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지 못한 감정은 벌이 된다

by 동쟌


우리는 자주 무언가를 남긴다.

남기지 않으면 사라질 것 같아서.

사진을 찍고, 짧은 말을 적고,

지나간 날에 표시를 남긴다.

기억을 하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앞선다.


우리는 잘 지우지 못한다.

오래된 대화, 지나간 장면,

끝난 관계의 말끝 같은 것들.

지워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다시 떠올리고,

다시 떠올린 것을 또 붙잡는다.

붙잡고 싶은 게 아니라,

놓는 법을 모르는 것이다.


기억은 흔히 저장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남아버린 감정이다.

남으려고 한 게 아니라,

지워지지 않은 것.


살면서 많은 일이 있었지만

기억나는 건 얼마 되지 않는다.

대부분은 말끝이 맺히던 순간,

눈빛이 흐려지던 장면,

혹은 돌아선 뒷모습 같은 것들이다.


정확한 날짜는 떠오르지 않는다.

왜 그랬는지도 흐려진다.

남는 건 그때의 감정뿐이다.

말을 하려다 삼킨 마음 같은 것.


그리고 어떤 기억은

그날 이후 한 번도 다시 꺼내지 않았는데도

여전히 생생하다.

오히려 꺼내지 않아서 더 선명하다.


기억은 시간이 만든 게 아니다.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은 것.

그래서 우리는 가끔 이유 없이 울고,

아무 일 없는 날에도 오래 멈춰 선다.


기억은 선택이 아니라

남겨진 감정이다.

내가 기억한 것이 아니라

기억이 남은 쪽이다.


그렇게 우리는

기억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기억에게 붙들려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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