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권, 일확천금, 일상의 행복에 감사
한 주를 마감하는 금요일 퇴근길이다. 20여 년 한결같이 오가던 출퇴근길이지만 금요일 퇴근시간만 되면 유독 혼잡하다. 갓길에는 불법주차 차량들이 이중 삼중으로 줄 서있다. 고액의 당첨자가 배출되었다는 것을 자랑하는 화려한 현수막이 주렁주렁 걸려있는 소위 ‘복권명당’에서 일확천금을 사려는 손님들 때문이었다.
특히 이날은 점포안도 공간이 모자라 수 십 명의 손님들이 가게 밖 인도에 까지 줄 서 있었다.
‘번개 두 번 맞을 확률보다 낮은 것이 복권당첨 확률인데 도대체 로또는 왜 사는 거야’라고 혼잣말로 불평하며 ‘참 이해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라고 치부하고 퇴근길을 재촉했다.
우리가 가진 상식은 가끔 틀릴 때가 있다. 돼지가 그렇다. 지저분한 돼지우리를 상상하고 더러운 동물로 인식하지만 사실은 매우 깨끗한 동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돼지를 애완용으로 키우는 사람이 심심치 않게 방송을 타기도 한다.
내가 안고 있던 아기돼지는 귀여웠다. 화려하고 고운 핑크빛 피부에 나를 참 잘 따랐다. 꼬리를 흔들며 내 품을 파고드는 애교가 애완견 못지않았다. 조금 지나자 아기 돼지는 예닐곱의 친구들을 데리고 와 내 품을 다시 파고들었다. 간지럽지만 싫지는 않았다.
다음 날 서둘러 집을 나섰다. 늘 지나다니던 곳이지만 처음 들어가 본 복권방이라 낯설었다. 주춤하던 나를 본 주인은 “로또복권 사러 오셨죠?”, “자동으로 드릴까요?”라고 물었고, “네. 이만 원어치 주세요.”라고 말하고 당첨번호가 복잡하게 찍혀있는 복권을 받아 들고 서둘러 가게를 빠져나왔다.
지난밤 화려했던 꿈은 당첨의 희망을 갖기에 충분했다. 목이 바싹 타들었다. TV모니터를 뚫어져라 주시했다. 둥그렇게 생긴 통 안에 든 숫자 찍힌 공들이 정신없이 뒤섞였다가 아래 작은 구멍으로 하나씩 빠져나왔다. ‘19, 21, 30, 33, 34, 42’ 6개의 숫자가 발표되는 순간 심장이 요동치고 숨이 멎는 듯했다. 볼도 꼬집어 봤다. 얼마나 기뻤는지 감각도 없었다.
당첨금을 받으러 먼 길을 나섰다. 평소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을 주변 사람들이 모두 강도처럼 무서웠다. 혹시 해코지나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작은 복권을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당첨사실은 나만 알았다. 아내에게 알려야 할지, 당첨금으로 무엇을 할지, 이래 저래 고민만 쌓여갔다.
수개월 동안 새 차 구입을 미뤘던 나는 무엇에 홀리듯 외제차 매장을 찾았다. 매장에 들어서자 깔끔한 정장차림의 판매원이 깍듯한 자세로 안내했고 커피와 과일도 내놓으며 부산을 떨었다. 큰 부자들이 탈만한 비싼 차에 먼저 눈길이 갔다. 이곳저곳 살펴보고 첨단 기능도 물어보며, 운전석에 앉았다. 정말 편안했다. 잠깐 눈을 감았다. 그동안 쌓였던 피로감이 물밀 듯 밀려왔다.
‘얼마나 지났을까?’ 답답했다. 막내아들은 누워있는 나의 배 위에 올라타서 간식을 사 달라고 졸라댔다. ‘앗! 복권’ ‘추첨시간이 지나가 버렸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휴대폰을 꺼내 당첨번호를 확인했다.
‘......’
잠시 후 초인종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치킨 배달 왔습니다.”
“얼마인가요?”
“네. 이만 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