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줄의 시를 쓰고,
내가 그 시가 된 순간을 경험했다.
의도 없이 적어 내려간 단어들이
내면의 문을 열었고
나는 그 안에 머무르는 동안
온전히 그 시와 하나가 되었다.
계획도 기교도 없었지만
글을 덮은 뒤 찾아온 고요는
마치 문이 스르르 닫히는 소리와 같았다.
그 순간 나는 창작을
‘바라보는 일’이 아니라
‘머무르는 일’로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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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으로 우리는 ‘창작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창작이 일어나는 순간은
내면의 경계가 사라질 때라고 생각한다.
불교 용어로 즉관(卽觀)이라 부르는 이 상태는
대상을 향한 시선이 아닌
대상을 이루는 그 자체가 되는 자리다.
즉, 보는 자와 보이는 것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가 된 자리에서 비로소 창작이 일어난다.
직관이 대상을 꿰뚫는 통찰이라면,
즉관은 어떠한 행위도 필요 없이
존재 그 자체로 머무르는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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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보통 법률 조항이나 등록 절차,
복제·공유 제재 등을 떠올린다.
그러나 진정한 저작권은
법 이전에 이미 창작자와 그 창작물 사이에서 발생한다.
창작자가 즉관의 자리에서 빚어낸 문장, 선율, 색채는
흉내 낼 수 없는 고유한 흔적이 된다.
예를 들어 성철 스님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는
평범한 언어에만 머무르지 않았고
그의 호흡과 감정, 사유의 궤적이 스며들어 있다.
동일한 말이라도 전혀 다른 울림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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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뿐 아니라 회화나 음악에서도 마찬가지다.
반 고흐가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그릴 때,
그는 단지 별과 하늘을 묘사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림 속 붓질 하나하나에
‘그 밤, 그곳에서 나와 별이 얼마나 다정히 숨을 맞추었는가’를 담았을 것이다.
모차르트가 한순간에 작곡해 낸 선율에는
그의 천부적 재능만큼이나
그 자신이 그 음악 안에 머무른 시간이 새겨져 있다.
기술만으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이 ‘머무름의 흔적’이
바로 존재적 저작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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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법적 저작권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법은 창작자와 그 고유한 머무름을
외부로부터 보호해 주는 장치다.
불법 복제나 표절로부터 권리를 지키는 것은
곧 그 창작자가 즉관의 자리에서 얻은
존재 가치를 사회적으로 확인받는 과정이다.
다시 말해, 법적 저작권은
‘창작자가 거기 있었다’는 사실을
제도적으로 보증하는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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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디지털 환경에서는
창작물이 빠르게 확산되고 변형되며 공유된다.
그 과정에서 원본의 ‘머무름’을 지키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진짜 저작권은
복제 가능한 파일이나 수치화된 데이터가 아니라,
복제될 수 없는 ‘그 자리에 머문 경험’이다.
아무도 타인의 머무름 속으로 들어가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없으며,
흉내 낼 수 없는 울림만이
진정한 저작권의 증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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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는 묻게 된다.
“이 창작물을 내가 가질 권리가 있는가?”보다 먼저,
“나는 지금 이 순간
창작 안에 머물러 있는가?”라고.
창작은 바라보는 일이 아니라
존재가 존재에 닿는 자리에서 비로소 일어난다.
그리고 그 머무름의 기록이자 증거가 저작권이다.
창작자는 자신이 만든 것을
‘지켜야 해서’가 아니라
‘지킬 수밖에 없어서’ 지킨다.
그것은 보호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존엄에 대한 증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