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참 괜찮았던 날
눈 뜨자마자 부칠 택배 두 박스를 포장하고 나니 이미 아르바이트에 늦은 시각이었다. 오랜만에 마신 커피 때문인지 밤새 뒤척였고 결국 늦잠까지 자 버렸다. 이로써 죄책감은 밀려오고 마는데 어차피 내일은 일찍 일어나겠지 하며 스스로를 달래고 넘겼다. 다행히도 엄마가 차로 데려다주겠다고 하셨다. 엄마는 엄마가 운영하시는 가게로 열 시 반까지 출근하시고, 나는 다른 일터로 향한다. 우리는 열 시 오 분에 집을 나섰고 나는 열 시 이십 분에, 엄마는 열 시 삼십 분에 각자의 일터에 도착했다.
칼국숫집 첫 출근 때는 엄마께 차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러면 엄마가 출근에 늦는다며 약 4개월 동안 버스를 타고 다녔다. 오늘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휴대폰을 확인해 보니 “엄마도 출근 시간이 딱 맞네. 월수금은 데려다줄 수 있을 듯”이라는 문자가 와 있었다. 나는 그동안 버스비가 아까웠다고 말하니 엄마는 이제 기름값이 아까울 거라고 농담하시기도 했다.
오전 내내 칼국숫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퇴근하면 곧바로 집으로 향한다. 메일링과 다양한 작업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쌓인 일들을 하나씩 마무리하고 나름대로 오늘의 끝을 내기 위해 정확히 6시 18분에 엄마에게 퇴근했다고 연락했다. 은근히 스스로가 자랑스러우면서도, 남은 일을 내일로 미루는 내 모습이 조금은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 그러고 보니 내일은 천안 당일치기 여행이 있다. 어렵게 찾아둔 예쁜 카페에 가서 또 일만 하는 일은 없겠지. 제대로 만끽하고 챙겨가는 책을 꼭 읽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오후 내내 업무를 보는데 곧 책 출간을 준비하는 지인께서 계속 질문을 보내오셨다. 친절히 알려드리고 싶었을 뿐인데 돌아보니 채팅방에는 나만 잔뜩 떠들고 있는 것 같았다. 책을 준비하는 과정이 그분에게도 즐거운지, 괜히 내가 더 설렌다며 주접을 떨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부담스러워하실까 봐 참았다. 나만의 책을 만드는 과정도 참 재밌지만 다른 사람의 책을 만들어 드리는 일 역시 오래전부터 품어온 또 다른 꿈이었다. 출판 편집자의 일을 맡아보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다.
좋은 기회로 몇 번 뵈었던 선생님께서 내 출판사에서 책을 내고 싶다고 하셨다. 선생님께서 준비하신 시 몇 편을 읽어보니 몇 줄의 문장 뒤에 숨어 있는 깊은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다음 만남에서는 그동안 정리해오신 글을 확인하고 계약서를 작성하며 함께 출간 기획을 세울 예정이다. 내년 중반기에 이 시집이 세상에 나올 수 있기를 바라며, 그 전까지는 나 역시 많은 발굴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정확히 기억하는 6시 18분에 퇴근한 뒤에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게임 한 판을 했다. 요즘 가장 고민되는 건 느려진 노트북이다. 많은 자료량과 프로그램, 게임까지 돌리다보니 산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버벅거리기 시작했다. 컴퓨터 하나 사는데도 큰돈이 들어가고, 내년 출간을 위한 자금도 필요하고, 자취도 하고 싶고 스페인 여행까지 가고 싶은 나로서는 무엇을 먼저 이뤄야 할지 막막하다. 그래도 언젠간 다 이루게 되리라는 이상한 확신이 있다. 간절히 바라면 결국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다.
게임을 마치고는 주토피아2 영화를 보러 갔다. 명대사가 많은 주토피아는 INFJ인 내가 정말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영화다. 관계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신뢰를 쌓아가는 사람이라면 위로도 받고 공감도 할 장면이 많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잊어버린 장면과 대사를 떠올리고 싶어 초록 검색창을 다시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