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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주절주절

근황토크? 그냥 토크?

by 스베틀라나

핸드폰이 지잉 울린다. 이게 뭐지, 하고 보니까 브런치에서 알람이 와 있다.

2025-07-05 11.44.24 brunch.co.kr a0bfc217f1be.jpg 브런치에서 보내는 경고문 (?)

어휴, 이것 참 보통 뜨끔한 게 아니다. 매일 아침 잠에서 깨어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은 꼭 글을 쓸 거야! 단 한 줄이라도!" 외치지만, 그 다짐이 무색하게도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거나 게임을 하기 일쑤였는데, 이런 내 모습을 브런치 담당자가 몰래 보기라도 한 것 같다. 뭐, 덕분에 브런치에게 죽비로 한 대 얻어맞은 (?) 김에 오랜만에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올리고 아무 내용이나 열심히 주절주절 떠들어보려고 한다. 물론 일기에 쓰는 게 나을지도 모를 허접한 글이 될 것 같지만, 갑자기 진지한 글을 쓰기에는 아직 글력(力)이 떨어져서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원래 운동도 오랫동안 쉬다가 갑자기 하면 다친다고.


너무 더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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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원래 더운 법이라지만, 최근 몇 년은 정말 심해도 너무 심하지 않나 싶다. '역대급', '유래없는', '관측 이래 최고' 등 온갖 수식어로 점철된 더위가 반복된다. 어릴 때 좋아했던 국산 애니메이션 라젠카의 오프닝 곡에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려'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기후위기와 지구 온난화로 인한 폭염으로 고통받는 지금 상황과 딱 부합하지 않나 싶다. 앞으로는 이런 극심한 더위가 뉴노멀이 될 거라는데, 지겹도록 기나긴 여름을 어떻게 버틸지 벌써부터 막막하다.


나는 더위에 무척 약하다. 러시아의 추위에 익숙해지기도 했고, 몸 내 체지방률도 높아서 조금만 더워도 반응이 바로 온다. 쨍쨍 내리쬐는 햇빛도 힘들지만,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습기는 더더욱 싫다. 그래서 동남아시아로 여행도 잘 안 가는데, 이제는 우리나라의 날씨가 점점 동남아시아처럼 바뀌고 있다니 보통 절망스러운 게 아니다! 이렇다 보니 나는 여름만 되면 시들어가는 상추처럼 힘을 잃은 채 축 늘어진다. 집중력이 급속도로 떨어지고, 눈앞이 어질어질하며, 뇌는 습기에 푹 익은 것처럼 돌아가지 않는다. 여름에는 불쾌지수가 높아진다는데, 살짝 술에 취한 것처럼 몽롱한 상태가 되어서 불쾌감을 느낄 여지조차 안 생긴다. 그렇다고 성격이 좋아지는 건 아니지만.


여하튼 올해도 열대야와 폭염이 한반도를 덮치면서, 나는 미역처럼 흐늘거리면서 "글 써야 하는데... 써야 하는데... 써야 하는데....."만 중얼거리고 있다. 원래도 툭하면 미루는 성격인데 여기다가 더위로 인한 의욕상실, 그리고 글을 써야 할 강제적인 프로그램의 부재가 더해지며 글쓰기는 더더욱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 그렇다고 글을 쓰지 않고 에어컨 밑에 쓰러져 있는 상태가 심적으로 행복한 것도 아니고, 전기세 고민으로 에어컨도 빵빵하게 틀지 못하고 있으니, 결국은 몸도 마음도 다 손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작년의 경우에 미루어보면 아마 가을의 중순이 지날 때까지도 이런 더위가 계속될 확률이 높다. 그 말인즉슨, 못 해도 두 달, 심하면 석 달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인데 절로 뒷골이 당긴다. 흑 앞으로 어떻게 하지.


이상하게 바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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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이상하게 바쁘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게 딱 이런 게 아닌가 싶다. 바쁠 이유가 도저히 없는 사람이건만, 어쩌다 보니 매일매일 어디든 나가고, 사람을 만나고, 자잘하게 할 일이 생기는데 문제는 앞에서 말했다시피 더위가 겹치면서 급격히 체력과 정신력이 소진된다는 점이다. 그러니 집에 돌아오면 자연스레 침대로 기어가서 쓰러지고, 오래되어서 쉰 소리를 내는 에어컨 밑에서 앓는 소리를 내다가 잠에 들기 일쑤다. 글을 쓸 생각은 더 안 든다고 변명도 해본다!


그렇다고 이렇게 바깥에서 돌아다닌 결과가 금전적인 이득이나 어마무시한 자기 발전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보니,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게 이런 상황이구나' 란 생각도 든다. 어흑, 글 쓴다고 바빴으면 좋겠다...


나는 참을 수 없이 먹고, 마시고, 자고, 문학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안 하면서 동시에 성실한 사람인 듯한 느낌을 받고 싶은 것이다.
- 안톤 체홉

Мне нестерпимо хочется есть, пить, спасть и разговаривать о лиературе, т.е. ничего не делать и в то же время чувствовать себя порядочным человеком.
- Антон Чехов

위의 문장은 얼마 전 웹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러시아 사이트에서 발견한 것으로, 러시아의 유명한 극작가이자 단편 소설가인 안톤 체홉이 한 말이라고 한다. 내 어설픈 번역이 원문의 맛을 제대로 살렸을지는 의문이 들지만, 아무튼 나는 위의 문장을 읽으면 이 위대한 작가가 "아, 진짜 그냥 아무것도 안 한 채 빈둥거리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도 어딘지 있어 보였으면 좋겠다!!"라고 외치는 장면이 떠올라 재밌어진다. 마침 내가 본 사이트에는 이 글귀 아래 침대인지 소파인지 정체 모를 곳에 반쯤 몸을 걸친 채 초점을 잃은 얼굴을 한 체홉의 흑백 사진을 함께 올렸으니, 아마 해당 글을 쓴 사람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게 아닐까 싶다.


체홉처럼 평생에 걸쳐 끊임없이 작품 활동을 한 거장도 그냥 먹고 놀고 마시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다는 점이, 그리고 그 와중에도 내심 괜찮아 보였으면 한다는 게 어쩐지 위로가 된다. 더위와 정신없는 일정을 핑계로 뒹굴거리는 내 모습이 한심하다가도, 뭐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게 된달까. 물론 계속 이렇게 미루고, 아무것도 안 하고 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잡담 비스무리한, 서론도, 본론도, 결론도 주제도 명확하지 않은 희멀건한 글이라고 할지라도 뭐라도 썼다는 점이 조금은 만족스럽다. 이래놓고서 또 며칠 동안 브런치를 방치할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보면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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