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전선과 최후

by 이은도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전광판을

별생각 없이 쳐다보던 참이었다.


그런데 노인이 내게 말을 걸었다.

"이보게 들리시오?"


"예 말씀하시죠."


"정말 다행이오. 통하는 자가 있어

지금까지 진행 결과를 알려드리겠소.

현재 그들의 시스템은 정상작동하고 있어

소수의 의심만 받는 상태이오.


"그러나, 어디까지나 대중들의 시선이지

우린 여기에서 한 발짝 아니 더 멀리서

봐라 바야 하오. 그러다 보니 우리는 패배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봐야겠지요.


나는 군말 없이 팔짱을 끼운 채로 듣고만 있었다.

그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했다.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동질감이 느껴졌다.


"혹시 이해가 안 되시면 말씀해 주시오

이제부터는 각자도생이라 명하겠소

우리의 옳고 그름은 사실 판단할 수 없으므로

자신의 믿음으로 행해야 하는 것이겠지요.


"우리가 해야 될 일은 중.

극단화된 양상에 대해 바로 잡을 필요가 있소.

한쪽으로 치우 처진다면 다른 생각을 못한다.

이 말은 사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오.


"특정 시기가 오면 우린 근거로 하여금

결정을 내려야 하오. 그럴 때마다

'나는 중심 혹 중립을 지켜야 해'라며

팔짱을 끼운 채 담배나 각종 술들을 곁들이며


"지혜로운 척, 정의로운 척

도덕, 미덕

그릇된 가치만이 정답이라 생각하여

자신의 곳간이 비어 가는 줄도 모른 채

주린 배를 주어 잡다

적대감만 형성하게 될 테니..


버릇처럼 하던 팔짱을 풀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습관적으로

짝다리를 짚던 다리를 확인했다.

의식하진 않았지만 다리는 어느새 펴진 상태였다.


"상대방의 말을 듣고 의심하시오.

순종적인 태도는 언제나 환영받아 왔으니

어딜 가든 밥은 굶어 죽진 않을 테고

이 자세를 취해도 인정을 받았으니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는 걸 느끼지 않으시오?

언제나 날씨에 맞게끔 의복을 차려입기 마련


"하나 지금 사람들은 알몸이오.

그들은 자신이 나체로 돌아다닌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거기에 더해

각종 장신구를 치장하오.


"그리고 그게 곧 정상이오.

우린 그들의 의복을 벗겨야 하오.

미친 사람 취급을 받고

형에 투옥할 수 있겠지요.


"그보다 여기나 저기나

똑같다는 게 제 생각이오.


"다수도 분명 틀릴 수도 있소

오답이라고 해서 비난을 퍼붓는다면

누가 문제를 풀려고 들겠소


"책임이라는 열차를

누군가 제어하기를 바라기에

이젠 절벽이 코 앞이오.


"당신이 제어해 주겠소?

아니란 말이오.

동적 하부의 영향은 누구의 잘잘못은

따지기엔 꽤나 부끄럽지 않소?


"그래서 결론이 뭡니까?

시간이 없단 말입니다 저에겐."

듣다 지쳐 내가 말을 끊었다.


"결론은 저도 모르지요."


"예? 방금은 제가 중을 바로 잡아야 한다면서

방법을 알려주시는 거 아니셨습니까?"


"글쎄.. 방법이라.. 방법이..."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골똘히 눈알을 굴렸다.


"예. 뭔가 나왔습니까?"


"아니오. 저도 모르겠소."


"알겠습니다.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잠시만 한 가지 얘기하고 싶은 게 더 있소."


"예.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어린 시절부터

혁신, 혁명, 반란과 같은 듣기 좋은 말에

옭매여 살아왔소. 그러나 지금은 스스로

잠식되어 가고 있어 내가 무엇을 하는지

자각조차 못하오. 심지어는 내가 누구인지

어제는 뭘 먹었는지 조차 모르겠소."


"그래서 얘기하고 싶소. 그대는 총명한 눈을 가졌소.

분노의 가득 찬 그 눈 말이오. 모든 게 원망스럽지 않소?

솔직히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행동을 할 건지

예상이 가오. 그래서 첨언을 올리겠소."


"하지 마시오."


노인의 말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옙 말씀해 주신 바에 따라 가치 판단에 맞게

저울대에 올려놓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시죠.

무리는 안 합니다."


나는 깊은 숨을 내쉬며 또박또박 크게 말했다.


"알겠소. 얘기 들어주셔서 감사하오."


노인은 검은 봉지를 내게 건네주었다.


"이게 뭡니까?"


"무화과요. 맛있게 드시오."


"예. 감사합니다. 어르신 저의 머리로는 이해하지 못해도

마음은 충분히 받았습니다."


"마음이라.. 그거면 충분하오."


노인은 점점 내 시야 멀어져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

그는 뭔가 모르게 나와 닮았다. 눈도 행동도 말투도

기분이 오싹했지만


나는 내 할 일이 있기에

깊은 고민 없이 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밤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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