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빨리 가려고 애썼는데, 정작 나는 어디로 가고 있었을까."
얼마 전 한 연예인이 방송에서 이런 말을 했다.
고속도로에서 빨리 가보겠다고 1차선부터 4차선까지 차선을 바꿔가며 달렸는데,
도착해 보니 한 차선에서 그냥 달려온 차와 도착 시간이 거의 같았다고.
나는 그 말을 듣고 그저 웃었다.
그게 내 인생이었다.
나는 10년 동안 용인에서 서초까지 출퇴근했다.
평균 왕복 2시간 30분. 길이 막히는 금요일 저녁 퇴근 시간에는 운전만 2시간을 넘게 해야 했다.
남편은 한 달이면 일주일만 한국에 있었고, 나는 시어머니와 바통 터치를 하며 두 딸을 길렀다.
회사에서는 실적을 내야 했고, 보고서를 써야 했고, 교육도 받아야 했다.
퇴근하면 아이들을 데리고 컴컴한 놀이터로 나갔다.
못 채운 놀이 시간을 채우려 그네를 밀었다.
그때 나는 늘 같은 말을 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티면.”
그리고 지금, 나는 해외에서 이방인으로 일하며 산다.
분야는 다르지만 여전히 일이 있고, 언어도 다르고, 평가 기준도 다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살고 있다.
빨리 가려고, 숨차게, 차선을 바꾸면서.
용인-서초 고속도로를 벗어났는데도, 나는 또 다른 고속도로 위다.
남편이 한때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은 항상 최선을 다하는데, 그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려고 해.”
나는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화가 났다.
내 상황을 몰라주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하루를 버티는 것만으로도 한계였는데, 그 말은 나를 게으른 사람처럼 느끼게 했다.
그런데 그 말을 이해하는 데 10년이 걸렸다.
남편은 “어디로 가는가”를 물었고, 나는 “어떻게 버티는가”만 생각했다.
우리는 같은 삶을 보면서도 다른 질문을 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방향’을 선택한 게 아니었다. 그저 ‘상황’을 견뎌냈다.
용인-서초도, 지금 이 나라도, 내가 고른 길이라기보다 그냥 그렇게 된 쪽에 가까웠다.
어릴 때는 공부한 만큼 성적이 나왔다. 세상에는 어느 정도 공정한 경쟁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른이 되니 달라졌다. 세상이 주는 성적표는 항상 낙제 같았다.
열심히 했는데도 평가가 오르지 않거나, 버틴 만큼 삶이 나아지지 않는 순간들이 계속됐다.
나는 이유를 몰랐다. 그래서 가장 쉬운 답을 골랐다.
“노력 부족.”
그 말을 내 안에서 반복할수록 이상하게도 마음은 더 좁아졌다.
더 달렸고, 더 바꿨고, 더 조급해졌다.
그렇게 하면 ‘다음’이 올 줄 알았는데, 내게 남은 건 늘 숨찬 오늘뿐이었다.
중년이라는 꼬리표를 꽤 오래 단 지금, 질문이 조금 바뀌었다.
견디는 게 가치 없다고 누가 정했을까.
세상은 도약하는 사람을 칭찬하지만, 대부분의 삶은 견디기로 이뤄져 있다.
누군가는 무너질 하루를 버티고, 누군가는 다른 이의 하루를 떠받친다.
용인-서초 2시간 30분.
컴컴한 놀이터의 그네.
해외에서 맞는 외로운 저녁들.
그 시간들은 낭비가 아니라 버팀목이었다.
누군가의 하루를, 그리고 나 자신을 떠받쳐 온 것.
그런데 차선을 바꿔도 도착이 비슷하다면, 이제는 좀 멈추고 싶다.
멈추면 비로소 내가 무엇을 위해 그렇게 달렸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보일 것 같아서.
한 차선에 그냥 있어 보려고.
조금 천천히 가 보려고.
창밖을 보면서 가 보려고.
견디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숨차게만 견딜 필요는 없다는 걸 이제야 안다.
나는 여전히 일하고, 여전히 아이들의 엄마다.
다만 이번에는 숨을 놓치지 않기로 했다.
속도를 낮춰도 괜찮다고, 오늘의 나에게 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