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철학자의 죽음 - 이성으로 마주한 소멸

by 이호창

제13장: 철학자의 죽음 - 이성으로 마주한 소멸


제1절: 피타고라스의 윤회, 정화를 통한 영혼의 귀향



신앙이 은총을 통해 구원의 길을 약속했다면, 철학은 인간 스스로의 이성을 통해 죽음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 공포를 극복하려는 또 다른 위대한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이 여정의 서막을 연 인물 중 가장 중요하고도 신비로운 사상가가 바로 피타고라스 (Pythagoras)입니다. 그는 단순히 수학자로서만 알려져 있지만, 고대 그리스에서 그는 영혼의 불멸과 윤회를 가르친 위대한 종교적 스승이자 철학 공동체의 창시자였습니다. 그의 사상은, 동양의 윤회 사상과 그리스의 합리주의가 만나 탄생한, 정화를 통해 신성한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영혼의 귀향 서사시라 할 수 있습니다.


피타고라스 철학의 출발점은, 이 세계의 근본 원리 (아르케, archē)가 흙이나 물과 같은 물질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고 영원하며 완전한 수 (數, number)라는 혁명적인 통찰이었습니다. 그가 보기에, 우주는 무질서한 혼돈이 아니라, 수학적인 원리와 조화로운 비율에 의해 지배되는 질서정연한 코스모스 (Kosmos, 질서)였습니다. 행성들은 일정한 수학적 간격에 따라 움직이며 귀에 들리지 않는 천상의 음악, 즉 ‘천구 (天球)의 조화 (harmony of the spheres)’를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주가 하나의 거대하고 조화로운 악기라면, 그 안에 살고 있는 인간의 영혼 또한 본래 이 우주적 조화의 일부여야만 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피타고라스의 영혼론이 시작됩니다. 그는 인간의 영혼이 육체와 함께 소멸하는 유한한 존재가 아니라, 신성하고 불멸하는 실체라고 믿었습니다. 그의 가르침에 따르면, 모든 개별적인 영혼은 본래 하나의 거대한 ‘우주 영혼 (Anima Mundi)’에서 비롯된 신성한 불꽃의 파편과도 같습니다. 이 우주 영혼은 모든 존재의 근원이자 신성 그 자체였으므로, 우리의 영혼 또한 그 본질에 있어서는 신과 다르지 않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태초의 잘못으로 인해, 이 신성한 영혼들은 자신들의 고향인 천상의 세계에서 추락하여, 불완전하고 고통스러운 물질세계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영혼의 감옥이 된 것이 바로 우리의 육체 (soma)였습니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육체는 영혼의 무덤이다 (soma sēma)”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이는 육체가 영혼을 가두고 더럽히는 어두운 감옥에 불과하다는 그들의 관점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영혼의 진정한 본성은 신성하지만, 육체라는 무덤에 갇히는 순간, 온갖 정욕과 비합리적인 감정에 오염되어 자신의 신성한 기원을 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죽음은 이 육체라는 감옥에서 영혼을 잠시 해방시켜주지만, 오염된 영혼은 곧바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죄와 정욕의 무게에 짓눌린 영혼은 다시 지상으로 끌려 내려와, 자신이 살아생전 지었던 행위의 결과에 따라 또 다른 육체 속으로 들어가야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혼의 윤회 (metempsychosis, 메템프시코시스)입니다. 그 새로운 육체는 다른 인간일 수도 있고, 짐승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식물일 수도 있었습니다. 이 끝없는 환생의 수레바퀴는, 힌두교나 불교에서처럼 카르마를 통해 성장하는 기회라기보다는, 영혼이 자신의 죄를 정화할 때까지 계속되는 고통스럽고 치욕적인 형벌의 과정에 더 가까웠습니다.


그렇다면 이 고통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무엇이겠습니까? 영혼이 육체에 갇힌 원인이 ‘오염’에 있다면, 그 해답 또한 ‘정화(katharsis, 카타르시스)’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피타고라스와 그의 제자들은 바로 이 영혼의 정화를 삶의 유일하고도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엄격하고 체계적인 수행 공동체를 이루어 살았습니다. 그들이 추구했던 정화의 길은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금욕적인 생활과 의례적 정결입니다. 그들은 영혼을 더럽히는 육체적 욕망을 최소화하기 위해 엄격한 채식을 실천했고, 특히 콩은 영혼의 환생과 관련이 있다고 믿어 금기시했습니다. 또한, 공동체에 처음 입문한 자는 수년간의 침묵 수행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이러한 금욕과 침묵은 육체의 소란스러움을 잠재우고, 영혼이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는 중요한 과정이었습니다.


둘째는 피타고라스 사상의 가장 독특한 부분인, 수학과 음악을 통한 영혼의 정화입니다. 피타고라스에게 수학은 단순히 계산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의 세계를 탐구하는 신성한 학문이었습니다. 변화무쌍하고 불완전한 물질세계와 달리, 수와 기하학의 세계는 완벽하고 질서정연하며 조화롭습니다. 따라서 영혼이 이러한 수학적 진리를 관조하고 명상할 때, 영혼은 잠시나마 육체의 감옥을 벗어나 자신의 본래 고향인 신성하고 조화로운 세계를 기억해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음악의 화음 (harmony)이 단순한 음의 배열이 아니라 정확한 수적 비율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발견한 그는, 음악을 통해 영혼의 비뚤어진 부분을 바로잡고 우주의 조화와 다시 공명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에게 수학과 음악은, 영혼을 정화하고 치유하는 가장 강력한 영적인 약이었던 셈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수행은 철학적인 삶, 즉 관조하는 삶 (theōria, 테오리아)으로 귀결됩니다. 세속적인 부와 명예를 추구하는 삶에서 벗어나, 오직 진리를 관조하고 우주의 영원한 질서를 사유하는 삶을 살아갈 때, 영혼은 비로소 물질세계의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수많은 생애에 걸쳐 엄격한 정화의 과정을 거친 영혼은, 마침내 모든 오염의 흔적을 씻어내고 태초의 순수한 상태를 회복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육체의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그 영혼은 더 이상 윤회의 수레바퀴에 묶이지 않습니다. 마침내 자유로워진 영혼은 가벼이 하늘로 올라가, 자신이 비롯되었던 거대한 우주 영혼의 품으로 돌아가 영원한 합일을 이룹니다. 이것이야말로 기나긴 유배 생활을 끝내고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가는, 영혼의 장엄한 귀향 (homecoming)입니다.


결국 피타고라스가 제시한 길은,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기 위한 이성적이고 체계적인 구원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의 가르침 속에서 구원은 신의 은총을 통해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라, 영혼 스스로가 철저한 자기 수양과 지적인 탐구를 통해 쟁취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죽음을 끝이 아닌, 정화되지 못한 영혼의 새로운 감옥살이의 시작으로 보았으며, 동시에 정화된 영혼에게는 영원한 고향으로의 귀환을 약속했습니다. 이처럼 피타고라스의 사상은, 죽음이라는 불가해한 사건에 수학적인 질서와 윤리적인 목적을 부여하려 했던, 서양 철학사의 가장 오래되고도 영향력 있는 시도 중 하나라 하겠습니다.








제2절: 소크라테스의 독배, "철학은 죽음을 연습하는 것"



고대 아테네의 한복판에서, 맨발에 누더기 옷을 걸치고 거리를 활보하며 사람들에게 끈질기게 질문을 던졌던 괴팍한 노인 소크라테스. 그는 스스로 책 한 권 남기지 않았지만, 그의 제자 플라톤 (Plato)의 대화록을 통해 서양 철학의 영원한 스승으로 남아있습니다. 그가 아테네 시민들에게 던졌던 질문들은 단순히 지적인 유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너 자신을 알라"는 델포이 신전의 경구를 삶의 철학으로 삼아, 인간의 영혼과 도덕적 삶의 본질을 캐묻는 치열한 자기 성찰의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삶을 관통했던 이 철학적 탐구는, 결국 그를 죽음의 문턱으로 이끌었고, 그는 그 죽음의 순간조차도 자신의 철학을 완성하는 최고의 실천으로 삼았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독배는 단순한 한 철학자의 비극적인 종말이 아니라, 이성으로 죽음을 직시하고 그 의미를 탐구하며, 영혼의 불멸성을 증명하려 했던 서양 철학사의 가장 상징적인 순간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영혼 (psychē)에 대한 깊은 탐구에서 출발합니다. 그에게 영혼은 단순히 육체의 기능을 수행하는 생명의 원리가 아니었습니다. 영혼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본질이자, 진리와 지식을 추구하며 도덕적 선택을 하는 이성적인 부분이었으며, 육체가 썩어 없어진 후에도 영원히 존재하는 불멸의 실체였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영혼을 돌보라 (care for the soul)"는 것을 삶의 최고의 명령으로 보았습니다. 부와 명예, 육체의 쾌락은 일시적이고 하찮은 것이며,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은 영혼의 순수함과 선함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행복과 불행, 선과 악의 최종적인 책임은 육체가 아닌 영혼에 있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올바르게 관리되고 정화될 때 비로소 인간은 진정한 행복과 도덕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아테네 사회는 점차 영혼의 가치보다는 육체적 쾌락, 물질적 부, 정치적 명예를 숭상하는 경향이 짙어졌습니다. 특히 소피스트 (Sophist)들은 수사학과 궤변을 통해 진리보다는 논쟁에서 이기는 기술, 혹은 개인적인 이익을 쟁취하는 방법을 가르쳤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아테네 시민들이 자신의 영혼을 방치하고 잘못된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고 보았으며, 끈질긴 문답법 (elenchus)을 통해 그들의 무지와 오류를 깨우치려 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아무것도 안다고 주장하지 않았지만 (socratic ignorance), 다른 사람들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무지에 불과함을 드러내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습니다. 이러한 그의 행동은 많은 젊은이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지만, 기득권층과 자신들의 무지가 폭로된 이들에게는 불편하고 거슬리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399년, '청년들을 타락시키고 아테네의 신들을 믿지 않으며 새로운 신들을 도입했다'는 죄목으로 고발당하게 됩니다. 그의 재판은 단순한 법정 싸움이 아니라, 한 철학자의 삶과 그가 추구했던 가치관이 한 시대의 사회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플라톤의 『변론, Apologia』에 기록된 그의 최후 변론은, 자신의 철학적 신념을 단 한 번도 굽히지 않는 소크라테스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줍니다. 그는 자신을 고발한 이들에게 굴복하기보다는, 진리를 좇는 철학자의 소명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아테네에 봉사하는 길이라고 역설했습니다. 그는 추방이나 침묵을 택하는 대신, 죽음을 택하는 것이 더욱 철학적인 삶의 방식임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그의 유명한 변론, "재판관들이여, 아테네인들이여, 내가 여러분을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나는 여러분에게 순종하기보다 신에게 순종할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숨 쉬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한, 나는 철학하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여러분에게 충고하고 가르치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는 그의 삶 전체를 대변하는 말이었습니다.


배심원들의 투표로 사형이 선고되자, 소크라테스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과 나눈 대화를 통해, "철학은 죽음을 연습하는 것 (Meletē thanatou)"이라는 자신의 깊은 신념을 역설합니다. 플라톤의 『파이돈, Phaedo』은 이 마지막 대화의 내용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에게 죽음은 영혼이 육체라는 감옥에서 해방되어 자신의 본래 상태로 돌아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자, 영원한 진리를 온전히 관조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는 진정한 철학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왜냐하면 철학자는 평생 동안 육체의 속박에서 벗어나 영혼의 순수함을 추구하며, 감각적인 것에 의존하지 않고 오직 이성으로 진리를 탐구하는 훈련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바로 이러한 훈련의 궁극적인 완성인 셈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육체를 영혼의 장애물로 보았습니다. 육체는 질병과 쾌락으로 영혼을 혼란스럽게 하며, 감각은 진리를 왜곡하고 오류에 빠뜨립니다. 진정으로 순수한 지식과 진리는 육체적인 감각이 아니라, 오직 이성적 사유를 통해 얻어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철학자는 육체적인 욕망과 감각적인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멀리하고, 영혼의 이성적인 부분만을 개발하여 진리를 추구해야 합니다. 죽음은 바로 이 방해꾼인 육체로부터 영혼을 영원히 분리시키는 최종적인 행위이므로, 철학자에게는 해방과 정화의 순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는 제자들에게, 죽음 이후 영혼은 두 가지 길을 가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하나는 살아생전 육체의 쾌락에만 몰두하고 영혼을 돌보지 않아 정화되지 못한 영혼이 가는 길입니다. 이러한 영혼은 육체적인 욕망과 지상의 것에 대한 미련 때문에 무겁고 더러워져, 지상에 계속 맴돌거나 또 다른 육체 속으로 들어가 윤회하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일종의 형벌이자 정화의 과정이었지만, 피타고라스의 윤회 사상과 유사한 맥락을 가집니다. 다른 하나는 살아생전 철학적 삶을 통해 영혼을 정화하고 이성으로 진리를 탐구했던 영혼이 가는 길입니다. 이러한 영혼은 육체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나 순수하고 가벼워져, 신성한 영역으로 올라가 영원한 진리를 온전히 관조하는 행복을 누리게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이것을 '신들과 함께 사는 것' 혹은 '신들로부터 오는 진리를 직접 보는 것'으로 묘사했습니다.


독배를 마시기 직전, 소크라테스는 제자들에게 자신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재차 확언했습니다. 그는 오히려 자신이 이제 진정한 지혜의 원천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죽음은 두 가지 중 하나일 것입니다. 하나는 존재하지 않는 상태, 즉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이며, 다른 하나는 알려진 바와 같이 영혼이 이승에서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일종의 변화이자 이사입니다." (『변론』 40c). 만약 죽음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잠이라면, 그것은 축복이 될 것이고, 만약 죽음이 영혼의 이사라면, 그는 그곳에서 트로이 전쟁의 영웅들이나 다른 위대한 철학자들을 만나 진정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며 기쁨을 표현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죽음을 미지의 공포로 받아들이기보다, 이성으로 분석하고 철학적 논증을 통해 그 의미를 부여하려 했던 그의 삶의 방식과 완벽하게 일치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신 후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통 속에서도 제자들을 위로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철학적 신념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의 마지막 말은 "크리톤, 우리는 아스클레피오스 (치유의 신)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으니, 잊지 말고 갚으시오"였다고 전해집니다. 이 마지막 말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육체의 죽음을 통해 영혼이 육체적 질병의 감옥에서 해방되어 치유를 얻었으므로, 치유의 신에게 감사의 빚을 갚아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이는 소크라테스가 죽음의 순간에도 자신의 영혼이 치유와 해방을 얻었음을 인지하고 있었음을 시사하며, 그의 삶의 마지막 순간마저도 철학적 의미로 충만했음을 보여줍니다.


소크라테스의 독배는 단순한 역사적 사건을 넘어, 인간 이성의 힘으로 죽음을 직시하고 그 의미를 탐구하려 했던 서양 철학의 위대한 시작을 알리는 상징이었습니다. 그는 죽음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영혼의 불멸성을 주장했고, 철학적 삶이야말로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 영원한 진리와 합치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수많은 후대 철학자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인간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탐구하는 데 있어 이성의 역할과 영혼의 가치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게 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독배는 비록 한 육체를 소멸시켰지만, 그의 철학은 그 죽음 속에서 영원히 살아남아 인류의 정신사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말 그대로 "철학은 죽음을 연습하는 것"이라는 자신의 철학을 자신의 죽음으로 완성시킨, 진정한 철학자였습니다.









제3절: 에피쿠로스의 평온,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영혼의 해방으로 여기며 기꺼이 독배를 마셨다면, 그로부터 한 세대 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 (Epicurus)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죽음의 공포에 맞섰습니다. 그는 영혼의 불멸이나 사후 세계의 신비를 논하는 대신, 지극히 명료하고 합리적인 논증을 통해 ‘죽음’이라는 개념 자체가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는 무 (無)의 사건임을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그의 철학은 영혼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살아있는 인간의 마음을 위한 치유 (therapeia)였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인류를 괴롭히는 가장 큰 두 가지 질병, 즉 신들에 대한 공포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성이라는 약으로 완전히 제거하여, 마음의 흔들림 없는 평온한 상태, 아타락시아 (ataraxia)에 도달하는 것을 철학의 궁극적인 목표로 삼았습니다.


에피쿠로스가 보기에, 인간이 불행한 이유는 외적인 조건 때문이 아니라, 그릇된 믿음으로 인해 스스로 만들어낸 마음속 불안과 동요 때문이었습니다. 그 불안의 첫 번째 근원은 변덕스러운 신들이 인간의 삶에 끊임없이 개입하여 상과 벌을 내린다는 믿음이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인간을 영원한 불안과 미신적인 공포 속에 가두어 둡니다. 에피쿠로스는 이러한 공포를 제거하기 위해,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 (atomism)을 받아들여 그의 자연학의 기초로 삼았습니다. 그가 보기에 이 우주는 신의 의지가 아닌, 무한한 원자 (atom)와 텅 빈 공간 (void)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든 현상은 이 원자들이 우연히 부딪히고 결합하며 일어나는 자연적인 과정일 뿐이었습니다. 신들은 존재하지만, 그들 또한 미세한 원자로 이루어진 완벽한 존재로서, 세상사에는 전혀 관심 없이 영원한 평온과 행복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따라서 변덕스러운 신의 진노를 두려워하거나, 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제물을 바치는 행위는 모두 불필요하고 어리석은 것이 됩니다.


인간의 평온을 깨뜨리는 두 번째이자 가장 강력한 공포는 바로 죽음에 대한 공포였습니다. 사람들은 죽음 그 자체의 고통, 죽음 이후에 겪게 될지도 모를 끔찍한 형벌, 혹은 존재가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는 허무함에 대한 두려움으로 현재의 삶을 온전히 즐기지 못합니다. 에피쿠로스는 바로 이 공포를 향해, 그의 철학에서 가장 유명하고도 강력한 논증을 제시합니다.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Death is nothing to us).”

그의 논증은 지극히 단순하고 명쾌합니다.


첫째, 모든 좋고 나쁨은 감각 (sensation)을 통해 경험됩니다. 맛있는 음식의 즐거움도, 상처의 아픔도, 우리는 감각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습니다.


둘째, 죽음이란 모든 감각의 완전한 소멸이자 부재 (privation of sensation)입니다. 육체와 영혼을 이루고 있던 원자들이 흩어지는 순간, ‘나’라는 존재의 모든 감각 기능은 영원히 정지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존재하는 동안에는 죽음이 아직 오지 않았고, 죽음이 왔을 때에는 우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므로, 우리는 결코 죽음 그 자체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경험할 수 없는 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으므로,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죽음 이후의 상태를 두려워하지만, 에피쿠로스에 따르면 그것은 논리적인 모순입니다. 소멸 이후에는 고통을 느낄 주체 자체가 사라지는데, 어떻게 고통을 두려워할 수 있겠습니까? 그의 제자였던 로마의 시인 루크레티우스 (Lucretius)는 이 논증을 더욱 발전시켜 ‘대칭 논증 (symmetry argument)’을 제시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그 영원한 시간에 대해 아무런 슬픔이나 고통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게 될 또 다른 영원한 시간에 대해 두려워하는 것은 왜입니까? 나의 탄생 이전의 무 (無)와 나의 죽음 이후의 무 (無)는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둘 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시간일 뿐입니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에피쿠로스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목표가 바로 쾌락 (hēdonē, 헤도네)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쾌락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방탕하고 순간적인 육체적 쾌락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추구했던 최고의 쾌락은, 모든 종류의 고통이 부재하는 상태, 즉 육체적으로는 고통이 없는 아포니아 (aponia)의 상태와, 정신적으로는 불안과 공포가 없는 아타락시아 (ataraxia)의 상태였습니다. 시끄러운 연회와 값비싼 음식이 주는 쾌락은 일시적이며, 종종 더 큰 고통과 불안을 낳습니다. 그러나 소박한 음식과, 마음 맞는 친구들과의 조용한 대화, 그리고 철학적 사유를 통해 얻는 마음의 평온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쾌락입니다.


결국 에피쿠로스 철학의 모든 것은, 바로 이 아타락시아라는 평온한 쾌락의 상태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신들에 대한 공포를 제거하고, 죽음이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님을 이성적으로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불필요한 불안과 욕망에서 벗어나 현재의 순간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의 철학은 내세의 구원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내세에 대한 헛된 기대나 공포야말로 현재의 삶을 망치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보았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영혼이 육체에서 해방되는 과정으로 보고, 철학을 그 죽음을 잘 맞이하기 위한 ‘연습’으로 삼았다면, 에피쿠로스는 죽음 자체를 사유의 대상에서 지워버리고, 오직 살아있는 동안의 평온한 삶을 추구하는 것을 철학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영혼의 불멸을 믿었던 이들에게는 허무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신과 사후 세계에 대한 공포로 고통받던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현재의 삶을 긍정할 수 있게 하는 위대한 해방의 복음이었습니다. 죽음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우리에게 주어진 이 유한한 삶이야말로 우리가 집중하고 가꾸어야 할 유일하고도 소중한 정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제4절: 스토아학파의 수용, 자연의 이성에 순응하는 태도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전쟁 이후, 고대 그리스의 안정된 도시국가 (폴리스) 체제가 무너지고 거대한 제국들이 흥망을 거듭하던 헬레니즘과 로마 시대의 혼란 속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공동체 안에서 안정적인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끊임없는 전쟁과 정치적 격변,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운명의 파도 속에서, 개인은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세계 앞에 내던져진 왜소한 존재였습니다. 바로 이처럼 불안과 혼돈이 지배하던 시대에, 인간의 영혼을 위한 강력한 내면의 요새를 짓고자 했던 철학이 등장했으니, 그것이 바로 스토아학파 (Stoicism)입니다.


스토아 철학은 영혼의 불멸이나 사후 세계의 행복을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에피쿠로스처럼 죽음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선언하며 쾌락을 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대신 그들은, 우주를 관통하는 거대한 이성적 법칙을 이해하고, 그 법칙에 온전히 순응함으로써, 외부의 어떤 환경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평온과 도덕적 미덕을 획득하는 것을 철학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들에게 죽음은 극복하거나 무시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주의 합리적인 질서 속에서 마땅히 받아들여야 할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습니다.


스토아 철학의 심장에는 로고스 (Logos)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로고스는 이 우주 전체에 스며들어 만물을 질서정연하게 운행하는 신적인 이성이자 법칙입니다. 그들에게 우주는 에피쿠로스가 말한 것처럼 원자들의 우연한 집합이 아니었습니다. 우주는 하나의 거대하고 살아있는 유기체이며, 로고스는 그 유기체의 영혼이자 정신입니다. 이 로고스는 때로는 ‘신 (God)’으로, 때로는 피할 수 없는 ‘운명 (Fate)’ 혹은 ‘섭리 (Providence)’로 불렸습니다. 하늘의 별이 일정한 궤도를 돌고, 계절이 어김없이 순환하며, 씨앗이 싹을 틔우는 이 모든 현상은, 바로 이 로고스가 빚어내는 완벽한 인과율의 표현이었습니다.


만약 우주 전체가 이처럼 합리적이고 선한 로고스에 의해 지배된다면,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개별적인 사건들 또한 궁극적으로는 그 거대한 계획의 일부로서 의미와 목적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비록 우리의 짧은 시각으로는 그것이 질병이나 재난, 혹은 죽음과 같은 비극으로 보일지라도, 우주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전체의 조화를 위해 필요한 필연적인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삶의 목표는 명확해집니다. 그것은 바로 “자연에 따라 사는 것 (living according to Nature)”입니다. 여기서 자연이란, 단순히 산과 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를 지배하는 이성적인 법칙, 즉 로고스를 의미합니다. 자신의 작은 이성을 우주의 거대한 이성과 일치시키고, 개인적인 욕망이나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며, 운명이 가져다주는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바로 스토아학파가 추구했던 덕 (virtue)있는 삶의 본질이었습니다.


이러한 삶의 태도를 실천하기 위해, 스토아 철학자들은 우리에게 지극히 명료하고도 강력한 심리적 도구를 제시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로마 시대의 위대한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 (Epictetus)는 이것이야말로 행복과 불행을 가르는 유일한 기준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 예를 들어 우리의 육체, 건강, 재산, 명예, 그리고 타인의 행동에 집착할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좌절과 분노, 슬픔과 같은 격정 (파토스, pathos)에 휩싸이게 됩니다. 반면, 우리가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판단, 의지, 그리고 내면의 태도입니다. 진정한 철학자는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오직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내면의 덕을 쌓는 데에만 집중합니다.


이 구별법을 죽음의 문제에 적용해 보면, 스토아 철학의 진가가 드러납니다. 내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 그리고 그 죽음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찾아올지는 전적으로 나의 통제 밖에 있는 일입니다. 그것은 우주적 질서, 즉 로고스가 정한 운명입니다. 따라서 죽음을 두려워하고, 그것을 피하려고 발버둥 치는 것은, 마치 비가 오는 것을 막으려는 것처럼 어리석고 비이성적인 행동입니다. 그것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헛된 집착이며, 마음의 평온을 깨뜨리는 가장 큰 원인이 됩니다.


우리가 죽음 앞에서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죽음을 마주하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움과 원망으로 맞이할 수도 있고, 혹은 용기와 평온, 그리고 존엄함으로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스토아 현자에게 죽음은 재앙이나 형벌이 아니라, 태어나는 것, 늙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일 뿐입니다. 세네카 (Seneca)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어리석다. 그것은 알려지지 않은 것을 두려워하거나, 아무것도 아닌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죽음 이후에 영혼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단지 상태의 변화일 뿐이고, 만약 완전한 소멸이라면 고통을 느낄 주체도 없으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로마의 황제이자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Marcus Aurelius)는 그의 『명상록』에서 죽음을 이렇게 관조했습니다. “너는 이 우주라는 거대한 연극의 배우다. 작가 (로고스)가 너에게 짧은 역할을 주었든 긴 역할을 주었든 그것은 너의 소관이 아니다. 현명한 배우는 자신의 역할에 불평하지 않고, 막이 내리라는 신호를 받으면 조용히 무대에서 퇴장한다.” 죽음은 이처럼, 우주라는 위대한 드라마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마친 배우가 품위 있게 퇴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우리는 이 세상이라는 거대한 잔치에 초대된 손님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주인이 내어주는 음식을 감사히 즐기다가, 잔치가 끝나면 미련 없이 일어나 주인에게 감사를 표하고 떠나야 합니다. 죽음 앞에서 슬퍼하고 저항하는 것은, 잔치가 끝났음에도 자리를 뜨지 않으려는 무례한 손님과 같은 행동입니다.


이처럼 우주의 이성을 이해하고, 통제할 수 없는 모든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며, 오직 자신의 덕을 실천하는 데 집중하는 삶의 태도를 통해, 스토아 현자는 마음의 완전한 평정 상태, 즉 아파테이아 (apatheia)에 도달합니다. 이것은 현대적인 의미의 ‘무관심 (apathy)’과는 다릅니다. 그것은 두려움, 욕망, 분노, 슬픔과 같은 비이성적인 격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 굳건하고 흔들림 없는 영혼의 상태입니다.


결국 스토아학파가 제시한 길은, 죽음을 이겨내는 길이 아니라 죽음을 온전히 수용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들은 죽음의 공포를 이성으로 분석하여, 그것이 자연의 일부이자 우리에게 해를 끼칠 수 없는 것임을 증명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과제는, 이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여, 우리가 태어났을 때처럼 평온하게, 우리의 역할을 다하고 우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스토아 철학은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자신의 존엄을 지키고, 피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 평온을 잃지 않고자 했던 수많은 영혼들에게, 가장 굳건하고도 실천적인 위안을 제공했던 것입니다.









제5절: 프로이트의 심연,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영원한 투쟁


철학의 무대가 외부 세계의 관조에서 인간 내면의 어두운 심연으로 옮겨감에 따라, 우리는 이성의 빛만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었던 영혼의 지하 세계와 마주하게 됩니다. 20세기의 문턱에서 지그문트 프로이트 (Sigmund Freud)는, 바로 이 무의식이라는 미지의 명계를 탐험한 현대의 오디세우스 (Odysseus)였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인류의 모든 행동과 문명을 움직이는 두 개의 거대한 원초적 힘, 즉 본능이라는 이름의 신들을 발견했습니다. 그 이름은 바로 삶을 향한 에로스 (Eros)와 죽음을 향한 타나토스 (Thanatos)입니다.


프로이트가 발견한 에로스는 생명 본능 (Life Instinct)으로, 생존하고 번식하며, 분리된 것들을 결합하여 더 큰 통일체를 만들려는 모든 창조적 충동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성적인 쾌락을 넘어, 자기 자신을 보존하고, 타인과 사랑의 관계를 맺으며, 예술과 학문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려는, 생명을 유지하고 확장하려는 모든 긍정적인 힘을 포괄합니다. 반면, 그 심연의 가장 깊은 곳에는 에로스와 영원히 투쟁하는 또 다른 거인, 타나토스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죽음 본능 (Death Instinct)으로, 모든 생명체가 자신이 비롯되었던 무기물 (無機物)의 평온한 상태, 즉 모든 긴장이 사라진 완전한 정지의 상태로 되돌아가려는 근원적이고도 파괴적인 충동입니다. 타나토스는 전쟁과 공격성 같은 외부를 향한 파괴 행위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파괴하고 고통스러운 과거를 강박적으로 반복하는 등, 모든 것을 해체하고 소멸시키려는 힘으로 작용합니다.


프로이트의 관점은 철저히 세속적이며, 인간의 생물학적 조건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그에게 에로스와 타나토스는 초월적인 신이 아니라, 우리 육신 안에 내재된 본능의 이원론입니다. 그리고 인류의 문명 전체는 바로 이 두 거인의 영원한 전쟁터입니다. 그의 저서 『문명과 그 불만, Civilization and Its Discontents』에서 그려지듯이, 문명이란 에로스의 창조적 에너지를 동력으로 삼아 더 큰 공동체를 형성하려는 위대한 시도이지만, 그 과정에서 억압된 타나토스의 파괴적 충동이 끊임없이 폭력이나 신경증의 형태로 분출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비극성을 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심연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이 있습니다. 종교사학자 미르치아 엘리아데 (Mircea Eliade)는, 이 두 힘을 인간의 본능이라는 지하실에 가두는 대신, 신화와 상징이라는 창을 통해 드넓은 우주와 연결시킵니다. 엘리아데에게 에로스와 타나토스는 심리적 충동을 넘어, 인간이 우주의 신성한 질서와 합일하려는 열망을 드러내는 거룩한 상징입니다. 그의 관점에서 에로스는 단순한 성적 욕망이 아니라, 고대 신화 속 하늘과 땅의 신성한 결합 (hieros gamos, 히에로스 가모스)처럼, 우주의 창조적 통합을 재현하려는 영적인 몸짓입니다. 인도의 탄트라 (Tantra) 전통에서 육체적 결합이 시바 (Shiva)와 샤크티 (Shakti)의 우주적 합일이 되듯이, 사랑의 순간은 세속적 쾌락을 넘어, 개인이 신성한 질서와 하나가 되는 순간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엘리아데는 타나토스를 파괴가 아닌 재생의 과정으로 재해석합니다. 그의 저서 『영원회귀의 신화, The Myth of the Eternal Return』에서 그려지듯이, 고대인들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필수적인 통과 의례였습니다. 이집트의 신 오시리스 (Osiris)의 죽음이 나일 (Nile) 강의 범람과 새로운 풍요를 가져오듯이, 죽음은 낡은 것을 소멸시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날 자리를 마련해주는, 우주적 순환의 신성한 한 단계인 것입니다. 부족의 성인식에서 아이가 상징적인 죽음을 통해 어른으로 다시 태어나듯이, 타나토스는 파괴가 아닌 변형의 힘을 그 안에 품고 있습니다.


결국 프로이트와 엘리아데의 길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내면적 갈등이라는 세속적 현실에 초점을 맞추어, 에로스와 타나토스를 심리적 충동으로 환원했습니다. 반면, 엘리아데는 이를 신성한 상징으로 확장하여, 인간이 우주적 질서와 연결되려는 영적인 열망을 드러냈습니다. 프로이트가 성적 욕망을 본능으로 분석할 때, 엘리아데는 그것을 신화적 결합의 재현으로 바라보며, 프로이트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파괴 충동으로 설명할 때, 엘리아데는 그것을 영원한 재생의 가능성으로 재해석합니다.


이 두 위대한 스승의 가르침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존재의 이해를 다층적으로 풍부하게 합니다. 프로이트는 우리가 싸워야 할 가장 큰 적이 외부가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의 내면에 있음을, 그리고 문명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태로운 투쟁의 산물인지를 가르쳐줍니다. 그리고 엘리아데는, 우리가 사랑이나 죽음 앞에서 느끼는 그 깊고 형언할 수 없는 감정들이 단순한 본능의 작용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가 잊고 있었던 거대한 우주적 리듬의 희미한 메아리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이는 마치 어두운 밤에 반짝이는 별빛처럼, 우리의 고통스러운 투쟁에 깊은 의미와 위안을 부여하는, 또 하나의 소중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입니다.









제6절: 하이데거의 실존, '죽음을 향한 존재'로서의 결단



피타고라스가 영혼의 불멸을, 소크라테스가 이성의 불멸을, 에피쿠로스가 감각의 소멸을, 그리고 스토아학파가 우주적 질서로의 귀환을 이야기했다면, 20세기의 문턱에서 철학은 죽음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철학의 무대가 영원불변하는 본질이나 초월적인 이성의 세계에서,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구체적이고 유한한 개별 인간의 삶, 즉 실존 (existence)으로 옮겨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실존 철학의 가장 깊은 곳에서,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자신의 주저 『존재와 시간, Sein und Zeit』을 통해, 죽음이 우리 존재의 의미를 밝히는 가장 근원적인 빛임을 선언했습니다.


하이데거의 철학은 인간을 단순히 ‘생각하는 동물’이나 ‘이성적 존재’로 규정하는 전통적인 방식을 거부합니다. 그는 인간을 현존재 (Dasein, 다자인)라고 불렀는데, 이는 ‘거기에 (da) 있는 존재 (sein)’라는 의미입니다. 현존재는 다른 사물들처럼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자체를 문제 삼고, 그 의미를 물으며 살아가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 ‘내던져진 (thrownness)’ 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나고, 살아가며, 언젠가는 죽어야만 하는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바로 이 ‘죽어야만 한다’는 사실이야말로, 현존재의 모든 가능성을 규정하는 가장 근본적인 조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 속에서 이러한 자신의 근본적인 조건을 망각한 채 살아갑니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일상적인 삶의 방식을 비본래적 (inauthentic) 실존이라고 부르며, 이 상태에서 우리를 지배하는 익명의 주체를 ‘세인 (世人, das Man, 그들)’이라고 칭했습니다. ‘세인’은 ‘사람들이 보통 그렇게들 하니까’, ‘남들도 다 그렇게 사니까’와 같이, 세상의 평균적인 시선과 판단에 따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세인의 잡담 (Gerede) 속에서 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호기심 (Neugier)에 이끌려 새로운 자극을 좇으며, 애매함 (Zweideutigkeit) 속에서 진정한 의미를 묻는 것을 회피합니다.


바로 이 ‘세인’의 세계 속에서, 죽음은 나의 고유한 사건이 아닌, 그저 ‘누군가에게 일어나는 일상적인 사건’으로 격하됩니다. 우리는 신문에서 부고 기사를 읽고, 장례식에 참석하여 애도를 표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그 죽음이 아직 나에게는 닥치지 않은, 타인의 일이라고 여기며 안도합니다. 세인은 죽음을 ‘언젠가는 일어나지만, 아직은 아닌 일’로 치부하며, 그 실존적인 무게를 끊임없이 회피하고 은폐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죽음이 나의 가장 고유하고도 확실한 가능성이라는 사실로부터 도망치며 비본래적인 삶에 안주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비본래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본래적 (authentic) 자기 자신을 되찾을 수 있겠습니까? 하이데거에 따르면, 그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죽음을 향한 존재 (Sein zum Tode, 죽음으로의 선구)’로서의 자신을 직시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죽음은 삶의 마지막에 일어나는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나의 존재 전체를 규정하는 가장 궁극적인 ‘가능성’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나의 모든 가능성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모든 가능성의 불가능성이라는 가능성’입니다. 즉, 죽음은 내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게 되는 나의 가장 극단적인 가능성입니다.


이 죽음이라는 가능성은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을 가집니다.


첫째, 그것은 나의 가장 고유한 (ownmost) 가능성입니다. 그 누구도 나의 죽음을 대신 죽어줄 수 없으며, 나의 죽음은 오롯이 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절대적인 고독의 사건입니다.


둘째, 그것은 무관계한 (non-relational) 가능성입니다. 죽음의 순간에 나는 세상의 모든 관계로부터 단절됩니다.


셋째, 그것은 능가할 수 없는(unsurpassable) 가능성입니다. 죽음 너머에는 더 이상의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넷째, 그것은 확실한(certain) 가능성입니다. 내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은 그 어떤 진리보다도 확실합니다.


마지막으로, 그것은 무규정적인(indefinite) 가능성입니다. 죽음이 확실하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그것이 ‘언제’ 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이처럼 누구도 대신할 수 없고, 모든 관계를 끊어내며, 확실하지만 언제 올지 모르는 나의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할 때, 우리는 비로소 세인의 세계가 얼마나 피상적이고 거짓된 안락함 위에 서 있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이 깨달음은 단순한 지적 이해가 아니라, 불안 (Angst, 앙스트)이라는 근원적인 감정을 통해 찾아옵니다. 불안은 특정한 대상을 향한 ‘두려움 (fear)’과는 다릅니다. 불안은 ‘무 (無, Nothingness)’와의 대면, 즉 나의 존재가 언제든 무로 돌아갈 수 있다는 섬뜩한 가능성 앞에서 느끼는 현기증과도 같은 감정입니다. 이 불안 속에서 세인의 익숙한 세계는 낯설게 무너져 내리고, 현존재는 비로소 거대한 무 앞에 홀로 선 자기 자신과 대면하게 됩니다.


바로 이 순간, 현존재는 결단 (resolution)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죽음을 향해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유한성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 죽음을 향해 미리 달려가 보는 ‘자유로운 결단’입니다. 죽음을 나의 가장 고유한 가능성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세인의 시선에 따라 살아가는 익명의 존재가 아니라, 나의 유한한 시간 속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는 주체적인 존재가 됩니다.


이것은 결코 죽음에 대한 병적인 집착이나 비관주의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자신의 죽음을 직시하고 수용하는 것은, 우리를 일상의 사소함과 세인의 무의미한 잡담으로부터 해방시켜, 삶의 유한한 순간들을 더욱 소중하고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역설적인 힘을 부여합니다. 내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기에, 나는 ‘지금, 여기’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고, 타인에게 미루거나 세상의 평판에 기대는 대신, 나의 고유한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 용기를 내게 됩니다. 이처럼 ‘죽음을 향한 존재’로서의 결단은, 유한한 삶의 비극을 긍정하고, 그 안에서 진정한 자유와 책임의 의미를 발견하려는, 가장 치열하고도 용기 있는 실존적 태도인 것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철학을 ‘죽음의 연습’이라고 불렀다면, 하이데거는 그 연습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삶’이 시작된다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셈입니다.








제7절: 이성적 탐구, 신앙 너머에서 죽음의 의미를 찾다


인류는 존재를 자각한 이래로 끊임없이 죽음이라는 불가피한 운명과 씨름해왔습니다. 종교와 신앙은 초월적인 약속과 신적인 계시를 통해 죽음 너머의 구원과 영생의 길을 제시하며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를 달래왔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지성사는 신앙의 영역을 넘어서, 오직 인간의 이성 (logos)이라는 등불만을 의지하여 죽음의 심연을 탐사하고 그 의미를 규명하려 했던 위대한 시도들로 가득합니다. 이러한 철학적 탐구는, 죽음을 신적인 계획의 일부로 받아들이거나 영원한 보상으로 기대하는 대신, 인간 존재의 유한성 속에서 죽음의 본질을 파헤치고, 그 안에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내려는 치열한 노력이었습니다. 피타고라스에서부터 소크라테스, 에피쿠로스, 스토아학파를 거쳐 하이데거에 이르기까지, 서양 철학의 흐름은 이성적 탐구라는 하나의 거대한 줄기 아래에서 죽음이라는 궁극적인 질문에 다양한 답변을 제시해왔습니다.


피타고라스는 가장 초기의 이성적 탐구자 중 한 명으로, 그의 사상에는 이미 신화적·종교적 요소와 이성적·수학적 사유가 교묘하게 결합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우주의 근본 원리가 수 (數)이며, 모든 존재가 수학적 조화와 질서에 의해 지배되는 코스모스 (Kosmos)라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우주관 속에서 인간의 영혼은 육체라는 감옥에 갇힌 신성하고 불멸하는 실체였습니다. 죽음은 이 육체로부터의 일시적인 해방이었지만, 영혼의 오염으로 인해 끝없는 윤회 (metempsychosis)의 수레바퀴에 묶여야만 하는 형벌이었습니다. 피타고라스에게 죽음 너머의 의미는, 철저한 정화 (katharsis)의 과정을 통한 영혼의 궁극적인 귀향 (homecoming)이었습니다. 그는 금욕적인 생활, 그리고 특히 수학과 음악을 통한 이성적 사유를 통해 영혼이 육체의 속박과 감각적인 유혹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신성한 본래 모습을 회복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는 신의 은총에 기대기보다는, 인간 스스로의 지적인 훈련과 윤리적 실천을 통해 죽음의 굴레를 끊고 영원한 질서에 합치하려는 초기 이성주의적 시도였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더 높은 차원의 존재론적 상태로 나아가기 위한 정화의 과정이라는 철학적 해석을 제시한 것입니다.


이성적 탐구의 전환점을 마련한 인물은 단연 소크라테스였습니다. 그는 신화와 우주론적 사변에서 벗어나, "너 자신을 알라"는 명령 아래 인간의 영혼 (psychē)과 도덕적 삶의 본질을 캐묻는 데 철학의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소크라테스에게 영혼은 단순한 생명의 원리가 아니라, 진리와 선을 추구하는 이성적인 부분으로서 불멸하는 실체였습니다. 그는 육체를 영혼의 감옥이자 진리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보았습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마지막 순간, 독배를 마시면서 "철학은 죽음을 연습하는 것 (Meletē thanatou)"이라는 경구를 몸소 증명했습니다. 소크라테스에게 죽음은 영혼이 육체라는 방해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순수한 이성만으로 영원한 진리를 온전히 관조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기회였습니다. 그는 죽음 이후에 영혼이 올바른 삶을 살지 못한 이들은 윤회하여 다시 육체에 갇히지만, 진정한 철학적 삶을 통해 영혼을 정화한 이들은 신들과 함께 진리를 직접 관조하는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이처럼 소크라테스는 죽음의 공포를 이성적인 논증과 윤리적 삶의 실천으로 극복하고, 죽음을 통해 비로소 영혼의 궁극적인 목적, 즉 지혜와의 합일에 이르게 되는 긍정적인 전환점으로 해석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이성적 탐구를 통해 죽음의 의미를 재정의하고, 삶의 유한성 속에서 영혼의 가치를 숭고하게 드높인 철학적 순교의 상징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 이후 헬레니즘 시대에 등장한 에피쿠로스는 죽음에 대한 이성적 탐구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는 영혼의 불멸이나 사후 세계의 존재를 논하는 모든 형이상학적인 사변을 거부하고, 오직 인간의 감각 (sensation)과 경험에 근거하여 죽음의 공포를 해체하려 했습니다. 에피쿠로스에게 죽음은 모든 감각의 완전한 소멸이자 부재 (privation of sensation)였습니다. 그의 가장 유명한 논증,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Death is nothing to us)"는 이성과 감각적 경험에만 의존합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동안에는 죽음이 아직 오지 않았고, 죽음이 왔을 때에는 우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므로, 우리는 결코 죽음 그 자체를 경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경험할 수 없는 것은 우리에게 좋거나 나쁠 수 없으므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논리적 모순이자 어리석은 감정에 불과합니다. 에피쿠로스는 이러한 이성적 논증을 통해, 신들의 변덕스러운 심판에 대한 공포와 죽음 이후의 형벌에 대한 두려움을 완전히 제거하고, 인간이 살아있는 동안 아타락시아 (ataraxia, 마음의 평온)와 아포니아 (aponia, 육체의 고통 없음)라는 최고의 쾌락을 누리며 현재의 삶을 온전히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데 철학의 목적을 두었습니다. 그는 죽음 너머의 의미를 탐구하기보다, 죽음의 공포를 이성적으로 해체함으로써 현재의 삶에 집중하고 평온을 찾는 길을 제시했습니다.


동시대의 또 다른 강력한 철학적 흐름이었던 스토아학파는 죽음을 우주적인 이성 (로고스, Logos)에 순응하는 태도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에피쿠로스처럼 죽음 자체를 무시하기보다, 죽음마저도 우주를 지배하는 합리적이고 필연적인 법칙의 일부로 보았습니다. 스토아 철학에게 우주는 무질서한 원자들의 집합이 아니라, 로고스라는 신적인 이성에 의해 완벽하게 질서 지어진 살아있는 유기체였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삶과 죽음을 포함한 모든 사건은 이 거대한 우주적 계획의 일부이며, 인간의 이성적인 덕 (virtue)이란 바로 이 로고스를 이해하고 그에 순응하는 것이었습니다. 스토아 현자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구별'함으로써 마음의 평온 (아파테이아, apatheia)을 얻으려 했습니다. 죽음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속합니다. 우리가 언제, 어떻게 죽을지는 운명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저항하는 것은 비이성적인 감정적 반응일 뿐이며,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헛된 집착입니다. 스토아 현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치 배우가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무대에서 품위 있게 퇴장하듯이, 혹은 손님이 잔치가 끝나면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서듯이, 자연의 이성적 흐름에 자신을 맡기고 평온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우주적 로고스로의 귀환이며, 개별적인 존재가 전체적인 조화 속으로 다시 통합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습니다. 스토아학파는 신앙적인 약속 없이도 이성적인 수용을 통해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온을 얻는 실천적인 지혜를 제공했습니다.


20세기에 이르러 마르틴 하이데거는 죽음의 의미를 실존적 차원에서 재해석하며 이성적 탐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그는 전통적인 철학이 죽음을 삶의 끝에 있는 사건으로 치부하거나, 형이상학적 논의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죽음의 진정한 의미를 망각했다고 비판했습니다. 하이데거에게 인간 (현존재, Dasein)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자신의 존재를 문제 삼으며 '죽음을 향해 존재하는 존재(Sein zum Tode)'였습니다. 죽음은 내가 언젠가 맞이할 미래의 사건이 아니라, 나의 존재 가능성을 항상 규정하고 있는, 가장 고유하고 무관계하며 확실하지만 무규정적인 궁극적인 가능성입니다. 일상적인 삶 속에서 우리는 '세인(世人, das Man)'의 익명성 속에서 죽음을 '타인에게 일어나는 일'로 치부하며 회피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불안 (Angst)이라는 감정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유한성과 무 (無, Nothingness)와의 대면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불안 속에서 세인의 세계는 무의미하게 무너져 내리고, 현존재는 자신의 죽음이라는 가장 고유한 가능성에 직면하게 됩니다. 바로 이 순간, 현존재는 자신의 죽음을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미리 달려가 그 가능성을 선취하고 결단 (resolution)함으로써, 비본래적인 삶에서 벗어나 본래적 (authentic) 자기 자신을 되찾을 수 있다고 하이데거는 주장했습니다. 죽음을 직시하고 수용하는 결단을 통해, 우리는 유한한 삶의 순간들을 진정으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세인의 시선이 아닌 자신의 고유한 존재 목적을 향해 살아갈 수 있는 자유와 책임을 부여받게 됩니다. 하이데거에게 죽음은 소멸의 공포가 아니라, 오히려 삶의 의미를 깨닫고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거듭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계기이자 실존적 각성의 원천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신앙이 초월적인 계시와 약속을 통해 죽음의 의미를 부여하고 공포를 위로했다면, 철학적 이성 탐구는 그 너머에서 죽음의 본질을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조건으로 끌어안았습니다. 피타고라스는 윤회를 통한 정화와 영혼의 귀향을, 소크라테스는 이성적 삶을 통한 영혼의 해방과 진리 관조를, 에피쿠로스는 감각의 소멸이라는 논증을 통한 죽음의 공포 해체를, 스토아학파는 우주적 이성에 대한 순응을 통한 평온한 수용을, 그리고 하이데거는 죽음을 향한 존재로서의 실존적 결단을 통해 죽음의 의미를 재구성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신적인 개입이나 사후의 보상에 대한 확신 없이, 오직 인간의 지적 능력과 윤리적 실천을 통해 죽음이라는 궁극적인 현실과 대면하고, 그 안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내려 노력했습니다. 이처럼 이성적 탐구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그 안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존엄성과 삶의 유한한 순간들이 지닌 무한한 가치를 발견하게 하는, 깊고도 용기 있는 여정을 지속해온 것입니다.









제8절: 문장 속에 새겨진 죽음,

햄릿의 고뇌와 이반 일리치의 각성


인류는 죽음이라는 거대한 심연을 이해하기 위해 신화의 날개를 빌리고, 종교의 기도를 올렸으며, 철학의 등불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영혼이 죽음과 대면했던 또 하나의 위대한 무대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문학이라는 이름의 고요한 지면 위였습니다. 위대한 작가들은 자신의 문장을 예리한 메스 삼아, 죽음 앞에서 발가벗겨지는 인간 실존의 가장 깊은 곳을 해부하고, 그 상처와 고뇌, 그리고 마침내 찾아오는 각성의 순간을 우리 앞에 생생하게 펼쳐 보였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죽음에 대한 정답을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대신, 우리 스스로가 자신의 필멸성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삶의 의미를 묻도록 이끄는 가장 깊고도 진솔한 거울이 되어줍니다. 이 거울 앞에서 우리는 덴마크의 고뇌하는 왕자 햄릿을 만나고, 러시아의 평범한 판사 이반 일리치의 마지막 침상 곁을 지키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는 영국의 위대한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 1564-1616)가 창조한 비극의 무대, 『햄릿, Hamlet』의 음울한 엘시노어 성입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 햄릿의 비극은 단순히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복수극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유령이 나타나 “복수해다오”라고 속삭이는 순간, 그의 세계는 송두리째 무너져 내립니다. 죽음은 더 이상 삶의 자연스러운 끝이 아니라, 인간의 배신과 탐욕이 빚어낸 부조리한 폭력으로 그의 눈앞에 현현합니다. 이 충격 속에서, 그는 복수의 칼날을 갈기 이전에, 존재의 근원적인 의미 자체를 묻는 깊은 철학적 고뇌에 빠져듭니다.


그의 고뇌가 가장 압축적으로 응축된 장면이 바로 그 유명한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라는 독백입니다. 여기서 그는 단순히 자신의 목숨을 끊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이 고통스러운 삶의 짐을 계속 짊어지고 ‘존재하는 것’과, 죽음을 통해 이 모든 것을 끝내고 ‘존재하지 않는 것’ 사이에서 인간 영혼이 겪는 근원적인 갈등을 노래합니다. 그가 죽음을 망설이는 이유는, 죽음 그 자체의 고통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죽음 너머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그 미지 (未知)에 대한 근원적인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어떤 나그네도 돌아온 적 없는 미지의 나라 (the undiscover'd country from whose bourn no traveller returns)”라고 부릅니다. 이 알 수 없는 나라에 대한 두려움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차라리 익숙한 지상의 고통을 참고 견디게 만드는 족쇄가 된다고 그는 통찰합니다. 이처럼 죽음의 불확실성은 우리를 겁쟁이로 만들고, 행동하려는 결의를 병들게 하며, 우리를 끝없는 사유의 미로 속에 가두어 버립니다.


햄릿의 시선은 자신의 죽음에 대한 사유를 넘어, 세상 모든 곳에 스며 있는 죽음의 흔적을 발견합니다. 그는 무덤 파는 인부들이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해골 속에서, 한때 왕의 연회에서 흥을 돋우던 어릿광대 요릭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그는 요릭의 해골을 손에 들고, 한때 재치로 가득 찼을 그 텅 빈 눈구멍을 들여다보며 인간 존재의 허무함을 통렬하게 깨닫습니다. 위대했던 알렉산더 대왕도, 아름다웠던 헬레네도 결국에는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 맥주통의 마개가 될 운명임을 그는 직시합니다. 이 무덤가의 성찰은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즉 ‘죽음을 기억하라’는 서양 정신사의 오랜 경구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죽음은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만드는 가장 정직한 법칙이며, 지상의 모든 부귀영화와 아름다움이 얼마나 덧없는지를 일깨우는 가장 서늘한 스승입니다. 결국 『햄릿』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대신, 죽음이라는 거대한 질문이 어떻게 한 인간의 영혼을 뒤흔들고,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한 고통스러운 여정으로 이끄는지를 그 어떤 철학서보다도 더 깊이 있게 보여줍니다.


셰익스피어의 무대를 떠나, 우리는 이제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 (Lev Tolstoy, 1828-1910)가 그려낸 어느 평범한 판사의 침실로 들어갑니다. 그의 중편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 The Death of Ivan Ilyich』은 햄릿처럼 죽음을 사유하는 영웅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현실을 필사적으로 외면하다가 마침내 그 앞에서 자신의 삶 전체가 거짓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한 평범한 인간의 내면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보는 작품입니다.

주인공 이반 일리치의 삶은 성공적이고, 안락하며, 지극히 ‘올바른’ 삶이었습니다. 그는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에 따라 성실하게 일하고, 적당히 체면을 차리며, 자신의 안락과 편안함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그의 삶에는 진정한 사랑이나 깊은 자기 성찰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사회적 관습을 따르는, 하나의 거대한 위선이자 연극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사소한 사고로 옆구리를 다치고, 그 상처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치병으로 발전합니다. 죽음이라는 거대한 현실이 그의 안락하고 질서정연했던 세계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주변 사람들은 이 죽음의 진실을 마주하기를 거부합니다. 그의 동료들은 그의 죽음으로 인해 생길 공석을 계산하고, 그의 아내는 그의 신음소리를 자신의 안락한 삶을 방해하는 불평으로 치부합니다. 그들은 모두 이반 일리치가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거짓된 일상을 연기합니다. 이 지독한 위선 속에서, 이반 일리치는 생전 처음으로 완전한 고독과 마주합니다.


이 끔찍한 고독 속에서 그의 곁을 지켜주는 유일한 존재는 하인 소년 게라심뿐입니다. 게라심은 교육받지 못했지만, 죽음과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강한 생명력을 지닌 인물입니다. 그는 이반 일리치의 썩어가는 몸을 씻기고, 그의 다리를 자신의 어깨에 올려주며, 죽어가는 주인의 고통을 아무런 꾸밈없이, 그리고 진심으로 연민합니다. 이반 일리치는 게라심의 꾸밈없는 보살핌 속에서, 비로소 자신이 평생 동안 추구해왔던 모든 것이 거짓이었음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죽음의 고통보다 더 그를 괴롭혔던 것은 바로 “내가 과연 내 삶을 제대로 살았던가?”라는 실존적인 질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며, 그 안에서 단 하나의 진실한 순간도 찾을 수 없음에 절규합니다. 그의 성공적인 경력, 안락한 가정, 고상한 취미는 모두 죽음 앞에서 아무런 의미도 없는 껍데기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평생에 걸쳐 죽음을 외면하고 거짓된 삶을 살아왔기에, 이제 죽음 앞에서 아무런 위안도, 의미도 찾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소설의 마지막, 죽음이 임박한 마지막 순간에, 이반 일리치의 영혼에는 기적과도 같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는 자신을 위해 울고 있는 어린 아들의 손을 자신의 손 위에 올려놓고 입을 맞추는 순간, 생애 처음으로 순수한 연민과 사랑의 감정을 느낍니다. 자신을 괴롭히던 거짓된 과거의 삶은 모두 사라지고, 오직 현재의 이 사랑과 연민만이 실재함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를 짓누르던 죽음의 공포는 눈 녹듯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찬란한 빛이 가득 채워집니다. “죽음은 끝났다. 죽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고통 대신 기쁨 속에서 마지막 숨을 거둡니다.


톨스토이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통해, 진정한 삶의 의미는 죽음이라는 가장 정직한 거울 앞에서만 비로소 드러난다고 역설합니다. ‘잘 죽는 것’은 결국 ‘잘 사는 것’과 다르지 않으며, 잘 산다는 것은 사회가 정해놓은 거짓된 성공을 좇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진실하고 사랑하며, 타인의 고통에 연민할 줄 아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한 인간이 자신의 필멸성을 온전히 수용할 때 비로소 영원한 빛과 만날 수 있다는, 위대한 영적 각성의 기록입니다.


햄릿의 고뇌와 이반 일리치의 각성은, 문학이라는 신성한 무대 위에서 펼쳐진, 죽음을 마주한 인간 영혼의 가장 위대한 두 개의 초상화입니다. 햄릿은 우리에게 죽음의 불가해성 앞에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이성의 용기를 가르쳐주고, 이반 일리치는 거짓된 삶의 껍질을 깨고 진실한 자기 자신과 만나는 각성의 길을 보여줍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해답을 주는 대신, 죽음 앞에서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장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제9절: 캔버스 위의 해골, 홀바인의 <대사들>과 바니타스 회화



문학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죽음을 향한 인간의 내면적 여정을 그려냈다면, 미술은 단 하나의 정지된 화면 안에 삶의 모든 유한성과 죽음의 필연성을 압축하여 담아내는 위대한 힘을 지녔습니다. 화가들은 언어가 아닌 상징의 언어로 우리에게 말을 겁니다. 그들은 캔버스 위에 가장 화려하고 풍요로운 삶의 모습들을 펼쳐 보인 뒤, 그 바로 곁에 서늘한 해골 하나를 그려 넣음으로써, 보는 이의 영혼에 잊을 수 없는 질문을 던집니다.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즉 ‘그대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이 오랜 경구는, 결코 삶을 비관하라는 염세적인 가르침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죽음이라는 가장 정직한 거울 앞에서, 우리의 삶이 얼마나 소중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가장 강력한 윤리적 성찰의 초대장이었습니다. 이 성찰의 예술을 가장 완벽하게 구현한 걸작이 바로 독일 르네상스의 거장, 한스 홀바인 (Hans Holbein the Younger, 1497-1543)의 그림 『대사들, The Ambassadors』입니다.


이 그림은 우리를 16세기 유럽의 정치적, 종교적 격변기 한가운데로 초대합니다. 그림 속에는 당대 최고의 권력과 지성을 대표하는 두 명의 젊은 프랑스 대사, 장 드 댕트빌과 조르주 드 셀브가 서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자신들이 성취한 모든 것을 상징하는 값비싼 물건들 사이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뒤에 놓인 2단의 선반은, 마치 그 시대의 인간이 성취할 수 있었던 모든 지식과 권세, 그리고 예술을 모아놓은 작은 박물관과도 같습니다.


위 칸에는 천구의 (天球儀)와 각종 천문 관측 기구들이 놓여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이성이 하늘의 질서를 파악하고, 신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우주의 비밀을 탐구하려는 르네상스 시대의 지적인 야망을 상징합니다. 아래 칸에는 지구의와 류트, 수학책과 찬송가집이 놓여 있습니다. 이것은 지상의 세계를 탐험하고, 예술을 통해 조화를 추구하며, 합리적인 계산과 종교적인 신앙을 통해 이 땅 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려는 인간의 노력을 보여줍니다. 그림 속 모든 사물은 이 두 대사가 얼마나 부유하고, 교양 있으며, 강력한 인물인지를 증명하는 듯합니다. 그들의 삶은 완벽한 성공과 충만함 그 자체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 모든 세속적 영광의 발치에, 그림 전체의 의미를 뒤흔드는 기이하고도 불길한 형상이 떠 있습니다. 관람객의 눈높이에서 정면으로 바라볼 때는 그저 정체를 알 수 없는 길쭉한 얼룩처럼 보이는 그것은, 그림의 오른쪽 아래 구석으로 이동하여 비스듬한 각도에서 바라볼 때 비로소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냅니다. 그것은 바로 섬뜩하게 입을 벌리고 있는 거대한 해골의 형상입니다. 홀바인은 ‘왜상 기법 (anamorphosis)’이라는 정교한 착시 효과를 사용하여, 죽음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우리의 일상적인 시선으로부터 교묘하게 숨겨놓았습니다.


이 왜곡된 해골의 상징적 의미는 실로 심오합니다. 그것은 죽음이 우리의 일상적인 삶과 현실 인식 속에서는 언제나 왜곡되고 감추어져 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성공과 쾌락이라는 정면의 풍경에 취해, 바로 우리 발밑에 놓인 죽음의 그림자를 보지 못하거나 외면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잠시 멈추어 서서 삶의 시선을 조금만 비틀어 볼 때, 즉 자신의 유한성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실존적 각도의 변화를 시도할 때, 죽음은 비로소 그 어떤 세속적 성취보다도 더 명료하고 압도적인 실재로서 우리 앞에 나타납니다. 그림 속 모든 부와 지식, 권력의 상징들은 이 해골의 등장과 함께 한순간에 그 빛을 잃고 맙니다. 죽음은 이 모든 것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힘이자, 교황이든 왕이든 대사든 예외 없이 모두를 평등하게 만드는 최종적인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이 그림의 메시지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림의 왼쪽 상단, 녹색 커튼 뒤에는 아주 작은 십자가상이 희미하게 숨겨져 있습니다. 이는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절망 앞에서, 기독교 신앙이 제시하는 유일한 구원의 길, 즉 예수의 희생을 통한 부활의 희망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홀바인은 이처럼 단 한 폭의 그림 안에, 인간 삶의 충만함과 죽음의 필연성, 그리고 구원의 가능성이라는 거대한 드라마를 압축하여 담아냈습니다.


홀바인의 『대사들』이 보여주는 이러한 ‘메멘토 모리’의 정신은, 17세기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크게 유행했던 ‘바니타스 (Vanitas)’ 정물화 장르에서 더욱 직접적이고 보편적인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바니타스’는 구약성경의 전도서에 나오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구절에서 유래한 말로, 인생의 덧없음과 세속적인 모든 것의 허무함을 주제로 하는 그림들을 일컫습니다.


바니타스 화가들은 그림 속에 아름답고 값비싼 사물들을 가득 채워 넣었지만, 그 모든 것은 결국 죽음 앞에서 스러져갈 운명임을 암시하는 상징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해골은 죽음 자체를, 모래시계나 꺼져가는 촛불은 흘러가는 시간을, 비눗방울은 허무하고 연약한 인생을 상징합니다. 시들어가는 꽃은 아름다움의 덧없음을, 책과 과학 기구들은 지식의 한계를, 그리고 보석과 값비싼 천은 부와 권력의 무상함을 이야기합니다. 이 그림들은 마치 시각적인 설교와도 같습니다. 화가들은 감각을 유혹하는 가장 아름다운 사물들을 통해, 역설적으로 그 모든 감각적인 것들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고, 그리고 영원히 썩지 않을 영적인 가치를 추구하라고 우리에게 조용히 권고하는 것입니다.


결국 캔버스 위에 그려진 해골은, 우리를 향한 두려운 경고가 아니라 자비로운 스승의 가르침과도 같습니다. 예술가들은 죽음의 이미지를 통해 우리를 겁주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죽음을 미리 ‘연습’하게 함으로써, 죽음의 공포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남아있는 삶을 더욱 진실하고 의미 있게 살아가도록 돕고자 했습니다. 캔버스 위의 죽음은, 우리의 유한한 삶이라는 캔버스 위에 어떤 그림을 그려나갈 것인지를 묻는, 가장 깊고도 아름다운 질문인 것입니다.










제10절: 예술의 역할, 필멸을 응시하며 삶의 의미를 묻다


우리는 앞선 여정에서 문학과 미술이라는 두 개의 위대한 창을 통해, 인류가 죽음이라는 거대한 벽을 어떻게 응시하고 그 의미를 탐구해왔는지를 엿보았습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의 『햄릿, Hamlet』이 던지는 철학적 고뇌, 레프 톨스토이 (Lev Tolstoy)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The Death of Ivan Ilyich』이 보여주는 실존적 각성, 그리고 한스 홀바인 (Hans Holbein the Younger)의 『대사들, The Ambassadors』과 바니타스 회화가 상징하는 서늘한 진실은 모두 하나의 동일한 목적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술이라는 신성한 무대 위에서, 우리가 안전하게 죽음과 대면하고, 그 대면을 통해 역설적으로 삶의 가장 깊은 의미를 발견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예술의 첫 번째 위대한 역할은 바로 우리에게 ‘필멸의 거울’을 내미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의 분주함 속에서 자신의 유한성을 쉽게 망각하며 살아갑니다. 예술은 바로 이 망각의 장막을 찢고, 우리가 외면하고 싶어 하는 진실을 정면으로 비추어 보입니다. 홀바인의 그림은 화려한 세속적 성공의 풍경 아래 왜곡된 해골을 숨겨둠으로써, 우리가 일상적인 관점을 바꾸어야만 죽음의 실재를 볼 수 있음을 가르쳐줍니다. 바니타스 회화는 가장 아름답고 욕망하고 싶은 사물들을 통해, 그 모든 것이 결국에는 썩어 사라질 운명임을 속삭입니다. 톨스토이의 소설은 거짓된 삶을 살아온 한 인간을 죽음의 침상에 눕힘으로써, 그 삶이 얼마나 공허했는지를 남김없이 폭로합니다. 이처럼 예술은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을 우리 눈앞에 들이밈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삶을 피상적으로 바라보지 않도록 만듭니다.


죽음이라는 거울 앞에 섰을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두 번째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만약 이 삶이 유한하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예술은 이 질문에 대해 단 하나의 정답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대신, 다양한 길과 가능성을 보여주며 우리 스스로 답을 찾도록 이끕니다. 홀바인의 그림 속 희미한 십자가는 신앙을 통한 구원의 길을 암시하고, 바니타스 회화는 세속적 가치를 버리고 영적인 삶을 추구하라고 권고합니다. 반면, 이반 일리치의 마지막 순간은 사회적 위선이 아닌, 타인을 향한 진실한 연민과 사랑 속에서 비로소 죽음의 공포가 빛으로 변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햄릿의 고뇌는 명확한 해답을 찾지 못한 채, 진리를 향한 끝없는 질문과 성찰 그 자체가 인간의 존엄한 과제일 수 있음을 역설합니다. 예술은 이처럼 다양한 길을 제시하며, 우리 각자가 자신의 영혼에 가장 깊이 울리는 길을 선택하도록 돕는 자비로운 안내자가 되어줍니다.


마지막으로, 예술은 우리에게 정화 (catharsis)와 위안 (consolation)을 선물합니다. 우리는 햄릿의 절망과 이반 일리치의 고통을 안전한 거리에서 함께 느낌으로써, 우리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간접적으로 표출하고 정화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술은 죽음이라는 가장 혼란스럽고 파괴적인 현실에 질서와 형식, 그리고 아름다움을 부여하는 행위입니다. 톨스토이는 고통스러운 임종의 과정을 하나의 완결된 서사로 바꾸어 놓았고, 홀바인은 끔찍한 해골마저도 정교한 화면 구성의 일부로 승화시켰습니다. 이처럼 혼돈을 의미 있는 형식 속에 담아내는 창조 행위는, 죽음의 파괴적인 힘에 맞서는 인간 정신의 가장 위대한 승리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위대한 예술 작품들을 통해, 죽음에 대한 고뇌가 결코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인류가 함께 짊어져 온 보편적인 운명임을 깨닫고, 그 깊은 공감 속에서 profound한 위안을 얻습니다.


결국 예술의 역할은 죽음을 정복하거나 그 너머의 세계를 명확히 보여주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술은 우리가 죽음의 그림자 아래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가장 지혜로운 스승입니다. 예술은 우리로 하여금 필멸의 운명을 응시하게 함으로써, 유한한 삶의 모든 순간을 더욱 소중하고 진실하게 살아가도록 이끄는 영혼의 연금술입니다. 캔버스와 문장 속에 새겨진 죽음의 성찰은, 결국 우리 자신의 삶을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들어가라는, 가장 강력하고도 따뜻한 격려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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