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크기

너와 내가 사랑을 하는 지금을 산다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깨닫자

by 능이

"넌 나 얼마나 좋아해?"

그냥 단순한 궁금증이었다. 돌아올 대답이 알고 싶었다. 네가 어떤 아름다운 언어로 나에 대한 사랑을 전할지.

평소에도 우리는 "사랑해"라는 말이 자주 오가는 편은 아니었다. 그런 건 내가 어려워 하기도 하고,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스킨십을 하거나, '바보'와 같은 애칭으로 부르거나, 귀엽다는 말을 해 주는 것을 더 많이 했다. 그 직접적인 말은 아주 가끔 사용했다. 그래서 갑자기 그렇게 물었다. 날 얼마나 좋아하냐고. 그건 내가 평소에 확인 받지 못했던 사랑과 관심에 대한 질문이었다. 네게 내가 우선 순위가 아닐 때, 그 쓸쓸함을 달래 줄 작은 위로와도 같은 말에 대한 질문이었다.

좋아한다는 마음의 크기를 말로 표현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물어 보았다. 예상대로 넌 꽤 오랫동안 고민했다. 10분, 20분, 질문을 고작 하나 던진 것 치고는 긴 시간을 기다렸다. 마침내 네 입이 열렸을 때 네가 한 말은 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었다.

"그럼 너는 어떤데?"

실은 네가 고민하는 시간 동안 나도 똑같이 생각을 해 보았다. 낭만적이고 예쁜 단어가 필요했다. 그런 표현을 사용하고 싶었다. 이것저것 머릿속에서 후보를 정리해 보다가 얼마 되지 않아 하나로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네가 되물었을 때 나는 곧장 그것에 대답할 수 있었다.

"우리가 사귀기 시작한 날부터 서로 나눈 말들의 단어의 갯수만큼 널 좋아해."

셀 수 없이 많은, 거의 무한에 가까운 유한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무한한 건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랑에는 언제나 끝이 있다. 그래서 난 내 사랑이 무한하진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무한에 아주 근접했고, 동시에 유한하면서, 그 수치를 가히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규모였다. 그걸 말하고자 하니 생각나는 것은 '말'이었다. 말은 일상 생활에서 자주 사용되는 소통 방식이고, 그것을 통해 우리는 무언가를 전달한다. 120일에 가까운 시간 동안 너와 나는 수많은 대화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 들은 단어의 갯수를 세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그만큼, 그렇게 너를 좋아했다.

나의 답을 들은 너는 몇 분을 더 고민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말을 꺼냈다.

"우리 둘 중 한 명이 죽어야 한다면, 기꺼이 내 목숨을 포기할 수 있을 정도."

'그 정도까지라고?' 싶은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의심은 아니었고, 내가 상상하지 못한 수준의 답변이 튀어 나와 놀랐던 것이었다. 목숨은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이익 중 최고 단계에 있는 것이다. 남이 함부로 판단할 수도 없다. 그것을 사랑하지 말지는 오직 자기 자신의 자유이지만, 사랑하지 않는다면 높은 확률로 불행할 것이다. 내 머릿속에서 목숨과 삶은 그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게나 귀중한, 목숨이라는 것을 나를 위해 희생할 수 있다는 점은 내 상식 선에선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는 지금까지 나에 대한 네 사랑을 확인할 방도가 도무지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까지 무거울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물론 지금까지의 너의 사랑이 가벼웠다는 뜻은 아니지만.

생각해 보니 네가 죽으면 난 더 이상 내 마음에 손 쓸 방도가 없다. 차라리 우리가 헤어진다면 그건 그대로 망가지거나 잊어버리거나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네가 죽게 된다면 널 사랑하지도, 사랑하지 않지도 못하는 그 애매한 선상에서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너를 기다리는 행위만을 하는 것이다. 그건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온몸으로 받을 만큼 아픈 일이다. 네가 죽으면 난 어떡하냐고 물었다. 그때의 나는 울고 있었다. 너는 그런 내 모습에 놀라며 말했다.

"진짜 죽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래."

"너라면 어느 날 진짜로 죽어버릴 것 같아."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저 네가 힘들어 했던 시간들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 봤던 사람이기 때문에 그랬던 걸까? 아니면 나 또한 그에 버금가는 나날들을 보냈어서? 이유도 모른 채로 눈물이 자꾸만 뺨을 적셨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진정이 되었고 뇌의 순환은 다시 목숨의 의미에 대한 생각으로 돌아갔다.

그 이후 너는 죽지 않기로 나와 약속했다.




언젠가 너는 내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난 네가 나 없이도 잘 살았으면 좋겠거든?"

목숨을 포기할 수 있다는 건 잘 살지 못하는 것의 가치와 비슷했다. 분명 그렇게 생각되었다. 나를 위해 제 삶을 포기할 수 있을 정도라면, 나 없이는 잘 살지 못할 것이다. 그 대등한 크기의 마음을 인지했을 때 나는 비로소 너의 모순을 알게 되었다. 넌 내가 너 없이도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실상 너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의 사랑의 크기에 대한 말을 나누었던 그날 새벽, 단도진입적으로 질문했다. 넌 나 없이 잘 살 수 있냐고.

그러자 네가 "잘 살지는 못하겠지"라고 답변했다. 그 대답을 듣자마자 또 눈물이 나왔다. 예전에는 일부러 나와 거리를 두었다는 너의 말에 그냥 "난 네가 없어서 우울한 게 아니라 사람이 없어서 우울한 거야"라고 둘러댔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난 너 없이는 잘 못 사는 사람이 맞았다. 그리고 너도, 나 없이는 잘 못 사는 사람이다. 너와 나 둘 다 그렇다. 원래 사랑이란 그런 거다. 없으면 외롭고, 쓸쓸하고, 슬프고, 그런 어두운 감정들이 떠돌지만, 있을 때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그것들을 모두 견뎌내는 시간들의 연속이다. 그래서 늘 감당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네가 내 옆에 존재함으로써 내가 힘들어지는 것들을 감당한다고 말했었다. 너는 납득하지 못했지만.

"나 그냥 너 없이는 잘 못 사는 사람 하면 안 돼? 우리 헤어지면 그때부터 잘 사는 사람 할게. 그러니까 지금은 잘 못 사는 사람 하게 해 주라."

너는 긍정했다. 네가 날 사랑했으면 하는, 널 오래도록 사랑하고 싶은 나의 이기적인 마음이었다. 우린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서로가 없으면 잘 살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지만, 그것으로 사랑을 증명하고 있었다. 영원한 마음은 없다. 그렇기에 곁에 있을 때 줄 수 있는 만큼 주어야 한다. 떠나면 그때부턴 남이니까. 어떤 사랑이 빛나는 순간은 가장 소중할 시절이고, 그게 바로 지금인 우리에게는 미래의 안녕을 기약할 여유가 없다. 그래서 그런 말을 꺼낸 거다.

"그리고 너도. 나 없이 잘 못 사는 사람 했으면 좋겠어."

서로가 있기에 아프지 않은 날을 서로가 있어서 아픈 날보다 더 많이 만들자. 그것만으로 우리는 예쁜 사랑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지금을 살자. 너와 내가 사랑을 하는 지금을 산다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깨닫자. 난 그제서야 우리가 이별을 고한 뒤에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