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은 냄새를 견디며 자란다
치앙마이 어느 쿠킹클래스.
주방 문을 열자마자, 얼굴을 후려치는 냄새가 날아왔다.
농담 아니고, 코를 맞은 느낌이었다.
숨을 쉬려다 본능적으로 코를 막았고,
선생님은 아무렇지 않게, 마치 오래된 비장의 무기처럼 작은 병을 꺼냈다.
"피쉬 소스입니다. 태국 요리의 영혼이죠."
피쉬소스를 처음 본 건 그때였다.
보기도 전에 냄새가 먼저 나를 때렸다.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코를 틀어막고,
이게 식재료라고? 싶었던 기억.
그날 이후로도 한동안 피쉬소스는 나에게 ‘이상한 냄새’였다. 그런데 웃긴 건, 지금은 그 향을 맡으면 딱 한 마디가 튀어나온다.
“어, 태국 요리 냄새!”
예전에는 코를 막던 냄새가,
지금은 입맛을 자극하는 향이 된 거다.
입맛이란 게 그렇게 생긴다.
처음부터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후각이 먼저 견디고, 미각은 나중에 따라온다.
발효는 그 견딤의 감각이 가장 농축된 형태다.
김치, 된장, 청국장, 푸푸, 템페, 피쉬소스, 낫토, 블루치즈까지.
다들 어딘가 썩은 듯하면서도 살아 있는 냄새를 풍긴다.
발효는 단지 음식을 익히는 기술이 아니라,
후각을 훈련시키는 문화다.
이 문화는 기후와도 닿아 있다.
더운 나라일수록 냉장이 어렵다.
그러니 오래 보관하려면 발효를 시켜야 했고,
그 과정에서 나는 냄새를 “참는 법”을 배워야 했다.
동남아의 피쉬소스, 벨라찬, 인도네시아의 템페, 아프리카의 푸푸.
모두 “냄새와 함께 먹는 음식”이다.
반면, 추운 지역은 다르다.
보존이 상대적으로 쉽다 보니,
냄새를 줄이는 쪽으로 조리법이 발달했다.
훈제, 소금절임, 향신료를 덧입히는 방식.
냄새를 감추거나 우회하는 문화다.
이건 단순한 조리법의 차이가 아니다.
냄새를 견디는 문화와, 냄새를 피하는 문화의 차이다.
후각이 감각의 중심에 자리 잡느냐, 조심스레 눌러놓느냐의 선택.
그러고 보면, 한국의 ‘집밥 냄새’도 그 경계에 있다.
된장찌개 냄새.
퇴근하고 들어오면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 냄새났으면 좋겠다는 말.
익숙하고 따뜻한, 가장 집다운 냄새.
하지만 그 향도 누군가에겐
피쉬소스만큼 낯설고 거부감 드는 냄새일 수 있다.
후각은 그만큼 정직하고, 그만큼 훈련이 필요한 감각이다.
우리 아기에게 된장국을 처음 먹였을 때,
고개를 젖히며 거부하던 순간이 생각난다.
그냥 맛이 싫은 게 아니라, 냄새부터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그런데 반복해서 노출되자, 어느 순간
자기가 먼저 숟가락을 들었다.
입맛은 참는다고 생기지 않는다. 냄새를 견디며 익는다.
누군가의 집밥 냄새는,
다른 누군가에겐 이질적인 향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냄새를 ‘이해해 보자’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단순히 음식을 넘어,
그 삶의 방식에 다가가게 된다.
입맛은 그렇게 자란다.
코를 막던 기억을 품고,
다시 그 냄새를 반가워하는 순간들로.
입에서 시작된 감각은,
때로 기억과 구조로 이어집니다.
‘씹다가 멈칫’은 감각의 흐름을 기록합니다.
이 시리즈는 1편부터 읽을수록 더 맛있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