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주변에서 걱정이 참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들어서부터는 주변에 내 걱정을 티 내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해보기도 했지만 그게 어떻게 다 드러나나 보다. 그런데 신기한 건, 내가 걱정한 만큼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어제는 하루 종일 마음이 무거웠다. 얼마 전 usb를 잃어버린 여파로 인한 충격이 덜 가셨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온 몸에 힘을 주고 자는 버릇이 있는데 그러다 보니 잠을 자다 종종 다리가 저려오고 새벽에도 몇 번씩 잠에서 깨기도 한다. 아침 6시쯤 '아 오늘은 요가 가기는 틀렸다'라고 결심을 한 뒤 다시 잠에 들었고 7시쯤 '오늘은 회사를 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라는 판단이 섰다. 급하게 재택근무 신청을 한 뒤 8시 반 정도까지 잤다. 예정되지 않은 재택근무는 사실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특히나 어제는 오전 9시 반에 꽤 중요한 미팅이 있었고 물론 화상으로 참여해도 되지만 대면 미팅이 더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제는 집에서 좀 쉬면서 근무를 하면서도 하루 종일 마음이 불편한 하루를 보냈다. 왜 처음부터 솔직하게 몸이 안 좋다고 말하고 연차를 쓰지 않았을까. 왜 일단 출근을 하고 일단 미팅까지 한 뒤에 컨디션을 얘기하며 반차를 쓸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좀만 참고 회사에 가서 일하다 보면 몸이 괜찮아질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고작 그걸 견디지 않았을까. 스스로에 대한 질책과 나의 행실에 대해 지적받지 않을지에 대한 두려움으로 하루 종일 마음이 힘든 시간을 보냈다.
오늘은 내가 보낸 메일 하나를 보고 이사님께서 Ship back 하라고 하셨다. 곧바로 점심시간이어서 왜 메일 회수를 해야 하는지 설명을 듣지는 못했다. 어제의 일, 그리고 지금의 일로 스트레스가 심한 나머지 점심식사를 또 거르게 되었다. 어릴 적에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단 게 당겨 초콜릿이며 젤리를 왕창 쌓아두고 먹었는데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로는 스트레스가 있으면 식욕이 떨어지곤 한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메일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충분히 납득할만한 이유였다. 그리고 나에 대한 질책은 없었다. 어제의 일도, 그리고 이 메일에 대한 일로도. 어제는 하루 종일 스트레스받고, 오늘은 점심까지 걸렀지만 내가 걱정하고 두려워했던 것과는 달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늘 걱정이 많고 조바심 내는 성격이라 주변사람들이 웬만한 것들을 크게 지적하지 않는 탓일지, 걱정이 많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들까지 걱정하는 지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내가 상상하는 것만큼 드라마틱한 일은 많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어차피 벌어진 일로 인한 여파를 걱정해봤자, 내가 벌인 일들을 다시 돌이킬 수는 없을 노릇이다. 그냥 마음 편히 갖자. 혼날 때 깔끔하게 혼나면 되지. 잘못한 것은 혼나고 앞으로 고치면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