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의 시작

남들 할 때 안 하고 애들 다 커서 한 육아휴직

by 김태경

대학 졸업하고 입사한 첫 회사에서 18년을 근무했다.

그 18년 동안 나는 결혼을 했고, 두 아이를 낳았다. 두 아이 모두 출산휴가 90일만 쉬고 바로 복직을 했었다.

회사의 복직 요청도 살짝 있었지만, 복직은 내 선택이었다.

나는 일이 재미있었고, 그래서 일도 정말 많이 주어졌고, 야근도 출장도 많았다. 나는 승진도 빨리 했다.

친정 엄마의 손주 돌봄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일하지는 못했을 거다.


올해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3학년이 된 두 아이가 있다.

초등학교 입학 할 때 엄마들이 육아휴직을 많이 한다는데 나는 못 그랬다.

다행히도 회사와 집이 가까워서 6시 제시간에 퇴근한다면 집에 6시 30분에 도착했다.

또 다행히도 내 아이들은 순딩이들이었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잤다.


어느 날부터인가 나도 육아휴직 한 번은 해 봐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회사의 육아휴직 제도가 버젓이 있었고, 많이들 했다.

육아휴직을 하면 첫 3개월은 250만 원, 그다음은 200만 원, 그다음은 150만 원, 마지막 3개월은 100만 원으로 휴직자 지원 급여가 높아졌다는 뉴스도 한몫을 했다.

그래서 육아휴직을 했다.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에 되기 한 달 전에 말이다.

회사에 갑작스럽게 휴직희망을 통보했고 설왕설래가 있었으나 법적인 나의 권리 행사였던 탓에 어떻게 어떻게 정리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집에 있다. 이제 곧 육아휴직 3개월이 꽉 차 간다.

다 컸다면 큰 아이들이지만 아직 다 커 보일 뿐인 내 아이들 육아를 하면서 말이다.

집의 가장이 아니어서 할 수 있었던 선택이므로(=돈을 버는 남자 가장이 한 명 있었으므로)

이 사회의 모든 남자 가장들, 특히 법은 말하고 있지만 육아 휴직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많은 남자 가장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좋은 사회제도 혜택이 미처 찾아오지 못했던 40대 중반의 남자 가장들에게 약간의 미안한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내가 아빠 자리에 있었다면 선택하지 못했을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도 집에 있으니 좋다.

내 생애 다시 이런 시간들이 올 수 있을까.

나는 지금 호사를 누리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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