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
4월의 따뜻한 어느 봄날, 나는 운 좋게 동네 문화센터 글짓기 강좌에 마지막 학생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3월 신청기간에는 일을 하고 있어 시간이 맞지 않아 아쉬움이 있었다. 그런데 4월 수업 전 한 명이 수강취소를 했는지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눈빛이 번쩍! 내 손은 빛의 속도로 마우스를 클릭했고 그 수업의 첫날이 드디어 다가왔다.
무엇을 하든, 처음은 긴장되고 설레는 법!
처음 본 낯선 선생님은, 피부과 시술을 다녀오셨는지 얼굴이 불긋불긋한 남자 선생님이다. 다음 주부턴 예뻐질 거니 봐달라고 하신다. 하지만 그래서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은 선생님이다. 어떤 시술을 받으셨는지 입이 근질근질 궁금했지만, 꾹 참았다. 선생님은 자기소개를 해보라며 몇 가지 문항을 우리에게 제시하셨다.
나의 닉네임.
내가 좋아하는 꽃과 이유.
내가 좋아하는 숫자와 이유,
내가 좋아하는......
내가 좋아하는으로 시작되는 여러 가지인데, 공통점은 모두 나에 대한 것이었다. 자기소개이니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다. 나를 말해 보는 게 얼마 만인지 긴장되면서도 떨리는 시작이었다. 막연하게 자기 소개해보라가 아니라 친절하게 항목을 제시해 주셔서 생각보다 금방 써 내려갔는데, 발표 순 번이 뒤에서 3번째였다. 먼저 하고 느긋하게 다른 사람들의 눈빛과 목소리를 듣고 싶었는데 순서대로 해야 했다. 1분 단위로 내 심장은 쪼그라들었다. 꼭 취업 면접장에서 질문받기 전의 느낌이랄까? 순서대로 발표가 시작한 지 한 시간쯤 되어 내 순서가 되려는 찰나, 선생님의 갑작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쉬는 시간을 가지고 할까요? 이어서 다 하시고 쉴까요?", 나는 깜짝 놀란 나머지, 두 손을 가슴에 포개고 "다 하고 해요!! 선생님!!"이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선생님은 빙긋 웃으시며 "그래요, 그럼!" 하셨다. "휴우~" 나도 모르게 크게 숨을 몰아 쉬니, 사람들은 다 함께 "하하하!" 웃어댔다. 그리고 그렇게 두근거리는 내 소개가 시작되었다.
"저는 꽤나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12명의 학생들 중에서 제가 12번째의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로 시작하며 앞에 말한 이유를 설명했다.
"제 별명은 칸쵸입니다. 대학 시절 항상 별 일 아니어도 웃고 깔깔 웃던 친구들이 있었는데 모임명은 미친듯이&어처구니였어요. 웃고 나면 왜 웃었지?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라고 생각했지요. 우리는 각자의 개성에 맞게 과자 이름이 있습니다. 평범하지 않은 대장은 아몬드 빼빼로, 부드러운 인상의 초코파이와 엄마 같은 샤브레, 365겹 꼼꼼함을 지닌 엄마손파이, 그리고 저 동그랗고 귀여운 칸쵸 5명 모임입니다. 제가 과자를 좋아하는데, 지금도 제가 못 먹는 유일한 과자는 칸쵸입니다. 왠지 동질감이 느껴져서요."
분명 내가 적은 글은 이 내용보다 훨씬 짧은 글이었는데, 말로 옮기다 보니 글에 살이 붙어서 훅훅 무게가 불어났다. 모든 사람들의 소개가 끝나자, 선생님은 모두를 쭉 바라보며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여러분, 어디 가서 나에 대해 이야기 못한다고 말하지 마세요. 지금처럼 나의 이야기가 제일 쓰기 편하고 좋은 거랍니다." 모두들 처음엔 말을 잘 못한다며 자신감 없게 시작했지만, 다들 생기가 넘치고 조리 있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잘 풀어나갔다. 아니 오히려 시간이 부족했다. 그렇게 자기소개만으로 짧은 2시간의 수업이 끝났다.
딸아이와 하교 후, 마트에 과자를 사러 갔다. 좋아하는 과자라며 손에 집어 든 것은 핑크색 포장의 칸쵸였다. 유난히 칸쵸를 좋아하는 녀석이다. "오늘은 그거 먹지 말고, 다른 거 고르면 안 될까?" 사정하면, 한 번은 들어주고 꼭 한 번은 사야 한다고 고집한다. 공주가 와그작하며 씹으면, 나는 거짓말 보태서 살짝 아픈 느낌이다.
"이거 맛있어!" 하고, 하나 먹어보라고 권유해도 차마 입에 넣지 못한다. 오래된 친구처럼 정이 들었나 보다.
칸쵸, 언제까지나!
너와 의리를 지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