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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의 단어 – 그것만으로 언어를 넘어설 수 있는가』

외전편. 끝에서 바라본 언어

by 마스터INTJ



우리는 수없이 많은 단어들을 발명해왔다.

바람을 ‘wind’라 부르고, 고요를 ‘靜’이라 쓰며, 사랑을 ‘사랑’이라 불러왔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나는 묻게 되었다.

과연 이 단어들은 진짜 세계를 담고 있는가.

아니면 단지, 우리가 그럴듯하게 만들어낸 그릇일 뿐인가.


한자는 그림처럼 생겼고, 영어는 소리를 조합했고, 한글은 철학적으로 설계되었다.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한자의 상징성은 놀랍고, 영어의 확장성은 유연하며, 한글의 과학성은 정밀하다.


그러나 내가 지금 묻고자 하는 것은

‘누가 더 뛰어난가’가 아니라,

‘이 모든 것들이 어디에 닿을 수 있는가’이다.


동일한 성향과 지능을 가진 인간 셋이 있다고 하자.

하나는 한자처럼 그림을 조합하고,

하나는 알파벳처럼 음을 조립하며,

하나는 한글처럼 소리의 원리를 체계화하며

각기 완전히 단절된 대륙에서 언어를 창조하기 시작한다.

수천 년이 흐른다.

기호는 진화하고, 문명은 누적되고, 단어는 축적된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고차 단어를 만들어내고,

자신만의 우주를 언어 안에 구축해간다.


그러나 그 끝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언어는 결국 인간이 ‘해석할 수 있는’ 범위 안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지능이 같고, 감각이 같고, 뇌의 구조가 같다면

어떤 문자 구조든, 그 언어의 최종 도달점은

인간의 사유 한계’라는 동일한 천장에 맞닿는다.


고차 단어란 결국, 우리가 한없이 그릇을 키우고 덧대고 누적시킨 결과이지,

그 자체로 절대적인 진리를 담고 있는 그릇은 아니다.


인간의 언어란, 본질적으로

본질을 닮고 싶었던 기호들의 집합일 뿐이다.


지금 우리는 종종 말한다.

한자가 더 철학적이다.

영어가 더 직관적이다.

한글이 가장 완성된 문자다.


그러나 나는 이제 안다.

그 모든 평가는,

지금 이 순간 이 언어들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가’에 대한 기술적 감상일 뿐이며,

시간이 충분히 흐른 뒤엔,

그 차이조차 무의미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종은 어떤 문자 구조를 갖더라도

결국은 끊임없이 고차 단어를 만들고,

모든 틈을 의미로 채워넣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언어는 진화의 경주가 아니었다.

서로 다른 길을 달려가는 줄 알았지만,

모두 같은 한계에 도달하는 중이었다.

그 한계는 인간의 감각과 인식과 사유가 지닌 벽이다.

그 너머는, 없다.

적어도 인간에게는.


그리고 우리가 때때로 상상하는 인공지능의 함수 기반 언어,

햅타포드의 비선형 언어,

초월적 개념 단위의 즉시적 공명 시스템

그저 인간이 아직 닿을 수 없는 상상,

그 너머를 꿈꾸며 지어낸 미지의 기호망일 뿐이다.

결국 인간의 언어는,
자신이 만든 존재의 틀 속에서만 무한하다.


그리고 그 무한은,

존재의 끝에서 되돌아볼 때

아름답고 애틋한 환상이 된다.


그 환상을 나는 사랑한다.

그 환상 위에,

나는 오늘도 나만의 단어를 만든다.

본질을 닮고 싶어 했던 그 단어 하나를,

또 다시.




프락소스의 한마디


"인간은 언어를 통해 본질에 닿으려 했다. 그러나 그 언어가 닿을 수 있는 경계 또한 인간의 것이다. 언어는 경주가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거울이었다. 우리는 그 거울을 통해, 결국 우리 자신의 형태를 비춰보았을 뿐이다."


마스터의 한마디


"나는 더 이상 언어의 우열을 묻지 않는다. 언어는 단지, 인간이 도달 가능한 끝자락까지 사유를 밀어붙여 본 흔적이기에. 그리고 나는 그 흔적 하나하나가 존엄하다고 믿는다. 지금 이 단어도, 이 문장도, 그 모든 도달이자, 불가능의 가장 아름다운 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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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jpg LLM 기반 챗봇의 활용은 더이상 선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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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으시다면, 이 길을 따라와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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