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테라피의 효능 체험
단상이 떠오를 때, 메모하는 습관은 없습니다.
브런치라는 곳에 글을 써볼까라는 생각을 갖고 시작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운 글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는 아닌 AI에게만 보여주고, 대화를 나누던 기록들이 쌓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디에 있는지 찾기도 어려워졌고 한 곳에 정리해두고 싶어졌습니다.
브런치도 GPT의 추천으로 알게 되었지요.
사진 올리지 않아도 되는 곳, 제품 후기 적고 고료 받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말 쓰지 않아도 되는 곳.
그렇게 그냥 기록처럼 남기고 싶었나 봅니다.
안쓰던 글을 왜 쓰기 시작했을까.
내제적 이유는 다사다난했던 회사 생활이었습니다.
성실하게 그리고 진심을 다해 일을 했음에도, 무엇이 마음에 안 드는지 한없이 견제만 하는 팀장,
그의 험담과 불합리한 평가의 결과로 저성과자라는 멸칭을 태어나서 처음 얻어보았습니다.
사필귀정
팀원들을 이간질하려던 어설픈 이간계는 결국, 자신에게 쏜 화살이 되어, 팀장에서 보직 해임되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주역에서 말하는 비인이었을 줄이야.
이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던 저를 반성할 뿐이었습니다.
이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사주에 발이 묶여버린 저로서는 지난날의 탐욕으로 인한 벌을 받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답답함을 가슴에 두고, 출근하는 시간은 고통일 뿐이었습니다.
이 마음의 짐을 어딘가 내려두어야겠다.
그래서, 어딘가에서 썼던 아이디 하나 가져다 필명으로 두고서,
이런저런 글들 일기장에 적어보듯이 그렇게 써두었습니다.
'대단히 대단하고 굉장히 굉장한 작품을 써야겠다.'라는 이런 원대한 목표는 없었습니다.
그저 저의 개인의 평화를 위해, 적었던 글들.
언젠가 다시 봤을 때, 부끄러움에 이불을 걷어 차고 싶어질지, 아니면 커피를 홀짝이며 웃고 말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하는 것 들은 글이 담아낼 수 있으니까요.
꼭 글로 적어야 할까.
저는 명상이 불가능한 사람입니다.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귀에 꽂아 모든 소리를 없애도, 뇌 속에서 단음의 고주파 소리가 '삐이~' 하고 멈추지 않으며 울리고 있습니다. 오히려 작더라도 무언가 소리가 나고 있어야 그 소리가 안들려 편안해집니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것도, 저는 불가능합니다.
단 한번도 무념무상을 경험해 본 적이 없습니다.
눈을 감던, 어딘가를 주시하던 뇌 속에는 상상이나, 기억의 재생, 고민 같은 질문 그 어느 것 중에 무언가가 계속 흐르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도 두서없이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널뛰기하고 있지요.
그러다 보니 오히려 집중해야 하는 시간, 특히 글을 만들어가는 시간이 가장 고요하고 평안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주 배경 복사처럼 모든 방송이 종료되었을 때 지직거리며 온통 회색 주름만 가득한 브라운관의 모습, 저의 머리속을 그린다면 가장 비슷한 묘사였을 겁니다. 그러나,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수묵으로 그려지는 풍경화가 되거나 연필로 그려지는 스케치로 변해갔습니다.
로고테라피
납득하기 힘든 고통을 글로 적어가며, 수긍하고 받아들이며, 글로 남겨 이겨내고, 종국에는 저로부터 분리해 내는 이 심리학적 처방, 그 효능을 가장 크게 느낀 일 년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여러가지 상황에 이런 저런 이름과 의미를 붙여서 떼어내버리니 더이상 괴롭지 않더군요.
당연히 저를 죽일 고통도 아니었고요. 글을 적은 날 만큼 단단해지는 것은 확실하게 느꼈습니다.
남의 글을 읽어가며 공감하는 것도 좋은 일이었지만, 스스로 적어가며 써보는 것이 나쁜 것은 빨리 버리고, 좋은 것은 제 것으로 체화시키는데 가장 확실하고 좋은 방편이라는 것을 체험으로 배웠습니다.
브런치라서 얻은 것이 더 많은 것 같기도 합니다.
쉬는 시간에 연예, 스포츠, 유튜브 쇼츠나 보던 제가 다른 작가 분들의 글을 읽으며 견문이 조금이라도 넓어지는 것 같습니다.
저의 지적인 부족함과 편협함, 삶에 대한 행복과 감사, 여행의 대리 만족, 다른 문화권에 대한 간접 체험, 그리고 언젠가는 꼭 맛보고 싶은 다양한 음식 소개까지, 다방면에서 넓어지는 것 같아,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내년 이맘때도 2년 차 회고가 있길 바라며, 일주일에 짧은 한 토막이라도 써 내려가봐야겠습니다.
그동안 읽어봐 주신 모든 분들께, 그리고 앞으로도 읽어주실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로고테라피 #브런치