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특별한 만남

스승의 은혜에 감사드리면서

by 디카이분의일



FM 라디오에서 흐르는 가곡 선율이 귀에 익숙하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밝은 달만 쳐다보니 외롭기 한이 없다. 내 동무...”
“그래! 우리 가곡, 고향생각”

나는 무엇에 홀린 듯 눈을 감았다. 어느덧 40년을 세월을 숨가쁘게 되돌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그 음악실로 향했다.

조금은 허름해 보이는 음악실. 음악실 한 켠에 자리잡고 있는 피아노와 그 피아노 의자에 앉아 있는 곱슬 파마머리에 작고 날카로운 눈,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가진 40대의 음악선생님께서 열심히 건반을 두드리고 있었고, 학생들은 번호 순서대로 음악과목 기능평가를 위한 가곡 ‘고향생각’을 부르는데 여념이 없었다.
드디어 내 차례. 나는 변성기가 오지 않은 맑은 목소리로 잘 불렀고, 기능평가 결과는 좋았다.

음악 선생님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해 2학기 시작과 함께 선생님께서는 10월 말에 개최되는 지역 문화제에 중등부 가곡 독창 대회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과, 내가 그 대회에 우리 학교 대표로 출전하게 되었고, 대회 지정곡인 ‘고향생각’과 자유곡 하나를 정해 열심히 연습해서 좋은 성적을 내보자고 제안하셨다.

대회까지는 60일 남짓. 학교가 끝나자마자 곧장 선생님댁으로 달려가 연습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힘들고 지루했던 적도 많았지만, 연습이 끝난 뒤 매번 내어주시는 맛있는 차와 간식이 위로가 되었고, 당시 학생 신분으로는 듣기 힘들었던 학교의 다양한 비밀이야기도 들을 수 있어서 으쓱하기도 했다.
물론 연습하는 기간 동안 선생님과 무척 가까워졌다는 점은 두말 할 나위 없다.

60일은 쏜살같이 지나갔고, 대회 성적은 아쉽게등 2등에 그쳤다.
그래도 선생님은 나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해 주셨다.
대회 이후 남은 중학교 시절 음악 시간은 늘 즐거웠고, 음악 성적은 늘 상위권이었다.
심지어 선생님의 추천으로 장학생에 선발되어 장학금까지 받기도 했다.

3년이 흘러 중학교를 졸업했고, 선생님은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셨다.
이후 한 번도 선생님을 뵙지는 못했다.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과 결혼 등 숨 가쁘게 달려온 40년.
시간이 흐를 동안 선생님을 잊은 적은 없었다.
선생님에 대한 기억과 모습이 희미해지는 만큼, 뵙고 싶다는 희망과 그리움은 커져만 갔다.

학창 시절 선생님을 찾을 수 있다는 교육청 홈페이지 사이트도 들어가 봤지만, 허탈하게 나오기를 여러 번이었다.
이제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관할 교육청에 직접 연락을 했다.
내가 알고 있는 선생님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제공하고 교육청의 회신을 기다렸다.
드디어 교육청 관계자로부터 선생님의 연락처를 받을 수 있었다.

수화기로 들리는 선생님의 목소리는 여전했고,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 소중하게 간직했던 선생님에 대한 존경, 고마움, 그리움 등 복잡한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선생님, 저 기억하시겠어요?”
“그럼, 당연히 기억하지.”
“목소리는 여전하시네요. 죄송해요. 진작 찾아뵙고 인사드리려 했는데...”
“그래도 이렇게 찾아주니 고맙다.”


40년 만에 선생님을 뵙는다.
선생님께 어울릴 만한 분홍빛 머플러를 정성스레 포장하고, 핑크빛 봉투에 작은 성의도 담았다.
낡은 졸업사진을 꺼내 선생님과 내 사진을 휴대폰에 담았다.

지금 작은 찻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솜털처럼 가볍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