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우리는 사귄 지 4년 만에 결혼을 했다.
그는 아직 학생신분이었고 모아놓은 돈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결혼에 필요했던 돈은 거의 대부분 내가 부담했고 우리 부모님의 지원도 받았다.
어차피 월세집에 살고 있었으니 집을 구하기 위해 필요한 돈은 없었고, 가구나 가전제품도 모두 쓰던 것을 그대로 사용했다. 신혼여행은 가지 않기로 했다. 결혼식도 꼭 올리고 싶었던 건 아니었는데, 우리 부모님이 올렸으면 하셔서, 그의 부모님과 형제 두 명도 초청해서 한국에서 식을 올렸다. 나중에 더 글을 쓰겠지만, 남편 가족들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서 4명의 여행경비와 결혼식에 입고 참석할 옷까지 다 우리 돈으로 부담했다.
그 당시에는, 먼 길을 와서 결혼식에 참석해 준 것만으로 고마웠고, 최대한 그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애썼다
결혼하고 1년쯤 후, 그는 대학원을 무사히 수료했다.
빚 안 내고 대학원 학비를 내고 우리 생활비까지 거의 혼자 내느라 나는 투잡, 쓰리잡을 했지만, 그도 대학원 다니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를 했고, 파트타임으로 일해서 번 돈도 나한테 갖다 주며 노력을 했다. 무엇보다도 그 모든 건 우리 공동의 미래를 위한 거라고 생각해서 나는 아무런 후회가 없었다. 그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것을 같이 계발해 냈다는 생각이 들어서 학위 취득이 내 일처럼 기뻤다.
남편이 석사학위를 땄을 때, 시부모님도 많이 기뻐하셨다. 사실 시어머니가 일반 학교나 공립교육에 대한 불신이 있어서, 남편과 그 형제들은 초, 중, 고 과정을 모두 홈스쿨링으로 마쳤다. 남편 형이 초등학교 3학년쯤 됐을 때, 당시 담임교사가 시어머니 기준에서 합리적이지 못한 이유로 아이가 ADHD 인 것 같다고 말했고, 시어머니는 분개해서 자식 4명을 모두 집으로 데려와서 홈스쿨링을 시키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래서 남편은, 반년 정도 초등학교를 다닌 것을 제외하면 대학이 처음 가 본 학교였다고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도 남편의 석사학위 취득을 기뻐해줘서 기분이 좋았다. 근데 그렇게 기뻐하면서도, 학비나 다른 면에서 서포트를 한 나한테는 수고했다는 말이 한마디도 없길래, 말없이 지나간 그 순간들이 조금 섭섭했다. 하지만, 시어머니 학비를 댄 것도 아니고 칭찬을 들으려고 한 행동도 아니니 굳이 그런 말을 안 들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 모두는 남편과 나, 우리를 위해 한 일이었으니까.
어쨌든 우리의 노력으로 같이 딴 그의 석사학위 덕분에, 남편은 좋은 직업을 얻고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