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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 N Mar 15. 2021

2021.03.15. 오후 5시

여유롭고 알찬 하루

오늘은 이직 8주 차 되는 날이다. 놀랍고도 신기하게도 아직 딱히 할 일이 없다. 코로나 정부지침 2단계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라 회사에서는 직원들이 주 2~3회씩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데, 마땅한 일거리도 없는데 재택근무를 하는 것이 좀 눈치 보여 그동안 꼬박꼬박 출근을 하다가, 지난주 나보다 더 늦게 입사한 사원이 재택근무를 한 것을 보고 용기를 받아 드디어 첫 재택을 시도했다. 물론 입사 1주 차 환영회식 날 너무 오랜만에 음주를 한 뒤로 장에 탈이 나 의도치 않은 연차인지 재택인지를 한 적이 있긴 하지만 공식적인 건 오늘이 처음이다.


말이 재택이지 할 일이 너무 없었다. 메신저도 안 울리고 딱히 메일도 없고 해서 인터넷을 조금 뒤적거리다 밀린 방청소를 하기로 했다. 나는 극도의 맥시멀 리스트인데 동시에 저장장애까지 갖고 있다. 얼마 전 엄마가 빨래를 가져다주러 들어왔다가 폭탄을 맞은 줄 알았다고 말한 뒤 조만간 치우지 않으면 크게 혼나겠구나 싶었던 찰나였기에 날을 잘 잡았다 싶었다. 옷장 정리를 할 때마다 느낀 점은 이게 정녕 내가 산 옷인지 왜 난 한 번도 입지 않은 것인지 언제 산 건지 싶은 것들이 참 많다. 왜 그동안 이걸 안 입었을까 싶은 것도 있고, 이걸 도대체 왜 내 돈 주고 산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것들도 있다. 가을 겨울 니트 입는 걸 좋아하는데 니트는 참 관리가 어렵다. 깨끗이 입고 거의 빨래하지 않는데도 쉽사리 보풀이 일어나고 먼지가 들러붙는다. 비싼 건 좀 다를까 싶어 월급을 받은 뒤로는 가격대가 좀 있는 브랜드의 옷을 주로 사는데도 소용이 없다. 한 철 입고 버리기는 아깝고 빨아서 한 해 더 입으려고 보면 팔 아래로 보풀이 막 일어나 있어서 너무 지저분해 보인다.


보풀이 많이 일어난 니트들을 비롯해서 올 겨울 한 번도 입지 않은 것들 그리고 앞으로도 안 입을 것 같은 것들은 과감히 의류수거함에 넣어버렸다. 매번 아침마다 마땅한 양말이 없어 한겨울에도 발목양말을 신고 다닌 적이 많은데 옷장 한편 빨간 다이소 바구니에 양말이 가득 모아져 있었다. 겨울이 다 지나서 목이 긴 양말을 왕창 발견하다니 진작 좀 정리할걸 약간 후회가 들기도 했다. 한때 과한 운동복 욕심으로 산 요가복도 정말 많다. 그때는 알록달록 진한 색상의 요가복이 예뻐 보여 샛노란색부터 보라 자주 하늘색 레깅스를 정말 깔 별로 사놨는데 요즘은 그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제일 편한 검은색 레깅스 하나만 입는다. 그래도 언제 또 입을지 모르니 운동복 칸에 다시 잘 정리해두었다. 올해는 더 이상 안 입을 기모 맨투맨과 히트텍은 모두 세탁기에 넣고, 흰 셔츠와 블라우스들은 따뜻한 물에 표백제를 조금 풀어 때를 불린 뒤 세탁기에 함께 넣고 돌렸다. 더 이상 메지 않는 가방과 상태가 좋은 옷은 사진을 찍어 당근 마켓에 올렸다. 어찌어찌 그래도 많이 정리했다.


밀린 잡일도 조금 처리했다. 만기 된 예금을 해지했다. 실물 OTP를 잃어버려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비대면으로 디지털 OTP를 받을 수 있었다. 작년인가 학회에서 경품으로 받은 카카오 미니가 한동안 방치되어 있었는데 내 핸드폰 멜론 아이디와 다시 연결시켜 두었다. 부모님께 노래 듣고 싶으면 편하게 카카오 미니 사용하면 된다고 말씀드리면 좋아하실 것 같다. 잘 사용하지 않던 신용카드는 해지 신청을 하고 대신 내게 적합한 신용카드를 추천받아 신청했다. 작년에 산 고가 브랜드 카드 지갑 가죽에 스크래치가 나서 속상해하고 있었는데 백화점에 전화해 A/S가 가능한지 물어봤다. 물론 가죽 수선은 안된다는 답변을 받았다. 전화 영어도 20분씩 두 번이나 하고 복습 과제까지 모두 마쳤다.


일은 안 했지만 온종일 바빴던 그리고 소소한 성과를 얻은 뿌듯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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