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다양성에 대하여
나른한 토요일 오후, 정적을 깨는 아내의 목소리가 찢어질 듯 울렸다. “너희들 어쩌려고 그래! 새 학기도 시작되었는데 열심히 공부해야지.”, “당신은 낮잠만 자지 말고, 아이들 공부나 좀 봐줘요.” 나는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사회교과서를 가져다 작은 아이에게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학습 내용은 문화의 다양성에 관한 것이었는데, 언 듯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큰 곤란을 겪었던 일이 생각났다.
내가 직장에서 민간단체활동을 지원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던 시기였다. 단체 중 규모가 큰 새마을회가 주최하는 ‘지구촌 새마을지도자대회’가 4일간의 일정으로 대구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는데, 대회 일정 중 초청인사인 개도국 장․차관들을 대상으로 울산의 산업시설을 견학하고 오찬을 하는 프로그램이 확정되어, 자연스럽게 민간단체활동 지원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내게 업무가 주어졌다. 울산을 방문하는 개도국 장․차관들을 위해 특별히 초청하는 행사였고, 처음 맡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라 긴장되는 반면, 새로운 업무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우선 오찬장소는 한정식집으로 정했다. 참석하는 장․차관 하나하나 식성까지 고려하여 메뉴선택과 선물준비 등 행사준비에 정성을 들였다.
드디어 행사일이 다가왔다. 원활한 진행을 위하여 오전시간대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 견학 일정 모두 동행하였고 일정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최소한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오전 견학일정을 모두 마치고, 오찬장에 도착했다. 스무 명 남짓한 장․차관과 함께한 배우자들은 오찬장에 밀려들 듯 들어갔다. 미리 도착해 있던 오찬 주재자는 환한 얼굴로 한분 한분 격렬한 악수로 맞이했다. 그러나, 이런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우간다 개발부 장관 부부가 입장하는 순간 어색한 분위기로 돌변해 버렸다. 식당은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입장해야 하는 구조인데 신발을 벗지 않고 식당에 들어가는 것이 일상화된 우간다 개발부장관의 부인은 신발을 신은채 식당에 들어섰고, 식당 지배인은 부인에게 “신발을 벗고 들어오셔야 합니다.”라고 이야기했으나, 한국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던 부인은 통역의 도움으로 신발을 벗고 식당에 들어섰다. 다소간 어색함은 있었으나 그래도 원만히 해결된 안도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당황스러운 일이 또 일어났다. 갑자기 우간다 개발부장관의 부인이 음식을 차려놓은 방 입구에서 들어가기를 주저하고 있었다. 모든 참석자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순간 소란스러운 분위기로 변했다. 오찬 주재자와 눈이 마주친 나의 정신은 혼미했고 등줄기에서는 한줄기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지금까지 행사준비에 쏟았던 모든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어떤 식으로든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짧은 영어실력으로 연거푸 부인에게 “Have Seat" “What's the ploblem?"을 되뇌고 있었다. 좌식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부인은 의자가 없는 오찬장에 들어가서 앉는 것조차 부담이었고 불만이었던 것이다.
결국 오찬진행은 우간다개발부장관 부부를 제외한 채 진행되었고, 부랴부랴 그들 부부의 오찬을 위해 의자가 준비되어 있는 주변 식당 몇몇 곳을 섭외하였으나, 불만을 표시한 뒤틀린 우간다 개발부 장관 부부의 마음을 돌려놓지는 못했고, 수 차례의 설득 끝에 롯데호텔 뷔페식당으로 안내하여 무사히 식사를 마치도록 했다.
오찬행사를 신경 쓰느라 허둥지둥 식사를 끝낸 나는, 오찬행사를 마친 개발도상국 장․차관 일행들과 우간다 개발부 장관 부부를 합류시킨 후 마음을 추스르고 사무실로 복귀할 수 있었다.
직장 상사는 오찬장에서 행사는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고, 향후 외국인이 참석하는 행사의 경우 장소 선정에 세심한 신경을 써야겠다는 언급이 있었다. 이후 오찬행사에 통역을 담당했던 직원의 말을 빌리면, 오찬장에 참석자들의 대체적인 분위기는 외국을 방문할 때 가끔은 불편하고 힘들 때도 많지만, 다소 불편하더라도 그 나라의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다소간 안심이 되었지만, 그래도 그날의 충격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후 몇 차례 자리를 옮겨 지금은 외자유치 업무를 맡고 있다. 외국인을 상대하는데 이전의 경험이 소중한 밑거름은 되겠지만, 부담감은 여전하다. 며칠 전 우리 시에 소재한 외국계 기업의 K이사에게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우리 회사 생산시설 증설공사 기공식에 단체장을 초청하고자 합니다. 기공식 후에 주요 내빈들과 오찬일정도 있습니다. 오찬장은 시내 한정식집으로 정했습니다.” 나의 대답은 당연하게도 이랬다. “의자 있는 식당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