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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

봄의 시작, 옛 추억

by 디카이분의일

봄은 시작이다.

어스름이 남은 새벽, 걷기 운동을 위해 아파트를 나섰다. 코끝을 스치는 바람엔 온기가 스며 있었고, 겨울 내내 함께했던 장갑과 목도리를 거추장스럽게 만들었다. 봄의 전령사 같은 그 바람을 깊이 들이켜 마시자 가슴 깊숙이 숨겨둔 추억을 깨웠다.

봄은 학창 시절, 새 학기의 시작을 알렸다. 새 교과서에서 풍기던 잉크 냄새는 설렘과 떨림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봄은 늘 그랬다. 지나간 시간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두려움과 기대가 엇갈리는 새 출발을 의미했다. 다시 잘해 보자는 조용한 다짐과 희망을 품게 해주는 계절이다.

어릴 적 아버지 손을 잡고 찾아간 깊은 골짜기의 개울가, 겨울잠에서 덜 깬 개구리를 조심스레 잡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봄나물을 캐던 엄마와 누나의 등 뒤에 기대어, 소쿠리에 담긴 나물 사이 티끌을 골라내던 따뜻한 기억. 그 시절의 봄은 언제나 내 곁에 있다.

며칠 전 인터넷을 검색해서 봄 여행지를 골랐다. 어쩌면 남들과 비슷한 추억을 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예전처럼 가슴 뛰는 따뜻한 추억을 기대하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봄은 여전히 내 코끝을 간지럽히는 따뜻한 바람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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