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조망

4월 17일 목요일

감정이 정화되고, 의식이 성장하면서 이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세상이 내 앞에 서서히 펼쳐졌다. 나를 알게 되고, 타인을 중립적으로 바라보는 마음이 생겼다. 나는 타인에 대한 관심이 적어 비교적 영향은 덜 받아왔지만 이타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인간이었다. 감사하게도 요즘은 자연과 무척 가까워졌고, 사람들을 관찰하는 게 흥미롭게 느껴진다. 가령 무심코 지나쳤던 꽃 한 송이, 별 관심 없었던 주변인들까지 모두 다시 관찰하게 된다.

멀티버스처럼 또 다른 우주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곳에선 또 다른 내가 이미 앞서서 이러한 경험들을 겪어왔으리라 생각한다. 그곳에서 나는 이미 꾸준히 글을 써왔으며, 놓인 일상에 감사하는 삶을 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감사일기는 앞서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또 다른 세계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혹은 주변 모두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일 수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도움을 받아왔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지 않을까.

글을 시작하면서 마지막 결론은 이미 마음속에 구상해 뒀다. 머릿속 상상력으로 그려왔던 그림이 완성되는 순간이 온다면 그날로 감사일기는 마칠 예정이다. 그 순간이 더디게 올 지, 빠르게 올 지 알 순 없지만 그 순간순간을 감사함으로 채워 나가려 한다. 그 기다림이 무엇이었는지는 마지막 장에서 확인하면 될 것이다.

4월 18일 금요일

지난 주말에는 비도 오고 날이 꽤 흐렸다. 요즘은 자주 하늘을 바라보곤 하는데 태양과 달이 시야에 동시에 보였다. 신기해서 검색해 보니 종종 일어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천문 현상이라고 한다. 달이 지구를 공전하면서 태양과 달, 지구의 위치에 따라 낮에도 달이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이 현상은 별도의 고유 명사로 명명 지어 불리진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챗 GPT에게 대화를 걸었더니 이 똑똑한 친구는 "동시조망"이라는 개념을 알려줬다.

동시조망은 한 장소에서 두 가지 이상의 주요 경관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전망을 뜻한다. 가령 산과 바다, 강과 도시 등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동시조망은 동시에 바라본다. 즉, 하나의 시점이 아니라 여러 시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뜻이기도 한다.

비가 그치고 다음날 산책길에 이름 모를 보라색 꽃을 봤다. 물기를 머금고 있어서인지 싱그럽고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코를 갖다 대고 향을 맡아봤다. 꽃을 시야에만 담고 아름답다 느꼈다면, 이제는 향도 맡아보고 그 향도 담고 싶어 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4월 19일 토요일

어느덧 내 마음에도 평온함이 찾아왔다. 그토록 힘들었던 시절에 간절히 바랐던 그 일상을 살고 있다. 종종 옥상에 올라가 담배를 피우며, 하늘을 바라본다. 흐린 날 저녁에 걸맞은 짙고 어두운 남색 밤하늘에 약간의 붉은빛이 띄기도 했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밀려온 이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지 울컥했다. 정말 이제 괜찮아졌구나! 이제 다 나았구나 싶어서 오늘도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