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아 철학의 주요 개념 해설집:
이 해설집은 우리의 철학적 여정에서 등대와 같았던 주요 그리스어 용어들의 깊은 의미를 밝히기 위해 마련되었다. 모든 단어는 단순한 개념을 넘어, 하나의 세계를 담고 있다. 그 어원과 본래의 뜻을 살피고, 스토아 철학이라는 위대한 지성 속에서 그 의미가 어떻게 피어났는지를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 자신의 내면 지도를 더 선명하게 그릴 수 있을 것이다.
◈ 디비나티오 (Divinatio)
어원과 본래의 뜻: ‘신적인(divinus)’이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했으며, 신의 뜻을 알거나 미래를 예언하는 기술, 즉 ‘점술’을 의미한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신적 섭리(프로노이아)와 운명 (헤이마르메네)이 존재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미래를 예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들은 꿈, 별자리, 새의 비행, 제물의 내장 등을 통해 신이 인간에게 자신의 뜻을 알려주는 신호들을 읽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우주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심파테이아의 원리에 근거한 것으로, 디비나티오를 자연의 일부로 보고 긍정했다는 점에서 다른 학파들과 구별된다.
◈ 로고스 (Logos, Λόγος)
어원과 본래의 뜻: ‘로고스’는 고대 그리스어 동사 ‘레게인(legein)’, 즉 ‘말하다’, ‘모으다’, ‘계산하다’에서 유래한 명사이다. 이 단어는 ‘말’, ‘이성’, ‘논리’, ‘원리’, ‘비율’, ‘정의’ 등 서양 철학사에서 가장 다채로운 의미를 품게 된 핵심적인 용어이다. 그것은 흩어져 있는 것들을 하나로 모아 질서를 부여하는 힘을 근본적으로 의미한다.
스토아 철학에서 로고스는 우주 그 자체를 관통하는 신성한 이성이자 법칙이다. 그것은 저 하늘 너머에 존재하는 인격신이 아니라, 자연 (physis)과 운명 (heimarmene), 그리고 신 (Zeus)과 동일시되는 내재적 원리이다. 로고스는 만물을 창조하고, 모든 사건을 필연적인 인과관계의 사슬로 엮으며, 우주 전체를 하나의 거대하고 조화로운 유기체로 만드는 힘이다. 인간의 이성은 바로 이 우주적 로고스의 한 조각, 즉 ‘씨앗과 같은 로고스 (logos spermatikos)’이다. 따라서 인간이 덕스러운 삶을 산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 이성을 우주의 로고스와 완벽하게 조율하여,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며 사는 것을 의미한다.
◈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어원과 본래의 뜻: ‘기억하다(meminisse)’의 명령형인 ‘메멘토(memento)’와 ‘죽다(mori)’의 소유격인 ‘모리(mori)’가 결합된 라틴어 경구로, “네가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또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이는 단순한 허무주의적 경고가 아니라, 삶을 가장 의미 있게 살기 위한 강력한 실천적 도구이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죽음이 언제든 닥쳐올 수 있는 필연적인 사실임을 끊임없이 상기함으로써, 불필요한 것들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오직 현재의 순간에 집중하며 덕(아레테)을 실천하는 데 전념하고자 했다. 죽음은 삶의 모든 사소한 것들을 걸러내고, 진정으로 중요한 가치를 드러내는 가장 정직한 거울이다.
◈ 순카타테시스 (Sunkatathesis, συγκατάθεσις)
어원과 본래의 뜻: ‘함께(sun)’와 ‘아래에 두다(katatithenai)’가 결합된 말로, 문자 그대로는 ‘함께 내려놓음’, 즉 ‘동의함’, ‘승인함’을 의미한다.
이는 우리의 마음 (헤게모니콘)이 외부에서 들어온 인상 (판타시아)을 참된 것으로 받아들이는 정신적 행위를 가리킨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인상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지지만, 그 인상에 ‘동의’할지 여부는 전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고 보았다. 현자는 확실하게 파악 가능한 인상 (kataleptic phantasia)에만 동의하고, 불확실한 인상에 대해서는 판단을 보류 (에포케)함으로써 잘못된 믿음(doxa)과 격정(파토스)에서 벗어난다. 이 ‘동의’의 순간이야말로 모든 도덕적 책임이 발생하는 지점이다.
◈ 심파테이아 (Sympatheia, συμπάθεια)
어원과 본래의 뜻: ‘함께’를 의미하는 ‘쉰(syn)’과 ‘감정’ 또는 ‘고통’을 의미하는 ‘파토스(pathos)’가 결합된 말로, ‘함께 느낌’, 즉 ‘공감’을 의미한다.
우주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처럼 서로 연결되어 상호작용한다는 우주론적 원리이다. 우주의 한 부분에서 일어난 일은 다른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친다. 밤하늘의 달이 밀물과 썰물에 영향을 주듯, 우주의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끈(프네우마)으로 연결되어 서로 ‘공감’한다. 이 원리는 모든 인간이 형제이며 서로 도와야 한다는 스토아의 윤리적 가르침에 우주론적 근거를 제공한다.
◈ 아디아포라 (Adiaphora, ἀδιάφορα)
어원과 본래의 뜻: ‘아디아포라’는 ‘없음’을 의미하는 ‘아(a-)’와 ‘다르다’를 의미하는 ‘디아포라(diaphora)’가 결합된 말로, 문자 그대로 ‘차이가 없는 것들’을 의미한다.
이는 스토아 윤리학의 가장 독창적인 개념 중 하나이다. 스토아에 따르면, 유일하게 ‘좋은 것’은 덕(德)이고, 유일하게 ‘나쁜 것’은 악덕(惡德)이다. 이 둘을 제외한 모든 것, 즉 부와 가난, 건강과 질병, 명예와 불명예, 심지어 삶과 죽음까지도 그 자체로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무관한 것들’, 즉 아디아포라에 속한다. 이것들은 우리의 행복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못하며, 단지 덕을 실천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재료’에 불과하다. 다만, 이 중 건강이나 부처럼 자연의 순리에 더 부합하는 것을 ‘선호할 만한 것’으로, 질병이나 가난처럼 그렇지 않은 것을 ‘기피할 만한 것’으로 구분하여 현실적인 선택의 기준을 제시한다.
◈ 아레테 (Arete, ἀρετή)
어원과 본래의 뜻: ‘아레테’는 흔히 ‘덕(virtue)’으로 번역되지만, 그 본래 의미는 훨씬 광범위하여 모든 종류의 ‘탁월함’ 또는 ‘우수함’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운동선수의 탁월함, 장인의 탁월함, 지도자의 탁월함 등 모든 대상이 자신의 고유한 기능을 최고로 발휘하는 상태를 아레테라고 불렀다.
스토아 철학에서 아레테는 인간에게 유일하게 ‘좋은 것’으로 규정되는 최고의 가치이다. 그것은 인간 고유의 기능인 ‘이성’이 완벽하게 발현된 상태, 즉 ‘도덕적 탁월함’을 의미한다. 이 아레테는 지혜, 정의, 용기, 절제라는 네 가지 핵심 덕목으로 구성되며, 이것들을 완전히 갖춘 상태가 바로 현자의 상태이다. 진정한 행복(에우다이모니아)은 오직 아레테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 아우타르케이아 (Autarkeia, αὐτάρκεια)
어원과 본래의 뜻: ‘아우타르케이아’는 ‘자기 자신’을 의미하는 ‘아우토스(autos)’와 ‘충분하다’를 의미하는 ‘아르케인(arkein)’이 결합된 말로, ‘스스로 충분함’, 즉 ‘자기 충족성’을 의미한다.
스토아 철학에서의 의미: 이는 스토아 현자가 도달한 이상적인 상태를 설명하는 중요한 개념이다. 현자의 행복(에우다이모니아)은 오직 그의 덕(arete)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그 어떤 외부적인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부, 명예, 건강, 심지어 친구까지도 그의 행복을 위한 필수 조건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내면 왕국을 다스리는 완벽하고 흔들림 없는 군주로서, 외부 세계의 변덕에 조금도 의존하지 않는 완전한 정신적 자립을 성취한 존재이다. 이것이 바로 현자가 가진 궁극적인 자유의 본질이다.
◈ 아파테이아 (Apatheia, ἀπάθεια)
어원과 본래의 뜻: ‘아파테이아’는 ‘없음’을 의미하는 접두사 ‘아(a-)’와 ‘감정’ 또는 ‘고통’을 의미하는 ‘파토스(pathos)’가 결합된 단어이다. 따라서 그 문자적 의미는 ‘감정이 없는 상태’ 또는 ‘고통이 없는 상태’이다.
스토아 철학에서 아파테이아는 현대적 의미의 ‘무관심(apathy)’이나 감정이 메마른 비인간적인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분노, 두려움, 욕망, 슬픔과 같이 이성을 흐리게 만드는 파괴적이고 비이성적인 격정(파토스)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 맑고 흔들림 없는 평정심의 상태를 가리키는 전문용어이다. 아파테이아를 성취한 현자는 기쁨이나 사랑과 같은 긍정적이고 이성적인 감정(eupatheiai)은 온전히 느끼되, 외부 사건에 의해 영혼이 휘둘리는 일은 결코 없다. 그것은 모든 것을 우주의 이성적인 질서(로고스)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가장 높은 차원의 정신적 자유이다.
◈ 에우다이모니아 (Eudaimonia, εὐδαιμονία)
어원과 본래의 뜻: ‘에우다이모니아’는 ‘좋은’ 또는 ‘선한’을 의미하는 ‘에우(eu)’와 ‘영혼’ 또는 ‘정령’을 의미하는 ‘다이몬(daimon)’이 결합된 단어이다. 이는 단순히 주관적인 쾌락이나 기쁨(pleasure)이 아니라, ‘좋은 영혼의 상태’, 즉 객관적으로 번성하고 잘 기능하는 최상의 삶의 상태를 의미한다.
스토아 철학에서 에우다이모니아는 인간 삶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그러나 이는 부나 명예와 같은 외부적인 조건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진정한 행복, 즉 에우다이모니아는 오직 덕(arete)에 따라, 즉 자신의 이성을 우주의 이성(로고스)과 일치시키며 자연에 따라 살아갈 때에만 성취될 수 있다. 그것은 외부 환경에 관계없이 내면의 덕성을 통해 완전한 평정심(아파테이아)과 자기 충족성(아우타르케이아)에 도달한 상태, 그 자체이다.
◈ 에포케 (Epoché, ἐποχή)
어원과 본래의 뜻: ‘에포케’는 ‘위에(epi)’와 ‘가지다(echein)’가 결합된 동사 ‘에페케인(epechein)’에서 유래했으며, 그 본래 의미는 ‘멈추다’, ‘저지하다’, ‘중단하다’이다. 천문학에서는 행성이 하늘에서 잠시 멈춘 것처럼 보이는 지점을 가리키기도 했다.
고대 철학에서의 의미:
이 용어는 주로 고대 회의주의(Skepticism), 특히 피론주의(Pyrrhonism)의 핵심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회의주의자들에게 에포케는 ‘판단 중지’를 의미한다. 그들은 어떤 명제에 대해서도 참과 거짓을 판단할 수 있는 확실한 기준이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A가 참이라는 주장과 A가 거짓이라는 주장이 동등하게 설득력이 있을 때(isostheneia), 우리는 그 어떤 쪽에도 동의하지 않고 판단을 보류해야 한다. 이 에포케의 실천을 통해, 우리는 헛된 독단적 믿음에서 비롯되는 모든 번뇌를 멈추고 궁극적인 마음의 평화, 즉 ‘아타락시아(ataraxia)’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스토아 철학과 회의주의의 관계:
스토아 철학은 회의주의의 강력한 비판 대상이었다. 스토아 철학이 ‘카탈렙시스(katalepsis)’, 즉 확실하게 파악 가능한 인상을 통해 지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반면, 회의주의자들은 바로 그 가능성을 공격하며 에포케를 주장했다. 그러나 스토아 철학 내에서도 에포케의 개념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스토아의 훈련은 외부에서 들어온 인상(판타시아)에 대해 성급하게 ‘동의’하지 않고, 그것이 이성(로고스)에 부합하는지를 신중하게 검토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이 ‘동의를 보류하는’ 순간은 회의주의의 에포케와 구조적으로 매우 유사하다. 다만 그 목적이 다르다. 회의주의자에게 에포케는 그 자체가 마음의 평화로 이어지는 최종 목적지인 반면, 스토아 철학자에게 ‘판단의 보류’는 잘못된 격정(파토스)에 빠지지 않고 올바른 덕(아레테)을 향한 판단을 내리기 위한 필수적인 중간 단계이다.
◈ 에프 헤민 / 우크 에프 헤민 (Eph' hēmin / Ouk eph' hēmin, ἐφ' ἡμῖν / οὐκ ἐφ' ἡμῖν) - 통제의 이분법 (Dichotomy of Control)
이는 에픽테토스가 강조한 스토아 철학의 가장 실천적인 원리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 (타 에프 헤민, τὰ ἐφ' ἡμῖν)과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 (타 우크 에프 헤민, τὰ οὐκ ἐφ' ἡμῖν) 두 가지로 나뉜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 자신의 판단, 욕구, 의지와 같은 내면의 활동뿐이다. 반면 우리의 신체, 재산, 평판, 그리고 타인의 행동과 같은 외부적인 것들은 우리의 통제 밖에 있다. 진정한 평화는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오직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내면에만 집중할 때 얻을 수 있다.
◈ 에피스테메 (Epistēmē, ἐπιστήμη)
어원과 본래의 뜻: ‘위에(epi)’와 ‘서다(histēmi)’가 결합된 말로, ‘굳건히 서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흔들릴 수 있는 단순한 의견(doxa)과 대비되는, 확고하고 체계적인 ‘지식’ 또는 ‘학문’을 가리킨다.
단순한 앎을 넘어, 이성으로 결코 반박될 수 없는 확실하고 안정된 인식을 의미한다. 오직 현자만이 진정한 의미의 에피스테메를 소유할 수 있다. 현자의 모든 판단은 진리이며, 그의 영혼은 덕에 대한 완전한 지식으로 가득 차 있다. 이는 단편적인 정보의 집합이 아니라, 우주(로고스)의 질서에 대한 통일되고 체계적인 이해이다.
◈ 오이케이오시스 (Oikeiōsis, οἰκείωσις)
어원과 본래의 뜻: ‘집’ 또는 ‘가족’을 의미하는 ‘오이코스(oikos)’에서 유래했으며, 어떤 것을 ‘자신의 것으로’, ‘친숙한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의미한다. ‘자기화’, ‘친화’ 등으로 번역된다.
모든 생명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기 자신과 자신의 신체를 ‘자신의 것’으로 인식하고 보존하려는 본능적인 성향을 말한다. 이 오이케이오시스는 점차 확장되어, 자신의 자녀와 가족, 동료 시민,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인류 전체를 ‘나의 것’으로 여기는 마음으로 발전한다. 이는 모든 인간이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에 속해있다는 스토아적 세계시민주의(cosmopolitanism)의 심리학적 기초가 된다.
◈ 유파테이아이 (Eupatheiai, εὐπάθειαι)
어원과 본래의 뜻: ‘좋은’을 의미하는 ‘에우(eu)’와 ‘감정’을 의미하는 ‘파토스(pathos)’의 복수형이 결합된 말로, ‘좋은 감정들’을 의미한다.
이는 비이성적인 격정인 ‘파토스’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오직 현자만이 경험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건강한 감정을 가리킨다. 스토아 철학은 모든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판단에서 비롯된 병적인 감정(파토스)을 올바른 판단에 기반한 건강한 감정(유파테이아이)으로 대체하고자 했다. 주요 유파테이아이에는 비이성적인 욕망(epithumia) 대신에 선(덕)을 향한 합리적인 ‘소망(boulēsis)’, 비이성적인 두려움(phobos) 대신에 악(악덕)을 피하려는 합리적인 ‘조심성(eulabeia)’, 그리고 덧없는 쾌락(hēdonē) 대신에 덕의 실현에서 오는 깊은 ‘환희(khara, 카라)’가 있다.
◈ 코스모폴리타니즘 (Cosmopolitanism)
어원과 본래의 뜻: ‘코스모폴리타니즘’은 ‘우주(kosmos)’와 ‘시민(politēs)’이라는 두 그리스어 단어의 합성어이다. 따라서 그 문자적 의미는 ‘우주의 시민’, 즉 ‘세계시민주의’이다. 이 개념을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견유학파의 디오게네스는 “나는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에 “나는 코스모폴리테스(kosmopolitēs)다”라고 답하며, 자신을 특정한 도시국가(polis)의 시민으로 규정하기를 거부했다.
스토아 철학은 이 급진적인 사상을 자신들의 철학 체계의 핵심 원리로 발전시켰다. 스토아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인종, 국적, 사회적 지위에 관계없이 신성한 이성(로고스)의 한 조각을 공유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같은 아버지(제우스/로고스)를 둔 형제자매이며, 따라서 진정한 우리의 국가는 아테네나 로마가 아니라 우주 전체, 즉 ‘코스모폴리스(kosmopolis)’이다. 이 거대한 우주 도시 안에서 모든 인간은 동등한 시민으로서 서로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진다. 이 사상은 자기 자신에서 시작하여 가족, 친구, 동료 시민, 그리고 최종적으로 인류 전체로 동심원을 넓혀가며 모든 존재를 ‘나의 것’으로 여기는 오이케이오시스(oikeiōsis)의 가르침과 결합하여, 인류애에 대한 가장 강력한 철학적 기반을 제공했다.
◈ 타락시아 (Taraxē, ταραχή) / 아타락시아 (Ataraxia, ἀταραξία)
어원과 본래의 뜻: ‘타락시아’는 ‘혼란시키다’, ‘휘젓다’라는 동사 ‘타랏소(tarassō)’에서 유래한 말로, ‘혼란’, ‘동요’, ‘소요’를 의미한다. 이는 영혼이 평온을 잃고 어지럽게 흔들리는 모든 종류의 내적 불안 상태를 가리킨다.
반대로 ‘아타락시아’는 ‘없음’을 의미하는 접두사 ‘아(a-)’가 ‘타락시아’에 결합된 단어로, 문자 그대로 ‘혼란이 없는 상태’, 즉 ‘부동심(不動心)’, ‘평정’을 의미한다.
‘아타락시아’는 스토아 철학보다는 주로 에피쿠로스학파와 피론주의(회의주의)의 최종 목표로 여겨졌다. 이들에게 아타락시아는 모든 종류의 정신적 고통과 불안이 사라진,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음의 상태를 의미한다.
에피쿠로스학파에게 아타락시아는, 신에 대한 공포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두 가지 큰 불안에서 벗어날 때 얻어지는 쾌락(hēdonē)의 한 형태이다. 그들은 이 정신적 평온함과 육체적 고통이 없는 상태(aponia)를 합쳐 최고의 행복으로 보았다.
피론주의자(회의주의자)에게 아타락시아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독단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는 ‘판단 중지(에포케)’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세상의 본질에 대해 아무것도 확실히 알 수 없음을 깨닫고 모든 주장을 멈출 때, 영혼은 더 이상 논쟁과 번뇌로 시달리지 않고 깊은 평온에 이르게 된다.
스토아 철학에서 아타락시아는 최종 목표는 아니지만, 현자가 ‘아파테이아(apatheia)’를 성취할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결과로 여겨진다. 이성(로고스)에 따라 살며 비이성적인 격정(파토스)을 모두 제거한 현자는, 당연히 정신적인 혼란(타락시아)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토아의 목표는 단순히 동요하지 않는 소극적인 평정이 아니라, 덕(아레테)을 적극적으로 실현하는 역동적인 삶의 상태에 있다.
◈ 파토스 (Pathos, πάθος)
어원과 본래의 뜻: ‘파토스’는 ‘겪다’, ‘고통받다’라는 의미의 동사 ‘파스케인(paschein)’에서 유래했으며, 외부로부터 겪게 되는 모든 수동적인 경험, 특히 ‘감정’, ‘격정’, ‘고통’을 의미한다.
스토아 철학에서 파토스는 단순한 감정을 의미하지 않고, 이성의 올바른 판단을 벗어난 ‘병적인 영혼의 상태’ 또는 ‘비이성적인 격정’을 의미한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외부의 사건 자체는 우리를 고통스럽게 할 수 없으며, 그 사건에 대해 ‘이것은 나쁘다’라고 내리는 우리의 그릇된 판단이 파토스를 낳는다고 보았다. 분노, 두려움, 욕망과 같은 주요 파토스는 모두 이러한 잘못된 판단의 결과이며, 철학적 훈련의 목표는 바로 이 파토스를 이성으로 완전히 제거하여 아파테이아의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 판타시아 (Phantasia, φαντασία)
어원과 본래의 뜻: ‘보여주다’, ‘나타나다’라는 동사 ‘파이노(phainō)’에서 유래했으며, 마음에 나타나는 ‘인상’, ‘표상’, ‘심상’을 의미한다.
감각이나 생각을 통해 우리의 마음(헤게모니콘)에 들어오는 모든 종류의 정보를 의미한다. 판타시아 자체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중립적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인상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판단하고 동의하는가이다. 예를 들어, ‘저 케이크는 달콤해 보인다’는 것은 인상이고, ‘따라서 저것은 좋은 것이다’라고 판단하는 것은 우리의 동의이다. 스토아 철학의 핵심 훈련은 이 인상과 판단 사이의 거리를 확보하여, 성급하고 잘못된 판단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 퓌르 테크니콘 (Pyr Technikon, πῦρ τεχνικόν)
어원과 본래의 뜻: 문자 그대로 ‘기술적인 불’ 또는 ‘창조하는 불’을 의미한다. 이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일반적인 불과는 구별되는, 생명을 낳고 질서를 부여하는 창조적인 원리로서의 불을 가리킨다.
이는 우주를 창조하고 유지하는 근원적인 힘으로서의 로고스, 즉 신을 지칭하는 또 다른 이름이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우주가 주기적으로 거대한 불(ekpyrosis)에 의해 정화되고, 이 창조하는 불로부터 다시 새로운 우주가 탄생한다고 믿었다. 퓌르 테크니콘은 만물의 씨앗(logos spermatikos)을 품고 있는, 살아있고 이성적인 불이다.
◈ 프네우마 (Pneuma, πνεῦμα)
어원과 본래의 뜻: ‘프네우마’는 ‘숨쉬다’라는 동사 ‘프네오(pneo)’에서 유래했으며, ‘숨’, ‘바람’, ‘영혼’, ‘정신’을 의미한다. 그것은 생명을 부여하는 역동적인 힘의 개념을 담고 있다.
스토아 철학에서 프네우마는 우주에 편재하는 ‘신성한 숨결’이자 로고스의 물질적 담지자이다. 그것은 공기와 불의 혼합물로 여겨지며, 만물에 스며들어 사물에 형태와 긴장(tonos)을 부여하고, 생명체에게는 생명력(physis)과 영혼(psyche)을 부여한다. 인간의 영혼, 특히 이성을 관장하는 헤게모니콘은 가장 순수하고 정제된 형태의 프네우마로 이루어져 있다.
◈프레메디타티오 말로룸 (Praemeditatio Malorum)
어원과 본래의 뜻: ‘미리(prae)’와 ‘명상하다(meditārī)’가 결합된 ‘프레메디타티오(praemeditatio)’와 ‘악한 것들(malus)’의 복수 소유격인 ‘말로룸(malorum)’이 합쳐진 라틴어 구절이다. 문자 그대로 “악한 것들을 미리 명상하기”, 즉 ‘불운의 예행연습’을 의미한다.
이는 앞으로 닥칠 수 있는 최악의 상황들, 예를 들어 재산의 상실, 질병, 추방, 사랑하는 이의 죽음 등을 생생하게 상상하는 정신적 훈련이다. 이 훈련의 목적은 비관주의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역경이 실제로 닥쳤을 때 그것에 압도되지 않도록 정신적인 면역력을 기르는 데 있다. 또한, 현재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결코 영원하지 않음을 깨닫고 그것들에 대한 집착을 줄이며, 지금 이 순간의 가치를 더욱 소중히 여기게 하는 효과가 있다.
◈ 프로노이아 (Pronoia, πρόνοια)
어원과 본래의 뜻: ‘미리(pro)’와 ‘생각하다(noein)’가 결합된 말로, ‘미리 생각함’, 즉 ‘예지’, ‘예견’, ‘섭리’를 의미한다.
세상을 다스리는 신(로고스)의 이성적인 계획과 보살핌, 즉 ‘신적 섭리’를 의미한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전체의 조화를 위해 신(로고스)이 미리 계획하고 안배한 결과라고 믿었다. 따라서 인간에게 닥치는 모든 시련조차도 이 거대한 섭리의 관점에서는 궁극적으로 선하고 의미 있는 것이다.
◈ 플레로마 (Pleroma, πλήρωμα)
어원과 본래의 뜻: ‘채우다’라는 동사 ‘플레로오(plēroō)’에서 유래했으며, ‘가득 참’, ‘충만함’을 의미한다.
스토아 철학의 용어는 아니지만, 비교를 위해 중요한 개념이다. 영지주의에서 플레로마는 빛과 신성으로 가득 찬 완전한 영적 세계, 즉 ‘신적 충만’의 영역을 의미한다. 이곳은 지고의 신과 그의 발출물인 여러 아이온(Aeons)들이 존재하는 우리의 본래 고향이다. 반면 우리가 사는 이 물질세계는 이 플레로마에서 추락하여 생긴 결핍과 어둠의 공간이다. 영지주의의 목표는 이 물질 감옥을 탈출하여 다시 플레로마의 충만함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 피스티스 (Pistis, πίστις)
어원과 본래의 뜻:
‘피스티스’는 ‘설득하다(peithō)’라는 동사에서 유래했으며, ‘믿음’, ‘신뢰’, ‘확신’, ‘성실’ 등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고대 그리스에서 이 단어는 합리적 근거에 기반한 ‘확신’이나 상업적 거래에서의 ‘신용’처럼, 관계와 증거에 기반한 신뢰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았다.
스토아 철학의 핵심 용어는 아니지만, 그들의 인식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스토아 철학은 ‘맹목적인 믿음’을 경계했다. 그들에게 진정한 지식(에피스테메)은 명확하고 확실한 인상(카탈렙시스)에 대한 이성적인 ‘동의(순카타테시스)’를 통해서만 얻어진다. 이런 맥락에서 ‘피스티스’는 독단적인 믿음이 아니라, 이성적인 검토를 거친 후의 ‘확고한 확신’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스토아 현자는 섭리(프로노이아)와 우주의 질서(로고스)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신뢰를 가지고 있지만, 이는 맹신이 아니라 우주의 합리성에 대한 철학적 통찰에 기반한 것이다.
영지주의에서 ‘피스티스’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종종 더 높은 단계의 앎인 ‘그노시스(gnosis)’와 대립되거나 그 하위 단계로 여겨진다. 많은 영지주의 체계에서, ‘피스티스’는 일반적인 신자들이 가지는 초보적인 ‘신앙’을 의미한다. 이것은 영적인 진리에 대한 직접적인 체험이나 이해(그노시스)가 아니라, 비유나 가르침을 통해 진리를 받아들이는 단계이다. 유명한 영지주의 문헌인 『피스티스 소피아』에서는 ‘피스티스 소피아(믿음-지혜)’라는 이름의 여성 아이온(Aeon)이 자신의 무지로 인해 빛의 세계(플레로마)에서 추락하고, 회개를 통해 구원받는 과정이 그려진다. 이는 단순한 믿음(피스티스)이 지혜(소피아)와 결합하고, 궁극적으로는 직접적인 앎(그노시스)으로 나아가야 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헤게모니콘 (Hēgemonikon, ἡγεμονικόν)
어원과 본래의 뜻: ‘지도자’ 또는 ‘통치자’를 의미하는 ‘헤게몬(hēgemōn)’에서 유래했으며, ‘통치하는 부분’이라는 뜻이다.
인간 영혼의 중심부이자 이성을 관장하는 ‘지휘 본부’를 가리킨다. 심장에 위치한다고 여겨졌던 헤게모니콘은 외부 세계로부터 오는 모든 인상(판타시아)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대해 동의(sunkatathesis)할지 말지를 판단하며, 행동을 위한 충동(hormē)을 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우리의 모든 도덕적 책임은 바로 이 헤게모니콘의 판단 능력에 달려 있다.
◈ 헤이마르메네 (Heimarmenē, εἱμαρμένη)
어원과 본래의 뜻: ‘자신의 몫을 받다(meiresthai)’라는 동사에서 유래했으며, 각자에게 할당된 ‘몫’, 즉 ‘운명’을 의미한다.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엮는 필연적인 인과관계의 사슬을 의미한다. 이는 신적 섭리(프로노이아)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개념으로, 프로노이아가 우주의 목적론적 측면을 강조한다면, 헤이마르메네는 우주의 결정론적이고 물리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현자는 이 운명의 사슬을 거스르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자유로워진다.
네 가지 기본 덕 (The Four Cardinal Virtues)
스토아 철학에서 모든 덕(아레테)의 근원이 되는 네 가지 핵심적인 덕목들이다. 이들은 서로 분리될 수 없으며, 하나를 가진 자는 모든 것을 가진 것으로 여겨진다.
◈ 소피아 (Sophia, σοφία) / 프로네시스 (Phronēsis, φρόνησις) - 지혜
무엇이 좋고, 나쁘고, 그 어느 쪽도 아닌지를 아는 지식(에피스테메)이다. 이는 모든 다른 덕의 기초가 되며,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능력의 근원이다.
◈ 디카이오쉬네 (Dikaiosynē, δικαιοσύνη) - 정의
각자에게 마땅히 받아야 할 몫을 나누어 주는 기술이다. 이는 다른 사람과 공동체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올바르게 이행하는 것을 포함하며, 경건, 친절, 공정함의 덕목을 아우른다.
◈ 안드레이아 (Andreia, ἀνδρεία) - 용기
무엇을 견뎌내고, 무엇을 맞서 싸우고,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를 아는 지식이다. 이는 단순히 전쟁터에서의 용맹함만이 아니라, 고통과 역경을 인내하고 불의에 맞서는 모든 정신적 강인함을 포함한다.
◈소프로쉬네 (Sōphrosynē, σωφροσύνη) - 절제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피하고, 무엇에 무관심해야 하는지를 아는 지식이다. 이는 욕망과 쾌락을 이성으로 통제하여, 영혼의 조화와 질서를 유지하는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