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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어내며

미니멀라이프

by 디카이분의일

‘미니멀라이프’가 글과 영상으로 심심찮게 소개되고 있다. 복잡한 공간과 불필요한 물건을 정리하여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그것이다. 요즘 내 삶도 ‘미니멀라이프’로 분주하다.

그 삶은 몇 년 전 오래된 침대를 버리면서 슬며시 시작됐다. 침대를 구입한 지 10년이 넘어 새로 장만할지, 아니면 아예 침대 없이 그냥 살아볼지 고민은 점점 커져갔다.

침대를 치우고 나니, 의외로 공간이 넓었다. 안방이 이렇게 넓은 곳이었나 싶어 새삼 놀라웠다. 깨끗하게 뒷정리를 하고 바닥에 누웠다. 마음이 뻥 뚫렸다. 머리도 맑아졌다. 침대를 치운 건 단순한 정리였지만, 순간적으로 느낀 쾌감은 예상 밖이었다. 공간이 제공하는 쾌감, 그 여운은 생각보다 오래갔다.

이 일은 소소했지만 내 삶에 큰 변화와 기쁨을 가져다 주기에 충분했다. 침대부터 시작된 비움은 소파와 책장 그리고, 냉장고로 이어졌다. 오랫동안 입지 않던 옷들도 함께 정리했다. 오랫동안 입지 않던 옷들도 정리했다. 주말마다 창고와 옷장을 열어 버릴 물건을 찾는 일이 이제는 익숙한 일상이 되었다.

비움의 끝은 어디일까. 어쩌면 그것은 물건이 아니라, 결국 마음의 공간을 덜어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더 나아가 무소유라는 종교적인 경지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설령 그 경지까지 다다르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그 점에서, 지금까지 느껴온 공간의 여유가 정신적인 평온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내 마음 한편엔 여전히 온갖 욕망이 숨죽인 채 웅크리고 있으니,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버리기 힘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건을 비우고 정리하는 일에 몰두하다 보니 과거를 정리하는 소중한 시간을 얻은 것은 덤이었다. 어느 날 버릴 물건을 한참 찾고 있는데 “지금처럼 버리다 보면 남는 물건이 없겠어요. 그리고, 죽기 전 삶을 정리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아요.”라고 아내가 말했다. 순간 ‘그래, 나는 죽기 전에 무엇을 남길까’ 생각했다. 소유하고 있던 불필요한 물건들은 모두 없앨 것이다. 그동안의 내 삶을 짓눌렀던 복잡한 인간관계,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 욕심들로 채워왔던 일들도 모두 버릴 것이다. 그러고 나서 내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만 남길 것이다.

가만히 눈을 감았다.

침대에 누운 하얀 얼굴의 익숙한 누군가가 나타났다. 그의 옆에는 옷 한 벌과 구두 한 켤레, 한 자 한 자 써 내려간 자서전 한 권, 수줍게 웃고 찍은 가족사진 한 장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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