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 키 크고 잘생긴 남자를 좋아했다. 키와 얼굴을 따지자면 키를 우선순위에 두었다. 그런데 병원에서 키 큰 환자는 오히려 환자를 간호하는데 악 조건이 되었다. 어느날 부터 아담한 남자들이 좋아 보인다. 젊은 날 그 멋져 보이던 건장한 남자들이 환자로 만나면 침상에서 일으키기도 이동시키기도 어려운 힘든 대상자가 될 뿐이다. 환자를 간호하는데 쉬운 환자, 어려운 환자 따지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직업이란 삶의 현실이 무시할 수 없게 만든다.
출근 후 매일 아침, 점심 식사 후 병실을 순회한다. 환자들도 살피고 시설이나 물품, 환경 등도 점검한다. 그러나 제일 신경을 쓰는 것은 환자 보호자이다. 아픈 환자들은 내가 아니어도 주치의도 살피고 담당 간호사들이 실시간 챙겨준다. 나는 그들이 미처 말하지 못한 것들을 보려고 한다. 그 작은 보호자 침대에서 힘들게 하룻밤을 견뎠을 보호자들, 환자의 밥상을 마주 보고 앉아서 나눠 먹는 밥이 오죽야 하랴 싶어서 두루 돌아본다.
내가 일하는 병원에서는 각 병동마다 중증 병실을 한두 개씩 운영한다. 그 병실에서 나는 선악과를 따 먹이고 싶은 사람을 만났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아담에게 아무 열매나 따 먹어도 되지만 유독 이것 만은 따 먹지 말라고 일렀다는 것이 선악과이다. 창세기에 나오는 열매를 말하니 어느 특정 종교인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연코 종교와 무관하다.
우측 편마비, 지능 단계는 초등학생 수준이다. 뇌출혈 수술 후 석 달이 경과되었다. 180은 되어 보이는 큰 키에 호남형 얼굴의 오십 대 남자다. 단독 활동이 불가능하고 혼자서는 밥도 먹을 수가 없다. 보호자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왼손을 움직이고 음식을 삼키고 간단한 의사소통은 하지만 그것도 정확하지 않다.
초기에는 뇌질환에 따른 질병을 치료하지만 급성기를 지나면 각종 합병증이 동반한다. 편마비로 인한 활동 제한도 있지만 삼킴이 원활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주 사래가 들고 음식물이 기도로 들어가서 반복적인 폐렴이 온다. 지금 이 환자는 폐렴이 주 진단이다.
수액이 달려있고 항생제 보틀도 여러개 달았다. 목에서 가래 끓는 소리도 난다. 폐렴이 조금 진정되려면 고열도 며칠 날 것이다. 열이 나면 피부 발적과 함께 욕창도 발생할 수 있으니 체위 변경도 필수적으로 해야 한다.
곁에는 쉰이 되었을까 싶어 보이는 환자의 부인이 반쯤 넋이 나간 모습으로 환자를 지키고 있다. 벌써 여러 달 병원을 오가며 간병을 하는 중이니 지쳤으리라. 체위변경을 설명하려다 지친 그 얼굴에 저절로 환자의 체위변경을 돕는다. "보호자분 아침 드셨어요." 걱정을 담아 묻는다. "조금 있다가 먹을 거예요." 옅은 미소를 띠며 답한다.
" 00호실 보호자 참 힘들어 보이네." 간호사실로 돌아와 지나가듯 말하니 동료 간호사들이 말을 잇는다. "선생님, 그분 보호자 유방암 4기인데요. 전이가 다 되어서 이제 항암도 중단한 상태랍니다."
모두가 조용하다. 마음속에 연민이 일어난다. 갑자기 환자가 얄밉다. 뇌질환으로 아무것도 모르고 혼자 평온하게 자기의 욕구를 마음대로 투정하며 보호자에게 짜증을 드러낸다. 낮에는 간간이 낮잠을 자고 밤에는 잠도 자지 않고 쉴 새 없이 침대 난간을 흔들며 보호자를 깨운다. 밤새 깜박 잠으로 눈을 붙이고 낮에는 환자의 식사를 돕고 씻기고 대소변 수발을 한다.
어느새 마음은, 눈길은 보호자에게 머문다. 아침나절 영상 촬영을 위해 휠체어로 촬영실을 다녀오는 길, 복도에서 갑자기 보호자가 축 늘어지듯 쓰려졌다. 급하게 침대에 눕혀 응급실로 옮겼다. 그런 와중인데 환자는 아무것도 모르고 태평하다. 두 자녀를 두고 단란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는 마치 옛 동화 속 풍경같이 아득하다. 불행의 신이, 나란히 마중 나온 부부에게 한꺼번에 초대장을 보냈더라도 한 사람은 나중에 가겠다고 떼를 써야만 했다. 어둠의 터널에 갇힌 부부를 꺼집어낼 지혜와 힘이 내게는 없다 다만 안타까움과 연민의 마음으로 이 부인에게 숨 돌릴 틈을 좀 주고 싶다.
얼마 뒤 응급조치를 받고 보호자는 환자 곁으로 돌아왔다. 어떤 경제적인 지원도 못해주면서 오늘 만은 언니 같은 모습으로 엄마 같은 마음으로 말한다.
" 에이 뭐, 내가 있어야 세상이 있고, 남편도 있지, 집에 가서 며칠 쉬다 와요. 그 사이 간병인에게 좀 맡기고, 이러다가 당신이 죽겠어." 나도 모르게 품에 안았다. 나는 이 늙지도 젊지도 않는 슬픈 여자에게 선악과를 따 먹으라 마음속으로 주문을 왼다.
다음 날 환자곁을 간병인이 지키고 있었다. 간병인이 바뀌자 얌전해지고 착한 환자가 되었다. 밤에 잠도 잘 잔다. 일주일 뒤 슬픈 그림자를 지닌 그녀가 다시 그자리에 앉아있다. 나의 주문은 내 입안에서 맴돈 것이 분명하다. 선악과를 따라 주문을 외면서도 나는 온전한 주문을 외지 못한 것인가?
마음속엔 그녀가 그 금단의 열매를 피하기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근래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자연스러운 듯이 현란한 빛을 비추며 유혹하는 선악과를 딴다. 어려움 앞에선 쉽게 이별하고,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을 탐하고, 물질에 현혹된 세상에 살고 있다. 쉬운 것, 편한 것, 나만을 위한 것을 찾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자리를 옮긴다. 불을 쫓아드는 불나방처럼···,
이제는 어쩔 수가 없다. 주문이 먹히지 않으니, 이제 주문의 주제를 바꿔야 한다. 더 이상 그녀를 유혹할 얄팍한 기도를 하지 않겠다. 이미 그녀에겐 흉측한 두 개의 선물이 배달되었으니 그 상황은 어쩔 수 없다. 다시 기도한다. 주문을 외듯이 기도한다. 선물의 포장지를 한 겹 한 겹 벗기고 제일 마지막 포장지를 벗겼을 땐 진짜 선물이 나타나길 기도한다. 포장지를 벗긴 그녀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어나길 기도한다. 신이 선악과를 만들었을 때는 분명 이러한 선물을 준비해 두었을 것이다. 어릴 적 엄마도 말 잘 듣고 착한 아이에겐 사탕 하나씩을 더 주셨으니 신이 분명 그녀를 위한 선물을 준비해 두었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그녀를 위한 신의 선물이 도착하기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