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가 꿈꾸는 집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오래된 트로트 가요가 있다. 누구나 전원에 아늑한 집을 짓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유유자적하는 삶을 꿈꾼다. 하지만 교통, 의료, 유통 등 도시가 주는 편리함과 바쁜 일상은 그런 삶을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다.
현대인들은 ‘사는 곳’과, ‘아파트 평수’로 서열을 나눈다고 한다. 집은 더 이상 안정감과 편안함을 주는 안식처가 아니다. 부의 척도와 재테크 수단으로 바뀐 지 오래다. 나 역시 집값의 오르내림에 일희일비하며, 자신도 모르게 어릴 적 마음속에 그렸던 ‘그림 같은 집’에 사는 꿈을 시나브로 허물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 꿈은 몇 년 전 고향에 있는 마당 딸린 아담한 집을 마련하면서 다시 살아났다. 대도시 고층아파트에 비할 순 없지만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보다 소중하게 다가왔다. 그냥 좋았다. 그동안 꿈꿔왔던 집으로 만들고 싶어졌다.
집은 따뜻했다. 장작불을 지핀 온돌 같은 뭉근한 온기와 정을 담고 있었다. 최소한의 편리함과 안락함만 더하면 충분했다. 그 이상은 사치로 느껴졌다. 최소의 소유만 목표했으므로 빈 공간은 물건이 아닌 마음으로 채우고 싶었다. 마당 모퉁이에 서 있는 오래된 감나무가 주는 따뜻함도 포기할 수 없었다. 주저 없이 그 집을 선택했다.
이제 그 꿈을 조금씩 준비하려 한다.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 어렵고 힘들겠지만 퇴직 후의 삶을 생각하면 그 정도 수고는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
마당에는 잔디를 심을 것이다. 잡초 뽑고 잔디 깎는 일이 힘들어도 초록이 주는 편안함과 싱싱함이 좋다. 잔디마당을 양탄자처럼 곱게 다듬어 푹신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낡은 기와는 새로 얹고 방은 한지로 도배할 것이다. 살림살이는 꼭 필요한 몇 가지만 두고 비워 둘 것이다. 황토방을 만들어 휴식과 건강을 챙기는 호사도 누리고 싶다. 집 주변에는 대추나무와 석류나무도 심을 것이다. 제철이 되면 내어줄 풍성한 결실로 이웃에게 인심도 쓰고 과실주도 담글 것이다. 가족과 친지를 불러 고기 구울 공간도 준비할 것이다. 생각한 해도 흐뭇하다.
누구나 일상에서 벗어난 일탈을 꿈꾼다. 나는 가끔씩 상상으로 나만의 집을 지었다 허물기를 반복한다. 그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행복하다. 오늘처럼 비 오는 날, 따뜻한 커피를 벗 삼아 각자가 꿈꾸는 집을 지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