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장은수 문학평론가의 글에서 “연필은 소멸을 통해 불멸을 이룩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친다.”라는 문장을 읽었다. 그 문장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채로 내 뇌리에 깊이 박혔고, 이후로 다른 필기구 보다 연필을 특별히 더 좋아하게 되었다.
일기를 남기는 중요한 순간에도, 밑줄을 긋는 사소한 순간에서도, 손끝에서 조금씩 닳아 없어지는 뾰족하고 날카로운 연필은 오히려 무언가를 ‘남기고 있다’는 분명한 사실로 나를 오래 붙잡았다.
최근 나의 지난 30년을 돌아보며 이유도 모른 채 내가 좋아하던 그 문장이 내가 살아온 방식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을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것은 나만의 삶의 방식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존재하는 본질적인 패턴이기도 한 것 같다.
타오르는 열정과 소모되는 감정의 반복,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단단해지고 치유되며 회복하는 순환의 과정.
닳고, 사라지고, 상처받고, 흔적을 남기고, 회복하고, 더 성장하는 소멸로 인해 불멸을 이루는 이 모순적인 흐름은 숭고해 보이기도 하고, 어찌 보면 미련해 보이기도 하는 역설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 아름다움에 대하여 자주 그리고 깊이 생각한다.
나는 살아오며 얼마나 많이 소모되었는가, 소모되는 과정에서 어떠한 흔적을 남겼는가, 나는 어떠한 불멸을 남기고 소멸할 수 있을까? 내가 사랑하고 사랑했던 사람과 생물, 자연, 시간, 장소 모든 것들과 나는 얼마나 많은 마음을 보내고 받으며 셀 수조차 없는 타오름과 소멸을 겪었을까, 그 소멸은 지금 내게 어떤 흔적으로 남아있을까.
우리는 모두 각자 다른 유한한 시간을 공존하며 소멸을 향해 흘러가는 존재임을 다시 깨닫는다. 소멸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더 많이 다정하고, 사랑하고, 기록하고 기억해야 되겠다고.
소모와 영원은 서로를 완성하는 질서일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의 끝에 다다르다 보니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나의 시간을 부정적인 감정을 만드느라 고통받는데 쓰고 싶지가 않아 진다. 우리가 살며 남겨야 할 영원한 가치를, “사랑”을 나눠야겠다.
내가 사는 동안 최대한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