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 쓴 시간의 시
가을 햇살이 제법 따사로웠던 2025년 10월 24일 토요일 아침, 아직 잠이 덜 깬 듯 칭얼거리는 딸아이의 손을 잡고 길을 나섰습니다. 오늘은 특별한 여정이었죠. 바로 '제29회 우암문화제 우암전국 백일장'이 열리는 날이었거든요.
도착한 '우암사적공원'은 제가 중학생 때 이후 처음 찾아보는 곳이었습니다. 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공원 특유의 아늑함과 고즈넉함은 그대로인 듯했습니다. 개회식이 시작되려면 아직 시간이 있어 딸아이와 함께 공원을 거닐며 백일장 시제를 예상해봤습니다. 가을, 부모님... 아무래도 가을 풍경에 어울리는 감성적인 시제가 나오지 않을까 속으로 그려봤죠.
드디어 시제 발표 시간. 제 예상과는 달리 시제는 '선비정신', '장난감', '홍시' 세 가지였습니다. 셋 다 매력적이었지만, 마음은 달콤하고 따뜻한 '홍시'에 더 끌렸습니다. 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밀도 높은 시를 쓰기엔 '선비정신'이 좀 더 익숙하고 유리하리라 판단했습니다. 작가의 길은 때로는 감성보다 이성적인 판단이 필요한 법이니까요.
챙겨온 돗자리를 깔고, 익숙하게 시작노트를 펼쳤습니다. 아침엔 꽤 쌀쌀했던 공기도 햇살이 비추기 시작하니 금세 온화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다행히 아이 엄마가 딸아이와 잘 놀아주어 저는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글쓰기만큼 몰입이 필요한 시간이 또 있을까요. 원고지에 한 글자 한 글자 정성껏 옮겨 적어 내려가니, 주변의 소음도 사라지고 오직 글에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백지 위에 생각을 정리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던지요.
얼추 작품이 완성되어갈 무렵, 멀리서 풍물패의 농악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신명나는 장단은 백일장의 긴장감을 풀어주고, 글쓰기의 흥을 더 돋워주더군요. 마지막 오탈자를 확인하고 작품을 제출했습니다.
오랜만에 참여한 백일장은 저에게 잊고 있던 기억을 선물해주었습니다. 초등학생 때 어머니 손을 잡고 백일장에 다녔던 아련한 추억들. 당시에는 글을 쓰는 것보다 어머니와 함께하는 소풍 같은 시간이 더 좋았는데, 이제 제가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딸아이와 함께 백일장에 왔다는 사실이 묘한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아직 어린 딸아이는 오늘 이 하루를 모두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훗날, 언젠가 오늘처럼 따사로운 가을날, 백일장의 풍경 속에서 함께했던 아빠의 모습을 떠올리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날이 오기를 조용히 바라봅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