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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 N Mar 10. 2021

2021.03.10. 오전 10시

사과, 어떻게해야 하는 것일까.

모 기업의 채용과정에서 있었던 부적절한 질문으로 세간이 떠들썩하다. 해당 기업 지원자가 면접 과정에서 얻은 불쾌함을 구인/구직으로 유명한 포털에 공개했고 면접 후기가 여러 다른 커뮤니티로 퍼진 것이 시발점이다. 그녀는 본인이 겪은 부당함을 짚은 일목요연한 장문의 글을 게시해 놓은 상태이다. 


지적한 문제점은 대략 '군대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면접관과 남성 지원자들이 지속적으로 나누어, 이에 공감할 수 없는 여성 지원자가 소외감을 느끼도록 만들었고,' 당사자인 여성 지원자에게 '병역의 의무를 이행한 남성에게 더 높은 임금을 지불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더 높은 임금이 주어진다면 군대를 다녀올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는 것이다. 어떤 의도를 가졌든, 질문의 맥락과 표현방식이 어떠하였든 분명 부적절하다. 병역의무자에 대한 혜택에 대한 부분은 사회적으로 이미 많은 논의가 되었고 젠더 이슈와 정치적인 담론으로까지 이어진 사안이기 때문이다. 또, 이십 대 후반의 경력직 지원자에게 군대를 다녀올 생각이 있냐는 물음은 시기적절하지도 않다. 


사건이 일파만파 커지자 회사 측은 대표이사 명의로 공식 사과문을 게재했고 유튜브에까지 사과 영상을 올렸다. 면접 과정에서 부적절한 질문을 한 것으로 지목된 면접관은 보직이 해제되었다고 한다. 사측의 잘못 인정과 공식 사과문, 회사 내부의 직위 해제 징계에도 그녀는 아직 화가 덜 풀린 듯하다. 사건이 일어난 시점에는 사과는커녕 아무런 조치가 없다 우연한 시점에 세간에 사건이 공개되자 사과를 했다는 점, 그리고 그 사과의 내용에 진정성이 없음을 지적한다. 


그녀가 겪은 부당함에 충분히 공감하고 이름만 대면 알만한 큰 기업의 채용과정에서 이런 문제가 일어났다는 것이 매우 개탄스럽다. 그럼에도 몇 가지 불편함과 의문이 남는다. 면접자의 부적절한 질문은 개인의 일탈 행위일까, 아니면 기업의 과오라고 보는 것이 맞을까. 질문의 부당함을 지적한 그녀에게 사과를 해야 하는 일인가, 아니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위해 대중에게 사과를 하는 일이 옳은 것일까. 면접 경험, 그리고 본인의 의견을 담은 장문의 글을 대중들이 볼 수 있도록 공개하는 것으로 인해 기업에 미친 직접적/간접적 손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봐야 할까. 직위 해제는 적절한 수준의 처벌이라고 볼 수 있을까. 너무 과도하거나 혹은 너무 축소된 처벌은 아닐까. 그럼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그녀의 화가 풀릴 수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머릿속을 가득 메운다. 윤리와 법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나의 의문점에 대해 쉽게 답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내겐 매우 어렵고, 역시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어디 가서 말싸움해서 지지는 않을 것 같다고 스스로 느낀 적이 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닐 적에는 억울한 일을 당하면 곧잘 따졌던 것 같기도 하다. 스스로 판단하기에 그리고 사회적인 규범에 비추어보았을 때 부당하다고 느껴지면 가감 없이 나의 의견을 피력했고 내 논리는 상대방을 곧잘 설득시켰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의 부당함에 맞서는 일에 소홀해졌다. 잘못을 하긴 했지만 내가 잘못을 지적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이 받을 마음의 상처 혹은 피해에 대해 생각하면서부터이다. 팩트 폭력이라고 사실도 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사실 관계 이외에 사건을 둘러싼 상황과 분위기, 맥락 또한 고려하게 되었다. 웬만한 일은 참고 넘기면서 억울함에 대한 감정의 역치가 올랐고 나는 이것이 성장이라고 믿어왔다. 


성장, 다르게 보면 용기가 부족해진 탓이다. 잃을 게 없던 학생 시절에는 뭣도 모르고 따지고 들었다면, 내 직장, 나의 평판, 나의 사회적 위치를 따지다니 점차 목소리에 힘을 잃게 된 것이다. 생계를 책임져야 할 가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불의에 맞서고 본인의 목소리를 내는 행위를 높이 평가한다. 


순간의 감정에 매몰되는 사람이 되지 않고자 한다. 시간을 두고 상황을 생각하고 할 수 있는 한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받은 상처에 지나치게 몰입하여 다른 이에게 까지 나의 감정을 강요하고, 혹여나 내가 누군가로부터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하더라도 그 억울함을 되갚아주려는 마음을 갖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나의 불편함을 토로하기 할 때에는 반드시 내 안의 선을 정해놓고 지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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