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깡촌에서 싱글맘 생존기
내가 어느 정도 파밍 생활을 알아갈 무렵 각종 작물들의 수확시기가 서로 들쭉날쭉 하고 일정 기간이 정해져 있는 관계로 작물수확 하는 일은 한마디로 내겐 임시직이었다. 바쁜 수확철엔 일을 쉽게 얻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셈이다. 그런 내가 노리던 자리가 있었는데 그건 계란 줍기이다. 멀지 않은 곳에 큰 계란 농장이 있었고 그곳에서 일하던 욕쟁이 M의 얘기를 들으며 내겐 계란농장에서 일하고 싶다는 커다란 꿈이 생겼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3번에 걸쳐 각자 정해진 지역을 맡아 계란을 주워야 한단다. 계절에 상관없이 할 수 있는 일이고, 1년 내내 수확을 해야 하는 그 일은 내게 풀타임 정규직이나 다름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꿀보직에 한번 자리를 차지하고 나면 좀처럼 물러나는 일이 없어 그야말로 지역주민들에게 계란 줍기는 애플사에 들어가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내게 기회가 왔다.
여전히 욕으로 운을 띄운 M의 전화기 속 목소리는 들떠있었고, 계란농장에서 나를 당장에 보자 했다 알린다. 한 구역을 맡고 있던 여인이 출산이 임박하여 더 이상 일을 할 수가 없어 새로운 사람이 필요하였고 M은 나를 추천하였다 했다. 나는 로켓보다도 빠르게 농장으로 달려갔고 20여분을 운전해서 달려가는 내내 나는 흥분으로 손바닥과 치골이 간지러웠다. 계란 농장 입구의 경비는 내가 온다는 보고를 받았는지 나의 이름을 대자 들어가라고 자동 게이트를 열어 주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사무실로 들어서니 표정 없는 매니저 K가 따라오라고 손짓을 한다. 그를 따라가니 그는 위아래가 붙어 있는 흰색 작업복을 두 개 던져 주며, 나에게 맞는 사이즈로 골라 입으라 했다. 그리고 역시 하얀 장화를 신으니, 두꺼운 비닐 커튼이 쳐져있는 곳으로 따라 들어오라 다시 손짓한다. 그의 몸짓은 이 전에 꽤나 반복해서 해봤던 일인 듯 권태로워 보이면서도 자연스러웠다. 비닐커튼을 제치고 들어가니 약물이 담겨 소독 냄새가 나는 약품 풀을 장화를 신고 지나야 했다. 그리고 나는 조그만 이동식 카트에 미리 올라앉아 있는 매니저 K의 옆자리에 역시 그의 턱짓을 신호로 올라탔다.
임산부가 일했다던 비교적 평지에 가깝던 곳에 배치되었다. 다른 구역은 간혹 높은 언덕과 수풀 그리고 나무들이 있는 곳도 있어 한눈에 보기에도 어려워 보였는데 무릎이 약한 내겐 그 평지구역 이야말로 감사였다. 매니저는 몇 가지 주의사항과 내가 맡을 구역의 경계를 뜻하는 빨간 깃발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알은 오늘 수확한 것을 유정란인지 아닌지의 유무와 크기를 선별해 다음날 슈퍼 진열대에 올려야 하므로, 줍는 사람이나 공장 안의 사람들이나 쉴 틈 없이 돌아간다라고 매니저 K는 빠르게 말한다. 그러니 각자 맡은 구역에서 그날 낳은 알은 하나도 놓치지 말고 주워야 한다고 덧 붙였다. 그리고 약속된 장소에 알들을 모아 놓으면 카트가 와서 공장 안으로 실어간다 했다. 첫날 대충 매니저 K의 짧은 설명으로 나는 그 회사에 입사를 했음을 확신했다. 이렇게 짧은 오리엔테이션을 끝으로 내일부터 출근하라는 그의 말이 믿을 수가 없어서 나는 그에게 거의 각서를 받을 뻔했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대기업에 입사한 어느 젊은이처럼 아이들 앞에서 어깨를 으쓱해 보였고, 아이들은 멋도 모르고 신나 하며 박수를 쳐주었다. 나도 자랑스러운 다른 일하는 엄마들처럼 정식 직장이 생겼음에 나 스스로가 대견하였고 나는 더할 나위 없이 기분이 좋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지정된 장소에 주차를 하고 기다리면 소독된 차량이 와서 우리들을 픽업한다. 그리고 일하기 전 나눠진 옷으로 갈아입고 장화를 신고, 소독을 하며 각자 주어진 구역의 막사열쇠를 받는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약품풀에 들어가기 위해 장화로 갈아 신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나에게 로건을 조심하라고 한다. 그러자 일할 준비로 분주하던 사람들이 일동 멈춤하고 내게 주목한다. 로건이 누구냐 묻자 다들 기다렸단 듯 한 마디씩 건넨다. 그들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내 구역에 로건이라는 수탉이 있는데 처음 보는 사람을 공격한다 했다. 그리고 내가 오기 전 이미 몇 사람이 있었고 그들은 로건의 발톱에 하루도 못 버티고 포기했다 한다. 갑자기 내 몸은 굳어졌고 그제야 매니저가 왜 막사에서 멀리 떨어져 대충이라는 느낌이 들만큼 그리도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이 치러졌었는지 이해가 갔다. 그도 로건이 무서운 거였다.
대기업에 입사한 사람이 무서운 선배가 있다 하여 사표를 쓴다는 건 있을 수 없다.
나는 두려운 마음으로 카트에서 내려 막사 앞에서 한동안을 머뭇거렸다. 일단 막사 주위를 돌며 간 밤에 야생동물로 인한 피해가 없는지 둘러보고 네 개의 막사 문들을 차례로 열었다. 교육받은 대로 저 안에 닭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온다 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였다. 지들이 아무리 사나워도 닭은 닭이지..라는 암시를 스스로 하며 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큰 크기의 암탉들이 쏟아져 나오며 낯 선 내게 못마땅하단 듯 퍼득거리며 큰소리로 꾸륵거렸다. 정확한 수는 알 수 없으나 대략 300마리 정도라 하였다. 그리고 그녀들은 새벽 일찍 군데군데 뿌려놓은 사료 앞으로 서로 앞 다투어 달려갔다. 내가 찾던 로건은 안 보였다. 그래서 배운 대로 우선은 아침식사를 위해 암탉들이 막사를 비운 틈을 이용해 막사를 돌기로 했다. 막사 스위치를 올리니 높은 막사의 천장에 매달린 불들이 순서를 지키며 일사불란하게 촤라락 불이 켜졌고 그리고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커다란 독수리는 날개를 접고, 꼿꼿하게 선 채로 미동도 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로건이었다
잠시 그와 나의 숨 막히는 눈싸움이 계속되었다. 내 발은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는데 로건은 그 육중한 몸에 맞는 공룡 걸음 소리를 내며 천천히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로건을 보며 순간 무는 개는 짖지 않는다란 말이 떠 올랐을 만큼 그는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으며 서둘지도 않았다. 다만 나를 노려보며 아주 천천히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거리를 둔 탓에 그와 나는 떨어져 있었지만, 동그랗고 샛노란 눈주위와 커다란 당구공 같이 빛나던 그의 갈색 눈알은 정확히 볼 수 있었다. 나는 뒤돌아서 다시 공장 쪽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손뼉 치며 좋아하던 얼굴이 떠 올랐다. 나는 그가 내게 더 가까이 다가와 나를 요절내기 전 얼른 몸을 빼서 열려있던 막사 문 뒤로 몸을 숨겼다. 로건은 내가 어디 숨었는지 분명 알고 있었지만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놀듯 문뒤에 숨은 나를 모르는 척 천천히 지나 암탉들과 섞여 모이를 먹기 시작했다. 나는 최대한 조용히 몸을 움직여 문뒤에서 나와 막사에 들어갔다. 들어서며 나는 간 밤에 낳아놓은 알들을 비치된 수레에 조심스럽고도 빠르게 담기 시작했지만 나는 떨고 있었다.
넓은 막사 구석구석을 뒤지며 한 개의 알도 놓치지 않으려 집중하며 괜히 사람들이 재미로 내게 겁을 주기 위해 장난을 쳤을 거란 생각이 들쯤이었다. 막사에서의 알찿기가 거의 끝나서 수레의 손잡이를 잡으러 뒤돌아선 나는 내 온몸의 피가 굳어 흐름을 멈춘 듯 나는 또 얼어버렸다. 알찿기에 열중하던 내 뒤에 로건이 딱 버티고 있던 것이었다. 그와 나의 거리는 3m 정도였고 그의 키는 과장 조금 보태 내 엉덩이쯤은 아주 쉽게 쪼아버릴 것 같은 높이였다. 검게만 보였던 그의 깃털은 윤기 흐르는 진한 청록색이었고 검은 꼬리 부분은 꿩꼬리처럼 길어 멋들어진 동양란처럼 휘어져 있었다. 붉게 두툼한 그의 벼슬과 턱은 그가 이 무리의 대장이라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위용을 뽐내고 있었으며 그의 발은 쥐라기 영화에서나 보았음직한 공룡의 발을 가지고 있었고 그 끝에 달린 날카롭던 발톱은 그의 이름이 왜 로건인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울버린의 그것이었다. 그 뜻은 난 이제 찢어질 거란 뜻이기도 했다.
2편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