 도구)로 소비자 행동 데이터를 24시간 추적하며, 구매 패턴을 실시간 반영해 가격 정책을 최적화한다. 반면 지역 소상공인은 그런 자동화 시스템 없이 체감으로 영업 방식을 바꿔가는 데 그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데이터 접근성에서 오는 격차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심화한다. 큰 기업이 더 많은 데이터를 처리해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면, 고객은 더욱 대기업 플랫폼으로 몰린다. 그러면 대기업은 더 많은 로그를 확보해 알고리즘을 개선하고, 경쟁 우위를 공고히 한다. 개인·중소기업이 추격하기엔 이미 격차가 너무 벌어진 뒤다.


대안적인 접근 방안

일부에서는 공공 클라우드나 협업을 통해 중소기업이 저렴하게 빅데이터 환경을 사용하도록 유도하려 한다. 정부 주도의 데이터 센터를 만들어,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기업이나 개인 개발자에게 기회를 주는 식이다. 하지만 기술 운영 노하우와 인력 부족이라는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인프라만 제공한다고 해서 근본적 격차가 좁혀지긴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결국 데이터 빈부 격차는 단순히 자본력 부족을 넘어, 데이터 활용 역량 자체가 대기업에 집중되는 문제로 이어진다. 기초 단계에서마저 격차가 커지면, 혁신이 필요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싹트기 어려워지고, 시장 다양성이 저해될 수 있다는 경고가 이어진다.




(5.3) 공공선과 사익의 충돌


공공 데이터 개방 vs. 개인정보 보호

정부나 지자체가 보유한 공공 데이터를 개방하면, 스타트업이나 시민단체가 이를 활용해 혁신적인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다. 예컨대 교통량·날씨·관광지 혼잡도 등의 정보를 실시간 공개해, 민간 기업들이 편리한 앱이나 시스템을 만들도록 장려하는 식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시민 편익을 높이고, 행정 효율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개인정보가 걸려 있는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개인정보를 필요 이상으로 노출하면 사생활 침해 문제로 이어지고, 데이터가 악용돼 사기나 범죄에 활용될 수도 있다.

이처럼 공익을 위해 데이터 개방이 절실하지만, 개인권 보호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가치라면 양쪽을 어떻게 조율해야 할지 난제가 된다. 이미 여러 국가에서 개인정보 마스킹 기술(민감한 정보를 비식별화하는 보안기술)이나 합법적 허가 절차를 마련하고 있지만, 완벽한 보안이 가능하냐는 회의적 시선도 존재한다.


공익 vs. 시장 논리

또 다른 갈등 지점은 ‘공공선’을 내세우며 공익적 데이터를 무료로 풀어야 하느냐, 아니면 수익 구조를 만들어 민간 활력을 높이느냐 하는 문제다. 공공 데이터가 귀중한 자원이니, 이용자에게 요금을 부과하거나 기업에게 유료 라이선스를 판매해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반면, 오픈소스·개방형 데이터 철학을 지지하는 이들은 “공공 기관이 취득한 정보는 시민의 것”이라며 민간과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맞선다.

특히 기상 데이터나 문화재 자료처럼 국가적 차원에서 모은 정보가 민간에 독점적으로 판매되면, 소수 기업이 이를 재포장해 과도한 이익을 취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렇게 시장 논리와 공공선이 충돌하는 영역이 늘어나는 만큼, 국가 차원의 데이터 정책이 더 정교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균형점을 찾는 노력

일부 정부 기관은 무료 개방과 유료 정책을 혼합하는 방안을 택한다. 예컨대 기본 데이터는 무상 제공하되, 초고해상도 자료나 실시간 모니터링 등 부가가치가 높은 부분은 유료로 운영하는 식이다. 또는 민감 정보를 충분히 비식별화해 공공영역에서 개방하고, 특정 기업이 이를 활용해 서비스화를 시도하도록 장려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공공선과 사익을 균형 있게 조율하려면, 정부·기업·시민사회가 함께 협의하고, 데이터 활용 규범과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각 나라·지역마다 상황이 달라 서로 다른 모델이 시도되고 있는데, 아직 국제적으로 확립된 표준은 없다. 다만 데이터 경제가 계속 성장함에 따라, 공공데이터 개방 정책과 개인정보 보호가 절충돼야 한다는 흐름은 더욱 뚜렷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5.4) 거버넌스와 규제 : 각국의 시도


유럽연합(EU)의 접근

유럽연합(EU)은 기술 기업의 독점과 편향 문제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해온 지역 중 하나다. 이미 GDPR (일반개인정보보호법)을 통해 개인정보 처리 기준을 엄격히 설정했고, 개인이 검색 엔진에 특정 정보를 삭제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잊혀질 권리’도 제도화했다.

최근에는 시장의 지배적 플랫폼을 견제하기 위해 디지털 시장법(DMA)과 디지털 서비스법(DSA)을 실제로 시행에 옮겼다. 디지털 시장법(DMA)은 플랫폼간의 공정한 경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규제로서, 구글, 애플, 메타, 아마존 등 일정 규모 이상 플랫폼 기업을 ‘게이트키퍼’로 지정하고, 이들이 자사 서비스를 우선 노출하거나 특정 앱 사용을 강제하는 행위, 외부 경쟁사의 시장 진입을 방해하는 구조를 금지하도록 하고 있다.

반면 디지털 서비스법(DSA)은 플랫폼의 사회적 책임에 초점을 맞춘 법안이다. 온라인상 불법 콘텐츠 유통을 감시하고, 알고리즘 기반 추천이나 광고의 투명성을 높이며, 사용자 보호 절차와 내부 신고 시스템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포함한다. 특히 일정 규모 이상 플랫폼에게는 더 강력한 의무가 부과된다.

유럽연합(EU)는 개인의 권리 보호와 공정한 경쟁을 중시하며, 지나친 규제가 혁신을 막는다는 비판에 대해선 “기술이 인간 중심일 때 오히려 지속가능한 경쟁력이 생긴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의 관점

미국은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기술 혁신을 장려해왔으나, 최근 빅테크 독점 우려가 커지면서 회의론이 부상했다. 메타, 구글, 아마존 등에 대한 반독점 소송이나 청문회가 열렸고, 관련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다만, 미국은 기업 친화적 분위기가 강해 규제가 유럽만큼 강력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혁신 DNA를 훼손시키지 않는 선에서 관리해야 한다”는 온건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미국 주요 거대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고 있어, 그 영향력이 본국 규제만으로 제한되지 않는 점도 복잡한 요소다. 미국 정부가 빅테크를 제어하려 해도, 이들이 전 세계에서 수익을 올리고 있으니 제도적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이다.


중국의 모습

중국은 한때 알리바바, 텐센트 등 거대 플랫폼 기업을 적극 육성하며 디지털 경제의 급성장을 이끌었다. 그러나 이후 플랫폼 권력 견제를 위해 반독점 조사, 대형 IPO 철회, 과징금 부과 등 강력한 규제를 시행하며 정부의 통제력을 강화해왔다. 최근에는 이러한 통제를 유지하면서도, 디지털 산업 전반의 성장세를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 부분적으로 유화 기조를 보이고 있다.

중국은 방대한 국가 주도 데이터와 AI 기술을 활용해 사회 신용제도, 감시 시스템 등을 운영하는 등, 기술을 공공 통치의 도구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민간 플랫폼이 정부의 엄격한 감독 아래 운영되면서, 거대한 디지털 생태계가 국가 주도의 관리 체계 안에 흡수되고 있는 셈이다. 다만 이러한 방식은 시장 자율성과 혁신 역동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각국 사례를 통한 시사점

각국이 디지털·AI 시대에 빅테크나 데이터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규제가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확산 중이다. 기업이 독과점적 지위를 누리면서 사회적 불평등이나 개인정보 침해가 심화되는 걸 방치하면, 대중의 불만이 폭발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규제가 지나치면 혁신이 가로막힌다는 반론도 강하다. 결국 ‘어느 수준의 규제가 최적이냐’를 놓고 각국은 계속 시험과 오류를 반복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EU)은 개인정보 보호를 가장 강조하는 편이고, 미국은 혁신 친화적이나 빅테크 견제 방안을 고민 중이며, 중국은 강력한 정부 통제와 민간 기업 발전 간의 모순을 동시에 끌고 가는 중이다. 이런 국제적 흐름에서 거버넌스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가 향후 수년간 기술·경제 질서를 재편할 중요한 키워드가 될 전망이다.




(5.5) 기후·환경 문제에 대한 AI 접근


기후 예측 모델의 발전

인공지능 기술은 기후·환경 문제 해결에도 큰 잠재력을 보인다. 대형 연구소와 IT 기업은 AI 기반 기상예측 모델을 개발해, 폭우·태풍·가뭄 같은 극단적 기상 현상을 더 정확히 예측하려고 노력한다. 위성 이미지와 대기 데이터, 해양 관측 자료 등을 종합 분석해 기후 변화를 정밀하게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면, 재난 대비와 농업·어업 계획 수립에 막대한 도움이 될 수 있다. 나아가 이산화탄소 배출을 추적하고 탄소 흡수원을 찾아내는 알고리즘도 개발 중이다.


에너지 효율 최적화

에너지 소비량을 줄이는 방향에서도 AI는 다양한 솔루션을 제시한다. 스마트 빌딩 시스템은 실내 온도·조명을 실시간으로 조정해 전력 사용을 최소화하고, 전력망에선 수요 예측과 공급 조율을 자동화해 낭비를 줄인다. 풍력·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는 기상 변화가 변수지만, AI가 기후 데이터를 분석해 발전량 변동을 예측하면 효율이 상당히 높아진다. 이런 식으로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면, 장기적으로 탄소 배출량 감소에도 기여할 수 있다.


기술 한계와 과제

그러나 AI가 문제 해결 능력을 높인다 해도, 이를 실제 정책·산업 현장에 반영하려면 정치적·경제적 이권이 맞물려 복잡해진다. 한편, AI 모델 훈련 자체가 엄청난 전력을 소모해 탄소 발자국(배출하는 이산화탄소 총량을 수치로 나타낸 지표)을 늘린다는 모순도 지적된다. 결국 기후·환경 문제는 단순히 “알고리즘이 더 좋아지면 된다” 수준이 아닌, 전 지구적 합의와 적극적 실천이 필요한 영역이다. 그럼에도 AI가 기후 위기의 예측·대응을 정교하게 만드는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꾸준히 주목해야 할 분야로 거론된다.




(5.6) 시민 참여·집단지성의 가능성


오픈소스와 협업의 잠재력

디지털 시대에 집단지성이 발휘되는 대표적 형태 중 하나가 ‘오픈소스’다. 수많은 개발자가 코드를 공개하고, 다른 이들이 이를 개선하거나 확장하는 과정이 세계적으로 동시에 이뤄지면서 혁신 속도를 높인다. 리눅스나 파이썬 등 저명한 오픈소스 프로젝트들은 기업·정부·개인 개발자 누구나 기여하고 이익을 공유하는 구조를 구축했다. 이는 거대 자본이나 대기업이 아니어도, 집단 협업을 통해 경쟁력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증명한 사례다.


크라우드 펀딩과 시민 참여

또 다른 예가 크라우드 펀딩이다. 스타트업이나 창작자가 대중에게 직접 투자·후원을 받아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모델이다. 기존 금융 권력이나 기업 스폰서 없이도, 아이디어가 참신하면 순식간에 거액이 모일 수 있다. 이런 자발적 참여는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후원자들도 혜택을 나누고, 실패해도 큰 부담 없이 경험을 쌓는 식으로 작동한다. 시민들이 혁신적 아이디어에 투자자로 참여함으로써, 시장 다양성과 창의성이 증대된다는 평가가 많다.

한편 스마트시티 계획이나 정책 결정 과정에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주민들의 의견을 모으는 디지털 민주주의 시도도 늘어나고 있다. 이는 “민주적 절차에 기술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긍정적 사례이지만, 실제로 의견 반영을 어떻게 할지, 표본 대표성은 얼마나 확보되는지, 조작 위험은 없는지 등 해결해야 할 쟁점이 존재한다.


한계와 향후 전망

시민 참여와 집단지성은 분명 디지털 시대에 새 기회를 열어주지만, “누가 참여하고, 어떻게 의견을 조율하는가”라는 어려운 과제를 남긴다. 익명의 참여가 늘어나면 트롤링(악의적으로 방해하거나 혼란을 유도하는 온라인 행동)이나 가짜 정보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오픈소스나 크라우드 펀딩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긴 어렵고, 대형 프로젝트나 인프라 투자에는 여전히 거대 자본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이전 시대와 달리 개인·지역 단위에서 아이디어를 내고 협력하는 방식이 제도권 밖에서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기업과 정부가 기존 방식을 고집하기보다, 집단지성과 개인 창의를 어떻게 포용할지 고민한다면 새롭게 이익을 창출하고 갈등을 줄이는 길이 열릴 수 있다.




(5.7) 윤리·법, 현실의 한계


기술 진보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규범

AI·빅데이터·플랫폼 기술은 눈부신 속도로 발전해 사회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윤리와 법률 체계는 이를 즉각 따라잡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예컨대 자율주행차가 보편화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이미 각국 도로를 주행 중이고, 드론이 택배·정찰 업무를 수행하거나, 데이터 브로커가 개인 정보를 광범위하게 판매해도, 명확한 규범은 미비한 상태다. 이런 간극 때문에 불안정하고 모호한 상황이 이어져, 기술 오남용이나 시민권 침해가 발생해도 제도적 구제가 어렵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책임 소재 문제

기술윤리 문제에서 자주 논의되는 쟁점 중 하나는 ‘책임 소재’다. 예컨대 자율주행차가 교통사고를 일으켰을 때, 차량 소유주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제조사가 져야 하는지, 아니면 소프트웨어 개발사가 져야 하는지 법적으로 명확하지 않다. AI 의사결정이 잘못돼 대출 거절이나 채용 탈락이 이뤄진다면, 피해자는 누구에게 배상을 요구해야 할까? 플랫폼 기업은 “알고리즘이 한 결정”이라며 의무를 회피하고, 데이터 제공자는 “우리는 그냥 자료만 주었을 뿐”이라 주장할 수 있다. 이렇게 모호한 책임 구조 속에서는, 피해자가 생겨도 명확한 구제를 받기 어렵다는 비판이 강하다.


규제를 둘러싼 대립

기술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선 규제를 최소화하자는 쪽과, 이미 대형 플랫폼 독점·AI 편향 문제가 심각하니 강력한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쪽이 첨예하게 대립한다. 실리콘밸리나 투자계는 “규제는 곧 혁신 저해”라고 주장하지만, 시민 단체나 사회학자들은 “규제를 두지 않으면 불평등과 위험이 폭발할 것”이라 맞선다. 유럽연합(EU)처럼 상대적으로 강한 개인정보 보호와 반독점 정책을 내놓는 사례도 있지만, 미국·중국 같은 대규모 시장에선 각자의 정치·경제 논리가 얽혀 국제 공조가 원활하지 않다.


인공지능 윤리와 국제 공조 필요성

AI 편향, 디지털 격차, 감시 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AI 윤리를 국제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공감대도 나타나고 있다. 유엔이나 OECD 같은 국제기구가 인공지능 윤리 가이드라인을 시도하기도 하지만, 아직 구속력이 강하지 않으며 회원국들 간 이해관계 차이로 강력한 규범 수립이 요원하다. 거기에 기술을 선도하는 빅테크 기업들이 국제적인 다국적 기업 형태이기 때문에, 어느 한 국가의 법만으로는 이들을 전부 통제하기 어렵다.


디지털 권리와 제도의 미래

기술이 너무 빨리 바뀌면서, 법과 제도는 항상 사후 대응에 머물 위험이 있다. 예컨대 얼굴인식 기술이 상용화된 후에야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가 심각함을 깨닫고 규제안을 마련하는 식이다. 이 문제를 극복하려면, 기술 개발 단계부터 윤리와 법률 전문가가 참여해 잠재적 부작용을 미리 검토하는 ‘사전 규범 설계’가 필요하다는 제안이 나온다. 그러나 기업들이 기민하게 움직이는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이런 사전 절차를 의무화하면, 혁신 스피드를 떨어뜨린다는 반발도 여전하다.

결국 “기술 발전과 사회 안전, 어느 쪽을 얼마나 우선하느냐”가 윤리·법의 문제에서 핵심 쟁점이 된다. 현실적으로 혁신이 막을 수 없는 흐름이라면, 사회 시스템이 그 속도를 따라잡으려 더 적극적으로 법과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갈등이 불가피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통제 없이 치닫는다면 기존 불평등이 더 심해지고 윤리적 재앙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결국 기술과 제도가 함께 맞물려야 이번 격차와 갈등을 완화할 수 있을 전망이다.




(5.8) 세계가 지향하는 미래 가치 : 갈림길


기술 낙관론 vs. 비관론

디지털 시대를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갈린다. 낙관론자들은 “기술이 모든 것을 바꾸고, 결국 더 풍요롭고 편리한 세상을 만든다”고 주장한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경제 효율성을 높여, 기아·빈곤·질병을 한층 줄일 수 있다는 기대감이 대표적이다. 반면 비관론자들은 “기술 발전이 곧 더 큰 격차와 통제, 감시를 낳으며, 환경파괴와 감정 소외를 심화시킬 수 있다”며 경고한다.


각국의 미래상

일부 선진국은 고도화된 AI와 자동화로 복지·환경 문제를 해결하며, 노동 시간을 줄이고 창의적 활동에 몰두한다는 낙관적 미래를 그린다. 대규모 기본소득이나 공공 인프라가 갖춰져, 시민이 자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반면 개발도상국이나 취약 계층이 밀집한 지역에선, 기술 격차가 극단적으로 벌어져 ‘디지털 빈곤’이 깊어질 수 있다는 비관적 예측이 힘을 얻는다.


갈림길에서의 선택

세계가 어떤 미래 가치를 지향하느냐에 따라, 기술 사용 방식과 사회 구조가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충분한 규제와 재분배 정책을 도입하면, 상대적으로 포용적인 디지털 문명이 형성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시장 논리를 최대한 보장하면 빠른 혁신은 가능하나 불평등과 독점이 확산될 위험이 있다. 현재로선 어느 길이 옳다고 단정할 수 없으나, 각국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가 미래 가치를 어떻게 합의하느냐가 향후 수십 년간 전 세계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어떤 방향을 지향해야 할까? 대다수 전문가나 시민사회는 “인간 중심”, “공정성”, “포용성” 같은 키워드를 자주 언급한다. 기술을 무조건 억제하기보다는, 그 수혜를 다수에게 고르게 돌아가도록 설계하고, 독점과 편향을 방지하는 식의 규범을 정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빠른 혁신으로 새 기회를 창출하되, 그것이 전통 산업·노동자들을 무너뜨리지 않도록 재교육·복지 제도를 보강해야 한다. 그런 과정 자체가 바로 ‘가치 전환’이 사회 전반에서 구현되는 모습이 될 수 있다.


여기까지가 1~5장에서 다룬 가치 전환의 본질이다. 물질 자원을 기초로 삼았던 시대에서 벗어나, 정보·데이터, 그리고 AI 알고리즘이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는 세상으로 옮겨가는 전환이 이미 시작됐다. 그 흐름 속에서 격차와 갈등이 제기되고, 공공선과 사익이 충돌하며, 국가 간 규제 모델이 각기 다른 양상으로 펼쳐지는 실태를 살펴봤다.

이제 6장~10장에서는 ‘존재(Being)’의 관점에서 이 변화를 재해석해 볼 것이다. 결국 AI 시대에 인간이라는 존재는 어디에 서 있으며, 인간 중심주의가 어떻게 뒤흔들리는지, 그리고 AI가 우리 인식을 얼마나 재편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치 전환이 사회·경제 구조를 뒤바꾼다면, 존재론적 측면에선 또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구체적으로 파헤쳐가겠다.




※ 참고문헌(이 글의 개념과 논의는 아래 책들을 발췌 또는 요약을 통해 참고하여 재해석해 구성했습니다.)

Nick Srnicek (2017). *Platform Capitalism*. Polity Press.

공정거래위원회 (2020). 『온라인 플랫폼의 불공정행위 실태 조사 보고서』.

European Commission (2020). *Digital Markets Act, Digital Services Act 요약본*.

European Union (2018). *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 (GDPR)*.

Rolnick, D. et al. (2019). *Tackling Climate Change with Machine Learning*. arXiv.

OECD (2020). *The Role of Data for Development and Public Good*.

IEEE (2019). *Ethically Aligned Design: A Vision for Prioritizing Human Well-being with Autonomous and Intelligent Systems*.

United Nations Human Rights Council (2021). *Report on the Impact of Artificial Intelligence on the Enjoyment of Human R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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